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Ⅱ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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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세상은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는 몰개성인 사회, 거대한 군집을 이룬 대중사회에서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쯤에 속할까.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개성이 가장 잘 표출되는 예술은 어디쯤에 위치할까.

이 책의 주인공 빌 그레이는 소설가이다. 그는 은둔한 소설가이며 일명 사라진 작가들에 속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고, 세번째 소설을 벌써 몇 년째 계속 고쳐쓰기만 하지 출판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진작가 브리타를 불러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한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일까. 아니 오히려 자신을 더욱 숨기는 작업에 불과했다. 그 사진은 말 그대로 빌이 사라진 작가가 된 후에야 세상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둔하며 살아 가던 빌은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힌 한 시인의 석방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모임은 열리기도 전에 테러 공격을 받게 되고 그후 빌은 스스로 레바논행 배에 몸을 싣지만 결국 배에서 숨지고 만다. 정말 사라진 작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빌의 이야기는 요즘의 출판계에 대한 이야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잘 나가는 작가, 잘 팔리는 작가에 끼는 빌과 그의 책은 그가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더욱 신화적인 존재가 된다. 또한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혀 있는 시인을 석방시키기 위해 시 낭독회를 여는 등의 행위라든지 포로와 빌 그레이의 맞교환으로 세계의 이슈를 집중시키자는 등의 이야기는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타락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마오쩌뚱이 시를 쓰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예술적인 감각으로 인민을 포섭하고 선동했다는 이야기와 맞물려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예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티비 중계로 보여지는 호메이니의 죽음은 군중심리와 군중의 광기를 보여주는 한편, 예술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빌이 구해내야 할 포로는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혀있으며, 그를 구하기 위한 시 낭독회는 테러로 무산된다. 빌과 연계되어 테러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설 중에 나오는 세계무역센터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1991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이 소설은 빌이 상징하는 소설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빌이라는 소설가를 내세워 이 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빌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불어 진행시킴으로써 대중사회가 된 현대사회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야기는 문선명총재가 주관하는 통일교 신자들의 합동결혼식으로 시작된다. 모두 6,500쌍이 결혼하는 결혼식. 이들은 거대한 덩어리로 보일 뿐 개인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똑같은 옷, 똑같은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한 양키스타디움에서 자신의 딸을 찾으려는 부모는 자신의 딸을 찾아낼 수가 없다. 어느새 딸은 한 개인이 아니라 군중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부 중의 한 명인 캐런은 한동안 통일교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포교를 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통일교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그렇게 만난 것이 빌의 비서인 스콧이고 그후 빌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캐런을 보면 무척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젊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단체의 논리에 흠뻑 빠졌고, 그곳을 나온 이후에도 노숙자들에게 포교를 하기도 한다. 캐런은 빌의 집에 살면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중사와 군중이란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그녀가 늘 보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비춰주는 군중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 개인의 영역을 중시하고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군중속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과 예술과 같은 정신적 면을 자극하는 것보다 커다란 사건 사고등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대중속에 속하지 못할 때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건물안에 사는 사람들이든 건물밖에 사는 사람들이든 상관없으며, 그럴 경우 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여겨진다. 합동결혼식의 신랑신부, 호메이니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 아부 라자드의 소년병들은 모두 집단일 뿐이다. 특히 소년병들은 자신의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다. 이 두건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신념 아래 모인 집단이란 것을 의미한다.

『마오Ⅱ』는 작품 전반이 대중사회의 면면을 다각도로 보여주는지라 책을 읽는 내내 흑백으로 이루어진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탱크가 호위하는 결혼 행렬에 속한 사람들은 분명한 색감으로 개인의 얼굴로 다가온다. 이는 통일교의 집단결혼식과는 대비되어 극적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하나의 시스템안에서 부속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희뿌연 안개에 삼켜진 현대사회일지라도 그속에 희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역시 정치적 탄압을 받아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지배되어도 여전히 아름답게 꽃을 피울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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