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바케 4 - 더부살이 아이 샤바케 4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규은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삼천살 먹은 대요괴의 손자이지만 요괴를 볼 수 있는 능력밖에 없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무사했다면서 주변에서 기뻐하고, 이불에서 일어나면 병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안도할 정도로 병약한 도련님 이치타로는 에도에서도 알아주는 운송업 겸 약재상 나가사키야의 후계자이다. 약재상의 주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긴 하지만 워낙 허약한 탓에 늘 별채에서 조용히 요괴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도련님이 안뜰을 향한 툇마루에서 볕이라도 쬐는 날이면 '오늘도 건강하다'고 부모님이 안심하실 정도이니 도련님의 약골체질은 알아줄만 하다. 이런 도련님이지만 늘 집에서 책이나 보면서 지내는 건 아니다. 비상한 머리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이른바 에도시대 이부자리 탐정인 것이다.

올해 열여덟살이 된 도련님은 최근 자주 열이 나고 아프다. 그래서 외출은 꿈도 못꾸고 집에서 자리보전하는 신세. 그래도 과자집 후계자 에이키치가 종종 들러 뭐라고 딱히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만주를 선물로 주고 가지만 늘 집에만 있는 도련님 신세로는 유일무이한 친구가 에이키치이기도 하다. 그런 에이키치와 도련님이 사소한 일로 다투었다. 사과를 해야지 하면서도 서로 고집을 부리는 와중에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날, 도련님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고와이'란 요괴가 텐구에게 얻었다는 영험한 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인에게 궁극의 기술을 전해준다는 신비의 비약. 에이키치에게 선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도련님은 '고와이'와 거래를 하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요괴들이 모두 '고와이'는 피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불행의 씨앗이라고 하는「고와이」는 늘 혼자 지내는 요괴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거부당한 '고와이'. 그래서 그런지 '고와이'는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 하면서도 의심부터 하고 마는 음울한 성격을 지녔다. 곁에 두면 연쇄적으로 해가 닥친다는 말에도 '고와이'를 보듬어 주고 싶어한 도련님의 마음도 몰라줄 만큼. 참 외롭게 살지만, 스스로 외롭게 살아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와이'. 그의 처지에 동정하다가도 그의 말본새와 행동에 등을 돌려버리게 된달까. 스스로의 문제가 뭔지 알면 좋을텐데, '고와이'는 그저 남탓만 한다.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 참 많지...

두번째 이야기인「분접지」에는 3권에 있는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두꺼운 화장녀 오히나가 또 나온다. 이번에는 오히나 자신의 이야기인데, 그녀가 화장을 점점 두껍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참 가슴이 아팠달까. 이런 오히나가 우연히 병풍요괴와 말을 나누면서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치유시켜 나간다. 차도남 스타일의 병풍요괴가 이번에는 치유계 요괴가 되었구나. 다시 봤어, 병풍요괴!

시리즈 앞 권에는 도련님 이치타로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하쿠타구인 니키치와 이누가미 사스케의 과거지사가 나왔다면 이번에는 도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다섯살 무렵, 아직 요괴들과는 말을 트고 지내지 않던 시기의 도련님이 풀어 가는 기묘한 사건 이야기인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몸의 크기 뿐?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병약해서 아이들에게 이름보다는 '약골'로 기억되고 있지만, 비상한 머리를 이용해 기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꽤 의젓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요괴들에게 단서에 관한 조사를 시키지만, 어린 시절에는 또래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는 면이 다를 뿐이랄까.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가게온나(그림자 요괴) 대추적극인「움직이는 그림자」는 도련님의 귀여운 어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3권을 보면 도련님이 슬슬 사랑을 할 나이가 아닌가 싶었는데, 4권에서는 드디어 결실이 맺어진 것일까? 도련님이 난데없이 요시와라의 아가씨와 도망을 치겠다는데, 이거 뭔일이죠? 요시와라는 에도시대 유곽이 밀집한 곳으로 이곳에 있는 아가씨라면 결국 유녀가 될 운명의 아가씨인 것이다. 헉, 도련님이 유곽에 드나든단 말이야? 도련님의 순수한 이미지가 와르르르르.... 무너질 걱정은 안해도 된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오이란의 딸로 유곽에서 태어나 유녀가 될 운명을 타고 난 아가씨의 이야기는 역시 마음 아픈 소재이지만, 다행히 유곽 주인이 좋은 사람이라 아가씨를 몰래 요시와라밖으로 빼낼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에 동원된 것이 도련님 이치타로인 것이다. 아린스코쿠라고도 불린 요시와라의 이야기와 그곳에 사는 유녀들의 이야기를 그린「아린스코쿠」는 평생을 유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가씨들의 슬픈 운명에 가슴이 짠해진다.

표제작인「더부살이 아이」란 제목을 봤을 때는, 혹시 나카사키야에 더부살이 아이가 들어왔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라라 그게 아니네. 아이는 아이가 맞는데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아이 요괴, 즉 야나리 이야기였다. 그림상으로 보자면 야나리는 몸집은 아이처럼 작지만 얼굴은 영 아이같지 않지만, 뭐.. 그렇다고 치자.

도련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야나리 중 한 녀석이 미아가 되었다. 미아가 된 야나리가 다시 도련님을 만나기까지의 모험은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있는 야나리의 목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도련님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혹시 도련님 귀는 소머즈 귀? 는 농담이고, 수많은 야나리 중 미아가 된 야나리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도련님은 정말 정이 많은 것 같아. 

4권의 이야기는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고 할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살아가는 요괴 '고와이'도 그렇고, 두꺼운 화장으로 자신의 마음 속 아픔을 숨기고 사는 '오히나'도 그렇고, 요시와라에서 유녀로 평생을 살아 가야 할 짐을 진 소녀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래서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이 사건 위주였다면 4권은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담아낸 에피소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도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역시 몸이 너무 약해 다른 아이처럼 지내지 못하는 도련님의 외로움과 또래 친구들과 만나 '가게온나' 사건을 해결하면서 행복해하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지니까.
 
이렇듯 세상에는 슬픔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들이 있어 세상은 슬픔과 아픔, 외로움과 절망쪽으로만 기울어져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균형이 잘 맞아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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