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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ㅣ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이용한 작가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먼젓번 책은 도심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이번 책은 시골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저자가 이사한 곳에는 꽤 많은 고양이들이 거주한다. 물론 도심보다는 그 밀도가 낮은 편이지만 어림잡아 약 60마리의 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고 하니 시골치고는 꽤 많은 수가 이곳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여름마다 가는 시골집 근처에는 고양이의 수가 10마리 남짓 정도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여름과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며, 많은 고양이들이 각각의 꼭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이야기이기에 각각의 고양이에게는 이름도 있고, 저마다의 사연도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람이는 이 동네 왕초고양이로 저자의 집에서 급식을 하던 녀석이다. 처음에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다가 3개월이 넘어 가면서 슬쩍슬쩍 얼굴을 보여주었고, 좀더 지나서는 밥을 달라고 으냥냥거리기도 하고 저자의 집에 있는 고양이 랭이와 랭보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한 녀석이다. 매일매일 밥을 먹으러 오면서도 절대 곁을 내주지 않던 바람이지만, 급식에 대한 고마움으로 새를 잡아 선물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죽은 새를 가져 오더니 나중에는 살아있는 새를 기절시켜서 가져왔는데, 사람이 선물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자 선물의 상태(?)를 달리하는 배려를 보였던 것이다. 고양이의 선물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양이가 선물을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이 역시 무뚝뚝한 면이 많았지만 속정은 깊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인연을 맺은지 1년정도 지나 바람이는 희귀 기생충에 감염되어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바람이는 그곳에서도 왕초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달타냥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녀석이다. 할머니가 노인정으로 가실 때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 마중을 나가는 궁극의 접대냥이이자, 산책을 즐기는 궁극의 산책냥이기도 하다. 잘생긴 외모에 사근사근한 성격은 누구라도 반하게 할 정도. 달타냥은 깜찍이란 암컷을 만나 사랑을 키웠고 그 결과 아기 고양이가 다섯마리나 생겼다. 하지만 달타냥을 닮은 크림색은 한마리도 없고, 엄마를 닮은 고등어랑 올블랙이 태어났다고. 아무리 봐도 달타냥의 새끼는 아닌 듯 하지만 달타냥은 그에는 상관없다는 듯 깜찍이와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먹을 것도 집마당도 양보하는 착한 녀석이다.
마을 축사에 사는 고양이 가족은 길고양이 가족 수치고는 꽤 많은 11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비록 환경은 열악해도 가족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맨앞에 보이는 큰 고양이가 대모 고양이로 가족의 우두머리이다. 윗배 새끼들과 아랫배 새끼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하지만 사는 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해던 만큼 대모 고양이가 병에 걸리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물은 더 중요하다. 오염된 물을 먹고 살았던 탓인지 병에 걸렸지만, 무사히 회복했다고.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은 겨울이다. 몸집이 작은만큼 겨울에 태어난 새끼는 간혹 얼어죽는 경우가 발생한다. 축사에서는 개사료를 끓이느라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데 그 여열이 고양이들을 따뜻하게 해준다. 때로는 남은 열기에 몸을 데우기 위해 아궁이로 들어가 재투성이가 되어도 추운 것 보다는 낫지, 싶다.
환경도 열악하고 배 부르게 먹지도 못하는 생활이지만 축사 고양이네에 경사가 생겼다. 대모 고양이가 새끼 여섯마리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곧 축사가 철거되어 버렸고 아기 고양이 여섯마리는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갑작스런 철거로 집을 잃은 축사 고양이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몇 마리 남은 녀석들은 축사 근처 호밀밭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했지만, 축사철거로 인해 호밀을 소사료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축사는 호밀밭마저 갈아엎었다. 근처에 동물 사체와 축사 쓰레기를 태우던 곳에 몸을 숨긴 여리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까뮈는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낳았다. 빈집에 거주를 했었지만 이 집도 철거. 까뮈네는 엄동설한에 집을 잃은 것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까뮈는 두 마리의 새끼를 잃었다. 아기 고양이들을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바람을 막고 앉아 있는 카뮈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남은 두 녀석인 당돌이와 순둥이에게 어미 까뮈는 맵고 짠 총각무 김치를 내놓았다. 그 전에 집이 있을 때는 저자가 사료를 가져다 주었지만 집의 철거 이후 종적이 묘연해졌더니 이런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고양이라고 이런 게 맛있어서 먹겠는가. 배는 고프고 날씨는 추우니 이런 것이라도 먹어야 버틸 수 있으니 먹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새로운 영역을 찾았고 이곳에서 까뮈네의 생활은 순조롭게 이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어미 까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새끼 고양이들을 독립시켰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해 죽은 채로 까뮈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해 편견과 적대심을 가지고 대한다. 그런 적대심에는 이유도 없다. 예전에는 시골 인심이 좋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인심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귀찮아하고, 밭을 파헤친다면서 쥐약을 놓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해코지에 희생되는 고양이는 점점 많아져 간다.
하지만 늘 사람들이 고양이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전원고양이들의 생활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맺어진 인연이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을 불러 들였다.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 고양이들 꼬리가 한껏 치며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완전 기분좋아, 완전 행복해 오라의 발산이랄까. 밑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어묵을 먹으면서 웃고 있는 듯한 고양이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비록 고양이 사료가 아니라 개 사료나 사람이 먹던 밥일지라도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 편히 쉴 수 있다는 것, 매끼 밥을 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이 녀석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고 있는지.
전원고양이네에는 큰 개도 한 마리있다. 이 개는 처녀개로 새끼 한 번 낳아본 적이 없지만 아기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그래서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고양이들은 개 뒤로 숨거나 개 집으로 피신하고 개는 이들을 보호한다. 비록 종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는 굳건한 믿음과 애정이 있다.
이 마을에는 개와 고양이가 가족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까치와 고양이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추운 겨울 먹을 것이 부족한 때에 까치와 고양이가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다. 보통 고양이들은 까치를 공격하거나 쫓아내겠지만 이 고양이와 까치는 차례를 기다려 사이좋게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다. 비록 먹을 것이라곤 배추쪼가리에 생선대가리밖에 없었을지라도.
이웃마을 개울냥이 여울이가 여름에 새끼 여섯마리를 낳았다. 아기 고양이를 위해 캣맘에게 먹을 것을 얻어 물고 가는 여울이. 엄마는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추워도 아기들을 위한 먹이 원정을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여울이를 보니 시골집 근처에 사는 어미 고양이가 떠오른다. 겨우 2킬로 그램이나 될까, 눈에도 이상이 있지만 어미 고양이는 매년 새끼를 낳고 기른다. 눈 때문에 사냥을 하기 힘든 어미 고양이는 늘 구걸을 한다. 우리 집에 오면 사료를 줄텐데 얼른 와, 라고 말을 건네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이미 터줏대감처럼 눌러 앉은 녀석이 있어서 어미 고양이는 집 주위로만 지나갈 뿐이다. 이 긴 겨울, 어미 고양이는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도 잘 살아남았을까.
그해 여름 축사 고양이 중 한마리였던 가만이도 새끼를 낳았다. 총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와 가만이는 돌담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여름 더위로 푹푹 찌는 가운데 가만이네 식구와 여리가 쉬고 있다. 하지만 이 장독대 옆의 풀이 베어지는 바람에 은신처를 잃어버린 후 장독대 가까이에는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덩달이(좌)와 봉달이(우)는 마당고양이로 좋은 친구사이이다. 늘 함께 붙어 다니는 두 녀석. 눈밭에서 놀던 덩달이와 봉달이가 저자를 보고 반가워서 뛰어 왔다. 사료를 내 놓으시오~~~
누가 고양이는 눈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덩달이의 표정을 보니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눈밭에서 뒹굴고 뛰어 노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이 아니라 눈 내린 후의 고양이처럼 즐겁다는 표현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의 마당 고양이는 사실 길고양이와 다름없다. 그저 집이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생활은 밖에서 하니까. 봉달이는 개울가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특히 개울 건너뛰기 신공을 보여주는데, 이건 점프가 아니라 비상이다. 날아라 고양이!
하지만 하천정비사업으로 인해 봉달이가 뛰어 넘던 개울이 보로 막혀 버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봉달이는 여전히 비상한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듯이.
언제 어디에서나 발라당 신공을 보여주었던 봉달이, 꽃이 피는 봄날 꽃아래 앉아 진정한 낭만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줬던 봉달이, 그리고 점프가 아니라 비상을 보여줬던 봉달이는 이제 없다. 밭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이 쥐약을 놓았는데 그 쥐약을 먹고 희생된 고양이가 아무래도 봉달이인 듯 하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밭을 죄다 망쳐놓은 것도 아닐텐데, 그 정도 이유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무섭다. 우리 시골에도 가을에 땅콩같은 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섞은 미끼를 두었다는데 그것을 먹은 고양이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산에서 내려오는 동물들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애꿎은 고양이들만 줄줄이 죽어나갔다. 물론 산에서 내려온 동물들 역시 이런 희생을 당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이제 나눠주는 것의 미덕은 다 잊어 버린 것일까.
사람들은 시골 고양이들이 도시 고양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시골에는 인심도 박하고 먹을 것도 없다. 농약을 뿌려대는 통에 개구리도 없고, 메뚜기도 없고. 쥐약을 놓아 쥐도 없다. 예전에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지만 쥐가 거의 없는 요즘, 고양이들은 그저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고양이를 싫어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될텐데 굳이 해코지를 하고 죽이려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작고 여린 생명이 뭐가 그렇게 큰 죄를 지었다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골이든 도시든 고양이의 삶은 척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늘 힘들고 아프고 슬픈 순간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은 시간의 편안함일지라도 그들은 그시간을 기꺼이 누릴 줄 안다. 삶이 고달파도 꿋꿋하게 참으며 살아간다. 짧게 반짝이는 순간의 행복일지라도 그들은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인간들이 못살게 굴어도, 주위 환경이 척박하게 변해도, 고양이들은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명랑하라, 고양이! 삶이 그대를 아프게 할지라도, 아무리 긴긴 밤이 있다 해도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올 것이고,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 있을지라 해도 그것이 지나면 봄이 올지니.
사진 출처 : 책 표지, 책 본문 中(10~11p,16+97+190+278p, 23p, 32~33p, 76p, 83p, 154p, 249p, 286~287p, 102p, 141p, 244p, 262p, 192p, 299p, 342p, 135p, 136p,163p, 203p, 256p, 368p, 372+37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