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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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 처음에는 부모의 선택에 좌우되지만 자아가 발달해 나가면서 스스로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져 부모로부터 독립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지가 실은 최악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인생의 궤도를 급격하게 비틀어 놓을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이 청춘의 무모함과 열정, 격정이나 분노등과 결합되면 예상치도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간의 생은 무수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필립 로스의『울분』은 한 청년의 잘못된 선택과 청춘의 무모함, 뒤틀린 열정, 분노와 격정이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초의 미국, 유태계 백인인 마커스는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부모로부터 독립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마커스의 일상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전까지는 너무나도 다정했던 아버지였건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태도 변화에 마커스는 답답함과 염증을 느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 편입한 학교에서도 마커스를 압박하는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꺼리가 더 늘어나기만 한다. 기숙사에서 배정받은 방에는 총 네명의 학생이 기거했고, 그중 한 학생은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 낸다.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만 했던 마커스는 결국 방을 옮기게 된다. 새로 만난 룸메이트는 조용한 성격에 공부만 하는 학생이라 처음에는 마음이 편했지만 마커스의 입장에서는 뭔가 모르게 답답하다. 마커스는 좋아하는 여학생과 첫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후 룸메이트에게 데이트 보고를 하지만 그의 밋밋한 반응에 실망한다. 사실 그 여학생에게 보였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달랐던 것에 대해서도 무척 실망했기 때문에 더 그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룸메이트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결국 마커스가 데이트를 했던 여학생에 대한 룸메이트의 발언때문에 완전히 박살나고 마커스는 새로운 방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편입 몇 주만에 방을 벌써 세번째 옮기는 마커스는 대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과장의 말에 따박따박 대꾸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치던 마커스는 급기야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구토하게 되고 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원생활은 나쁘지 않았고, 데이트 상대인 그녀가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마커스에게 또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마커스는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나 역시 대학에 입학할 때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다르다. 자신의 의지를 통한 선택의 폭도 좁고, 전통이란 규율을 강조하는 대학의 행정은 마커스를 숨막히게 했다. 마커스는 스스로를 아주 똑똑하다고 여긴 학생이었고, 그래서 교수들의 강의는 들을 만한 수준이라는 평을 할 정도였으니 과장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논지를 꿋꿋하게 펼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의 논리는 여전히 그 폭이 좁았고 일방적이었다. 대학이란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다. 마커스는 스스로의 주위에 커다란 바리케이트를 세웠고 그 공간안에 누군가 침입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런 그의 성향은 주위와의 경계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결국 더욱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만약 마커스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간섭이 아니라 사랑이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난 마커스의 아버지가 마커스를 걱정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마커스의 사촌들이 전쟁에서 죽어간 걸 알았기에 마커스마저 전쟁에 동원되어 무의미한 죽음을 당하는 걸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커스가 대학에 잘 적응을 했고 학과과정을 잘 마쳤더라면 그는 그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마커스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고, 대학생활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만 취하려했다. 그러한 것들이 마커스의 인생 진로를 조금씩 틀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가 그렇게 된 연유를 보면 마커스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란 것도 짐작해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의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근 50년동안 전쟁에 참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커스의 사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다는 것만 봐도 그 당시 전쟁이 일상적인 일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내의 젊은이들은 전통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차츰 갖추어 나가고 있었으며 그것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단적인 예이지만 마커스의 두번째 룸메이트가 자동차 폭주 사고로 사망한 것이나,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칩입한 후 폭동을 일으켰던 것은 가슴속의 격정과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커스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비극적인 삶의 진로를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청춘이란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창조의 에너지와 파괴의 에너지란 표현을 써도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미숙한 점이 많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 파괴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경우도 많다. 마커스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젊은이들을 폭주하게 만들었고, 파괴의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선택이란 것은 고스란히 마커스의 몫이었으니, 스스로 기름을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보여 무척 안타깝기만 하다. 마커스가 조금 다른 선택을 했으면 그의 인생은 180도 변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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