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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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여년 전부터 정조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예전같으면 영정조 시대로 묶어 영조와 정조를 비교하는 것이 일반론이었으나, 지금은 따로 떼어내서 영조와 정조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예전의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정조는 18세기 조선에 혁신을 가져온 왕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떠한 논지로 서술될까. 이는 저자의 머리말 부분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정조에 대해 상당히 의외의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정조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내리는 데에 있어 대치점에 있는 인물이 바로 강이천이란 선비이다. 그렇다면 정조와 강이천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자는 왜 이 두 주인공을 내세워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문화투쟁에서 말하는 문화란 정치, 사회, 경제 등과 같이 세분화된 특정분야가 아니라 그 총합으로서의 문화다. 내가 서술하고 싶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의 문화투쟁은 총체적 의미의 문화사다. (62p)

우리는 문화라고 하면 책, 음악, 그림과 같은 예술분야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실제로 문화는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언어, 관념, 신앙, 관습, 예술, 기술 등의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문화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특정분야가 아닌 총체적인 의미에서 살펴보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위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조와 강이천 사이에서 일어난 문화투쟁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당시 소북에 속해 있던 강이천은 예언서『정감록』의 예언과 천주교의 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 정조는 강이천의 움직임에 그다지 주목한 것 같지 않지만, 강이천이 뜻을 같이 하는 무리를 만들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자 그에 대해 제재를 가하게 되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문체반정이라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후에는 천주교 탄압으로 이어지게 된다. 강이천을 비롯한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된 인물은 유배를 가게 된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 정순왕후의 섭정이 이어지면서 이 사건은 다시금 떠올랐고 강이천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청나라인 목사까지 사형당하게 된다. 이것이 강이천 사건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강이천은 중국도 망하고, 조선도 망하는 일대격변을 상상했다. 바다의 섬에서 진인이 출현하고, 그 전조로 서양의 대형 선박들이 조선 해안에 출몰하는 데다 서양 종교가 유행하는 놀라운 새 시대의 도래를 그는 엄연한 사실로 믿었다. (237p)

그는 한편으로 중국과 조선의 기성 왕조가 붕괴될 시운이 박두했다고 믿었고, 그날이 오면 자신을 비롯해 동지들이 뜻을 펴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고 예언과 소문 그리고 몇 가지 징후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243p)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본 강이천은 몽상가일 뿐 행동가는 아니었다. 예언서의 글을 믿고 진인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 직접 무언가를 하겠다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누군가 나타나 세상을 바꿔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강이천은 소북 출신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는 당파 소속이다. 또한 장애인이란 핸디캡도 가지고 있었기에 성리학적 사상으로 단단히 무장한 조선사회에 반감을 품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강이천에 주목했을까. 당시 조선시대는 서양선박의 출몰과 더불어 기존 사회에 대한 반감의 움직임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신분제로 인한 차별,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녀차별 등에 지친 사람들이 천주교의 교리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더불어 조선이 멸망할 것이란 예언이 덧붙여 이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져나간다면 조선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었다. 철저한 유교이념하에 세워진 조선은 성리학적 기반에서 성장해 왔고, 그것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에 이에 배치되는 사상은 극도로 위험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사상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이 강이천이다. 이러하기에 정조는 강이천의 움직임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고, 성리학적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는 조선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성리학적 이념을 더욱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패관소품을 금지하고 글씨체까지 통일시키게 만든 문체반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조는 사회적 통제를 바랐다. 그것도 현상적이기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완벽한 '세뇌'를 추구했다. 그가 추구한 완벽한 세뇌란 독서의 폭을 한정하고, 해석을 격식화하고, 나아가 글씨체까지도 통일하는 것이었다. 과장되게 말하면, 정조는 조지 오웰이 묘사한 "빅 브라더"의 내면화를 꿈꾸었다고 하겠다. (147p)

문체반정은 정조의 보수반동 (150p)

왕은 거의 신경질적이고 광적이라 할 만큼 이 문제에 집착했다. (231p)

이러한 정조의 움직임에 대해 저자는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있었다. 난 솔직히 말해 이렇게 극단적으로 정조를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졌다. 틀림없이 앞에서는 총체적인 면에서 접근한다고 했는데, 너무 편협한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한 나라의 왕이었다. 성리학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부정하는 이야기에 대해 정조가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는가. 정조는 절대로 강이천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지에 있는 인물이었다. 강이천의 사상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 될테니까. 이런 면에 대해 저자는 간략한 서술로 마무리해 버리고, 정조를 보수반동이라 칭했다. 이걸 거꾸로 말하면 정조가 진보개혁적인 인물이 되려면 조선왕조를 부정해야만 한다. 그러하기에 이런 극단적인 표현은 역사가로서 자제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문장의 신경질적이고 광적이란 표현도 너무 극단적이다. 이런 부분이 무척 거슬렸다. 그래서 저자의 가설과 논리적 검증이 흥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껄끄러운 기분을 내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시대는 분명 사회적 정치적으로 근대를 향한 태동이 있었던 시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이 시기는 양반의 세상이었고, 노론의 세상이었다. 만약 천주교 사상이 일파만파 퍼져가고 강이천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생각이 조선사회를 휘몰아쳤다 할지라도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후로도 조선사회는 백년도 넘게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사회가 그후로도 지속된 것은 정조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자들의 싹을 미리 다 잘라버렸기 때문이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러면서 정조와 흥선대원군, 고종을 한자리에 놓고 같은 묶음으로 묶어버리기까지 한다. 고종은 재위기간이 조선왕 중 3번째에 달할 정도로 오랫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다. 고종은 왕의 자질이 좀 모자랐던 사람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고, 자신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을 차례차례 숙청한 후 친일파만 남겨두었던 왕이며, 자신에게 위협이 닥치자 외세를 끌여들여 결국 조선을 망하게 한 왕이다. 이런 고종을 어떻게 정조와 한자리에 나란히 놓을 수 있는지 난 이해가 안된다.  

게다가 결국 강이천 등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순종과 정순왕후였다. 정조가 급사한 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종의 섭정을 맡아서 한 인물은 정순왕후로 정순왕후는 정조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정조는 이들을 처벌하긴 했지만 죽음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순왕후는 이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명했고 결국 이들은 옥사와 사형으로 이승을 떠났다. 결말이 그렇게 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끝까지 정조와 강이천을 세트로 묶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중반부 이후로는 대부분 천주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정조와 강이천의 이야기가 아니라 강이천과 천주교의 이야기가 되었달까. 또한 문화투쟁은 어느새 사라지고 천주교 탄압과 관련한 이야기만 나온다. 강이천 사건에 있어 천주교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총체적 접근이란 표현과는 달리 천주교를 중심으로한 이야기에 치우치고 있다. 물론 천주교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이라든지 강이천 등이 천주교를 믿게 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 자체가 문화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이쯤에서 강이천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강이천이란 사람에 대해 큰 신뢰를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언서나 도술을 믿고 진인이 나타나 세상을 바꿀거란 생각을 했으며, 천주교도 종말론같은 것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자 했다는 느낌이다.

친구들에게 그는 왕이 자신의 점수를 깎기 때문에 합격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70p)

강이천은 성균관시절 자신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는 것은 왕의 훼방이라 생각했다고 위 문장에 나온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강이천은 알게 모르게 정조에 대한 불만을 키워온 듯 하달까.

김정국의 고발 소식에 놀라 불안에 빠진 그가 자기를 고발한 김신국을 비롯해 친구 김려와 김건순 등을 되레 고발했던 것이다. (78p)

"시운"이 오래 못 간다는 말은 나라가 곧 망한다는 뜻이다. 함부로 이런 말을 했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 또는 반역죄를 뒤집어 쓰기 십상이다. 강이천은 이런 식의 진술을 통해 김이백과 김직순을 위험에 빠뜨리려했다. 그런데 피의자들 가운데 정작 "시운"을 즐겨 논한 것은 강이천 자신이었다.  (216p) 

이 사건으로 국문을 받으면서 보인 강이천의 태도는 날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잠잠히 넘어갈 수 있었던 사건 - 정조는 처음에 이 사건을 크게 문제삼지 않으려 했다 - 을 오히려 크게 만든 것이 본인이었다. 그리고 사상교류를 하던 벗들을 되려 고발하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에게 역모의 죄가 씌워질까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그 죄를 씌우려 했고, 국문때마다 말을 바꾸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간 말만 하는 등 강이천은 제 살 길 찾기에 바쁜 인물이었다. 이를 보고 저자는 현란한 전략이라며 강이천을 치켜세우고 있다.
 
더불어 강이천은 자신이 포섭하려는 김신국에게 전답을 팔고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한 것을 들어 사회정의가 실현된 사회를 꿈꿨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강이천은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는가. 이 책에는 그런 언급은 없다. 희귀한 그림이나 책 등이 집안에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과 지인들의 유흥을 즐기는 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래도 강이천이 신분차별이 없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이상사회를 꿈꾸던 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저자의 태도이다.

아직 이 사건에 관해 많은 자료를 읽지 못한 상태지만 나는 정조의 몇 마디 발언을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이 일종의 문화투쟁이라고 믿게 되었다. (114p)

나는《조선왕조실록》을 읽어내려 가며 사건 발생 초기에 정조와 노론 실세들 사이에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딱히 이를 입증할 근거가 없었지만 그런 "냄새"를 맡았다. (232p)

'정조의 몇 마디 발언을 통해'라는 문구가 내 눈에는 저자의 고정된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또한 입증할 근거는 없지만 그런 '냄새'를 맡았다니. 역사가에게 있어 상상력은 필수다. 가정을 하고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찾아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지만 이런 것은 도를 지나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다양한 책과 논문, 다른 역사연구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또한 정조시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고, 김홍도나 박지원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린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름없는 선비 강이천을 내세워 18세기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도 훌륭한 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치우친 발언이나 극단적인 발언을 이용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은 서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조의 경우 이 사건에 국한한 정조의 극단적인 모습을 묘사하기에만 급급했고, 반대로 강이천은 약간 비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치켜세우는 양극단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을 정확히 말하라면 강이천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정조를 악역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도 더불어 말해두고 싶다.

훌륭한 업적을 많이 세우고 후세에 칭송받는 왕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기술했다면 읽는 나 역시 조금 더 균형있는 시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정조에 대해 너무 폄하하는 발언이 많다 보니 내 입장에선 반발심이 생겼다고 할까. 역사가는 누구보다 공정한 입장에서 역사를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균형이 좀 어긋나 보인다.

난 저자의 말처럼 정조를 보수반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조가 살던 시대는 극히 보수적인 시대였으며 자신의 정통성이나 왕조의 정통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정조가 기존의 가치관과 이념을 고수하려고 했던 것이 보수반동일 수는 없다. 오히려 요즘 세상이, 요즘 정부가 보수반동이지 않은가. 현상을 유지하기는 커녕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요즘 정치판이 아닌가. 정조는 신분제를 완화하고 보수적인 당파인 노론을 억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며 화성 건설을 통해 이상적인 도시 건설을 꿈꾸는 등 이 시대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모두 배제한 채 문체반정과 천주교 탄압에만 중점을 맞춰 근대사회의 태동을 막고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렸기에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저자의 발언은 너무 치우져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역사는 사람의 손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것을 작성하는 사람들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고 후세에 그 기록을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이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역사가는 공정해져야 한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자 하면 보이는 것도 그런 것일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역사가에 있어 스스로 균형감각과 중심점을 잡는 태도는 무척 중요하다. 난 역사가가 쓴 책을 읽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의 논지와는 반대로 정조의 역성을 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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