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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전 자작이자 현재 재벌가의 아들 에노키즈 레이지로는 장미십자탐정 사무소의 탐정. 그의 능력은 다른 탐정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보는 것이다. 이런 특수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천성이 그러한지는 몰라도 에노키즈는 비범하지만 무례하고, 방약무인하며, 거칠 것이 없고, 오만불손하다. 이목구비는 서양인처럼 수려하지만 하는 행동은 조금은 바보같기도 하다. 조사, 수사, 추리는 웬말이냐,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속전속결로 사건을 끝낸다. 때로는 불량배를 능가하는 폭력을 휘두르며 사건은 해결이 아니라 분쇄를 하고, 악당은 구제가 아니라 섬멸을 하자는 주의랄까.
이런 에노키즈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있긴 있다. 에노키즈와 대등한 사람은 바로 고서점 교고쿠도의 주인이자 신주인 추젠지 아키히코. 이 사람 역시 특이한 사람으로, 기인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데 두뇌명석, 박학다식, 그리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 조금만 인상을 써도 상대방은 무서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게다가 무서운 경찰 기바에 바보취급을 받는 작가 세키구치까지, 에노키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인들 뿐이다.
이런 기인들 사이에 범용한 자가 끼면 정신 못차리고 휘둘리게 마련.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전 사건을 계기로 에노키즈의 하인이 되어버린 모토시마는 교고쿠도의 충고를 받잡아 에노키즈를 멀리 하려 하지만 이거 웬일, 또다시 에노키즈와 연관된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충고는 충고, 운명은 운명이려나? 에노키즈같은 바보와 어울리면 어울리는 사람도 바보가 된다는 교고쿠도의 충고대로 바보가 옮아 버린 모토시마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자꾸만 얽혀들어가는 비운의 사나이랄까.
모토시마는 교교쿠도의 세키구치같은 인물이랄까. 즉 사건에 전혀 상관없고, 상관해서도 안될 사람이 낀 형국이다. 물론 에노키즈에게 자신의 사촌여동생 사건을 의뢰한 일로 인해 어느새 에노키즈의 하인이 되어버렸지만, 다른 사건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모토시마는 전편인『백기도연대 雨』에서는정계와 재계의 독직과 탈세를 적발한 나리가마 사건, 고미술품 위조 사건이 발단이 된 가메오사 사건, 미술품 절도단을 일망타진한 야마오로시 사건에 휘말려 고생아닌 고생을 하더니만,『백기도연대 風』에서는 죽은 자가 캉캉춤을 추며 나타나고 마네키네코가 주요한 단서가 되는 오덕묘 사건, 영감(靈感) 탐정 간나즈키의 함정에 걸린 운외경 사건, 그리고 봉인이 풀린 저주의 가면 사건인 면령기 사건에 또(?) 말려든다.
특히 간나즈키 탐정이 등장하는 운외경 사건에는 납치 · 감금되는 수모를 겪다가 나중에는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는 등 정말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살아도 연루될 가능성이 0.1%도 안되는 그런 사건에 턱하니 걸려 든다. 모토시마 바보급인 또 한명의 사나이 마스다는 면령기 사건에서 절도범으로 수배되는 등 이번에는 특히나 에노키즈 주변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에노키즈는? 휭하니 사라졌다가 와하하하하핫 하는 바보 웃음을 터뜨리며 나타나 악당들을 쳐부순다. 특이 면령기 사건에서는 마네키네코 도둑으로 변신하거나 도깨비들을 무찌르는 등 나름 바쁘게 보내긴 하지만 모두 자기 즐겁자고 하는 일이지, 모토시마나 마스다처럼 주변 사람이 고생하는 것처럼 고생하는 일은 전혀, 절대 없다. 즉, 결정적인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 악당들을 쳐부순달까. 물론 그의 능력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내고 사건을 해결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주된 일은 악당 섬멸이다.
교고쿠도는 이들 사건의 배후를 짐작하고 사건의 배경을 추리한다. 역시 안락의자탐정 타입이다.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신선같달까. 물론 아주 움직이기 싫어하는 교고쿠도도 가끔은 직접 움직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신주로서의 그의 능력을 보지 못해 좀 안타깝긴 했지만, 역시 날카로운 눈으로 사건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꿰뚫어 보는 추리 능력만큼은 탐정보다 더 탐정답소이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갸우뚱했던 것 하나는... 나름 유머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었단 것. 원래부터 그랬나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교고쿠도의 장광설 -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느라고 - 때문인지 그다지 유머스러운 장면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몇 군데서나 웃음을 터뜨렸다. 음, 이건 설명하기 좀 어렵지만, 문맥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음. 물론 에노키즈가 모토시마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바꿔 부르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나 분자에몬, 겐노스케 같은 옛날 무사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하는 데서 빵 터져버렸다. 분자에몬이 뭐야, 도대체. 에도시대 사무라이 이름같소. 게다가 곤잘레스는 또 뭐람. 사실 모토시마의 정확한 이름은 제일 마지막에 딱 한 번 나왔다. 도시오였군요, 모토시마씨. 근데 에노키즈는 사람 이름을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걸까. 난 일부러에 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바꿔 부르긴 해도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건 한 번도 못봤거든. 비범하지만 특이한 사람이야, 정말. 매번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참 힘들텐데 말이지.
오덕묘 사건, 운외경 사건, 면령기 사건은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이 작품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난 오덕묘 사건이 재일 흥미로웠는데, 마네키네코의 역사와 고양이 요괴 이야기 등이 나오니 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 없지. 나머지 두 개의 사건은 매우 재미있단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결국은 한 영감의 수작이었단 말이죠.
에노키즈가 중심이 되는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이 두 권으로 끝~~ 뭐, 에노키즈 시리즈라 해도 에노키즈의 등장 분량은 적지만. 물론 교고쿠도 시리즈 역시 교고쿠도의 등장 분량은 적다. 에노키즈나 교고쿠도나 등장 분량은 조연 정도의 분량이지만 역시 등장 씬을 보면 대형 스타의 분위기가 팍팍 느껴진달까. 또다른 사건에서 이들을 다시 만날 것을 (혼자) 약속하며. 다음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