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발효 이야기 파랑새 풍속 여행 3
이이화 원작, 박남정 지음, 백명식 그림 / 파랑새 / 2010년 11월
절판


발효식품하면 우리는 된장, 간장, 고추장같은 장류를 비롯해 김치류, 젓갈류, 막걸리나 소주같은 주류, 술을 발효시켜 만든 식초,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치즈나 요구르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집에서 먹는 반찬들은 대부분 발효식품을 이용해서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며 조물조물 무친 나물반찬이며, 한국인의 식탁에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김치 등은 우리 먹거리 중 발효 식품에 속한 것들이며 발효 식품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발효 식품을 먹게 되었고, 어떻게 발효 식품을 먹기 시작한 것일까. 이 책은 요즘처럼 인스턴트 음식이 판치는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는 발효 식품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청국장은 모두 메주를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메주를 잘 띄워야 그해 장맛이 좋아진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시렁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가 있었다. 메주를 띄우는 시기는 초겨울 무렵으로 난방을 한 방에서 메주를 띄우는데 그 냄새가 제법 고약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갈 때마다 코를 쥐었던 기억이 난다. 메주는 새끼줄을 이용해 매달았는데, 이 새끼줄이 메주를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 잘 띄워진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잘 숙성시킨후 액만 받은 것이 간장이고, 남은 메주덩어리를 다시 숙성시켜 만든 것이 된장이다.

장이란 것은 기본 양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장 담그는 날은 말을 뜻하는 오(午)자가 들어가는 날을 기본으로 했는데, 말이 콩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물을 뜻하는 수(水)자나 신맛을 뜻하는 산(酸)자와 비슷한 신(申)자가 들어가는 날은 장이 묽어지거나 시어지기 때문에 이날을 피해서 장을 담갔다. 이는 얼핏 보면 얼토당토않은 소리같지만, 얼마나 정성을 많이 기울여 장을 담갔나를 반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집은 요즘 장류를 모두 사서 먹지만, 예전에 할머니가 계셨을 당시엔 집에서 모든 장을 담갔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가 소금물 농도를 재는 농도계를 이용하는 건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림처럼 계란을 띄우는 것도 보긴 했지만. 근데 그때는 이미 아파트에서 생활했던지라 장맛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대신 할머니 댁에서 만드는 장은 시골장이라서 그런지 아주 맛이 좋았다. 장을 만들 때는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붉은 고추와 참숯을 넣는데 이는 세균 번식을 막아주기 위한 용도였다. 특히 숯의 경우 벌건 숯을 넣어 살균 효과를 내도록 했다. 6개월쯤 지나 간장을 떠내 장을 달이고, 남은 메주 덩어리는 다시 숙성시켜 된장으로 만든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장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장이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년이 지거나 전쟁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있을 때는 나라에서 구휼미뿐만 아니라 장도 함께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전쟁이 있을 경우에는 장독이 파괴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 시골풍경이라고 하면 장독대가 조르르 놓인 장면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요즘은 시골이라도 이런 풍경은 보기 어렵고 장을 전문으로 만드는 집에 수천개 이상의 장독이 놓인 장관은 가끔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장독대는 집 앞쪽에 약간 높게 만들었다. 장독은 옹기로 만들어 깨지기 쉬웠기 때문에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이렇게 만든 것이다. 맑은 날은 장독 두껑을 열어 햇빛을 쪼여주고, 흐린 날은 장독 뚜껑을 닫아 장을 보호했다. 또한 장독 역시 매일 닦아 옹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맛있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고추장은 간장, 된장 만드는 법과 좀 다르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와 메주가루, 찹쌀가루, 엿기름 가루등을 이용해 만드는데, 다른 장류와는 달리 좀 늦게 만들어진 장이다. 왜냐하면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장류에 비해 고급장으로 대우받았다.

고추장 중에 순창에서 만들어진 고추장이 유명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 임금님 밥상에 진상되던 고추장이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순창은 물이 좋고 날씨가 좋아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감칠맛이 나도록 겨울에 고추장을 담근다고 한다. 나 역시 순창 고추장을 다른 고추장에 비해 더 선호하는 편으로 내 입맛에 딱 맞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추장이 당연히 없었을 터. 그래서 매운 된장이라고 하여 된장에 산초나 후추를 넣은 것을 먹었다고 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은 발효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래서 장을 담그고는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와는 달리 단 며칠만에 발효시켜 먹을 수 있는 장이 있었으니 바로 냄새로 유명한 청국장이 바로 그것이다. 메주콩을 삶아 짚은 꽂은 후 뜨끈뜨끈한 방에 두고 이틀을 두면 끈적한 실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청국장이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구수하기는 누구도 따라올 것이 없다.

장류가 기본적인 양념의 역학을 하는 발효 식품이라면 젓갈류는 반찬으로 이용되었다. 젓갈을 숙성시키는 것을 삭힌다고 하는데, 얼마나 잘 삭혀지느냐에 따라 젓갈맛이 좌우된다. 젓갈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기에 예전에는 100종류가 넘는 젓갈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냉장고 등 음식물 보관이 용이한 전자제품이 많아져서 예전만큼 많은 젓갈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젓갈은 대부분 반찬으로 쓰이지만 다른 음식의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즉, 김치에 사용되는 젓갈은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내가 어릴때 엄마가 집에서 김치를 담글때 멸치젓을 사서 달인 후 체에 걸러 사용했다. 젓갈 달이는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지금이야 액젓 종류가 잘 나와서 그걸 사용하지만 말이다. 김치에 쓰이는 젓갈은 주로 멸치젓과 새우젓, 까나리액젓이지만, 반찬으로 만들어지는 젓갈은 생선과 좁쌀밥으로 만든 식해를 비롯해 내장으로 담근 젓갈, 알로 만든 젓갈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난 특히 창란젓과 오징어젓갈을 좋아하는데 내게 있어 밥도둑이 바로 젓갈이다. 오늘도 젓갈에 야채를 썰어넣고 비벼서 한그릇 뚝딱했을 정도이니까.

한국인의 밥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김치다. 그런데 고추가루가 들어간 배추김치는 20세기가 되어서야 담그기 시작했다. 고추는 임진왜란 후에 들어왔지만 배추가 18세기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김치들은 존재했다. 고추가루 양념이 없을 때는 맨드라미로 빨갛게 색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김치 종류는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했다. 요즘에는 사시사철 채소가 재배되고 지역의 경계도 없었지만 오래전에는 계절에 따라 지역의 특색에 따른 김치들이 존재했다. 각 지역 고유의 맛이나 계절 고유의 맛이 사라진 건 좀 아쉽지만 다양한 김치를 때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술은 대부분 곡주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포도같은 과일을 숙성시키거나 말이나 양의 젖을 발효시킨 술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탁주와 소주는 모두 곡식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할머니 댁과 관려된 기억은 시렁에 걸린 메주나 장독대뿐만이 아니다. 할머니는 술도 집에서 직접 담그셨는데 딱딱한 빵같은 누룩이며 방안을 떠억 차지한 커다란 장독이 아직도 기억난다. 술이 발효되면서 보글보글하고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던 기억도 있다. 예전에는 이렇듯 집집마다 술을 만들면서 고유의 술맛을 가진 술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서 술을 담그는 집도 없을 뿐더러 소규모 술도가가 공장화되면서 일정한 맛을 술이 대부분인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소주로 유명했다. 바로 그 유명한 안동소주의 산지로 증류식 소주를 만들던 고장이다. 지금은 안동소주 브랜드가 다양화되고 술도수도 많이 낮아진 것들도 판매하지만 역시 안동 소주는 45도의 술이 가장 좋다. 가격이 다른 소주에 비해 비싼 편인데 그것은 증류를 이용한 방법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만든 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술을 만들때도 온갖 정성을 다했으니 그것이 약이라고 하는 말도 영 틀리지는 않다.

이런 막걸리와 소주를 혼합해 발효시키면 식초가 된다. 서양에서는 포도주를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기도 하는데, 역시 우리나라는 막걸리와 소주를 이용한 식초다. 이외에도 감같은 과실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기도 한다. 식초는 이런 천연재료로 만든 것 뿐만 아니라 석유에서 뽑아낸 빙초산을 희석한 화학식초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화학식초가 몸에 좋을리 없다. 우리 고유의 식초는 모두 천연재료를 발효시켜 만든 것이므로 건강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천연재료로 만든 식초를 선택해야 한다.

장류, 젓갈류, 김치류, 술과 식초까지 우리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발효 식품은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런 발효 식품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이는 특징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발효 식품처럼 그 종류가 다양하게 발전되지는 않았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발효 식품. 인스턴트 입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이런 깊은 맛을 전부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천연재료로 만든 발효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사람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하기에 자연에서 나온 것들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0p, 38~39p, 29p, 44~45p, 26p, 47p, 52~53p, 59p, 66~67p, 77p, 94~95p, 102~103p, 111p, 119p, 128~129p), 책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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