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판타지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성기 옮김 / 문학의문학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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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자와 남자는 많은 면에서 상이하다. 먼저 떠오르는 건 신체구조인데, 그것은 생식과 관련된 부분으로 이는 번식과 관련되었으니 비록 겉모습은 다르다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가장 다른 부분은 요즘 말로 뇌구조란 것일 것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뇌는 크기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양과 구성성분, 그리고 역할은 똑같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이나 정신적 감응, 똑같은 사안에 대한 대응방식은 무척이나 다르게 나타난다. 도대체 이건 왜 그런 것일까?

현생 인류가 처음 지구에 나타났을 때는 생존본능이란 것이 우선이 되어야 했기에 정신적인 면에서 남녀의 구별일 별로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달되어 가면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올바른 여성상, 올바른 남성상으로 구별되고 분화되어 발달되었을 것이고 지금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이런 **상이라고 하는 것은 성을 규정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이 범주에서 벗어나면 일탈이라는 표현으로 그 대상을 규정한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런 걸 만들었지? 라는 물음에 대답하자면 남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차이점에서 오는 차이점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통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면서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여성성을 강요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니 이런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그럼 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이 작품의 주인공 다카토 나츠는 35살의 기혼여성으로 극작가이다. 결혼한지 10년, 남편과의 사이에 아직 아이는 없다. 나츠의 어린시절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지배적인 여성으로 언제나 나츠를 지배했다. 그래서 나츠는 어린아이의 생존본능으로 '착한 아이'가 되어 살아왔다. 그것은 여전히 나츠를 옭아매는 장치로 남편과의 사이에서도 나츠는 '착하고 말 잘듣는 아내'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나츠가 어느날 시작된 메일교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과연 나츠의 새로운 해방구가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다. 나츠의 행동을 보면서 분통이 터졌다. 나츠가 욕망을 제일 많이 분출한 곳은 성적인 부분이다. 삽십대 중반의 여성이 성에 대해 강한 욕구를 가지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흠잡고 싶지 않다. 내가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츠가 선택한 남성들이 하나같이 엉망이란 것이었다.

나츠의 남편 쇼고는 덩치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물론 나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나츠를 지배하고자 한다. 특히 나츠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다. 또한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나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츠와 쇼고의 관계를 보면 성역할에서는 남녀가 바뀐듯한 부분이 얼핏 보이긴 하지만, 결국 지배권과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남편인 쇼고쪽이다. 나츠는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쇼고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이런 남편에게서 벗어나도록 한 사람은 연출가인 시자와 이치로타란 50대 남자로 나츠의 메일친구이다. 그에게 남편과의 일, 자신의 일을 상담하면셔 나츠는 남편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츠는 시자와에게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하고 결국 불륜까지 이르게 된다. 메일 내용을 보면 먼저 유혹한 것은 나츠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자와 쪽에서 먼저 유혹했다. 나츠가 먼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줬달까. 전형적인 호색한의 모습이 바로 시자와이며, 그는 육식남이라고 할 수 있다. 나츠가 미끼를 물도록 기다렸다가 미끼를 물자 덥썩 채갔고, 몇 번 가지고 놀다 버려버린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츠는 이 남자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 번의 일탈이 너무나도 큰 쾌락을 가져다 주었으니까. 하지만 시자와도 그렇지만 남자란 대부분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다. 시자와 같이 호색한의 경우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손에 들어올듯 말듯 한 상대가 재미있지 일단 손에 들어온 상대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시자와는 나츠에게 특식이었지만, 절대 먹어서는 안될 금단의 음식이기도 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자와와의 관계가 그렇게 된 후 나츠가 만난 남자는 이와이라는 대학시절 선배였다. 일 때문에 간 홍콩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 나츠는 그와 대학시절 사귄 적이 있다. 이와이는 전형적인 초식남이다.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지배하지는 않는다. 시자와의 사이에서 상처를 받은 나츠는 이와이와 관계를 맺게 되고 그것은 일본에 돌아와서까지 몇달가량 지속된다. 이와이는 나츠와 마찬가지로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지만, 나츠와의 관계에 푹 빠져든다. 이와이의 경우 먼저 여자가 다가오지 않는 한 스스로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없다. 아내와의 관계와는 다른 나츠와의 관계는 분명 그에게 색다른 즐거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와이 역시 찾아오는 빈도수가 적어지게 된다. 이와이 역시 오랜 결혼생활에서 맛 본 짜릿한 시간이 즐겁긴 했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와이가 나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라이벌 의식을 느꼈는지 좀 거칠어졌다는 것일지도. 수컷본능 발현이랄까. 이런 걸 보면 남자란... 하고 혀를 차게 된다.

나츠가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는 신인 배우로 오바야시란 연하의 남자이다. 그는 시자와와 이와이를 반반씩 섞어놓은 인물이랄까. 부드러우면서도 거칠다. 나츠는 이와이와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그에게 푹 빠지게 되고, 이와이는 그런 나츠를 보며 안달한다.

이외에도 나츠가 만난 남자 중에는 출장호스트도 있고, 승려도 있다. 이렇게 말하니 나츠의 남성편력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워낙 수위 높은 성애 묘사가 많기도 하고, 이 남자 저 남자로 옮겨다니는 나츠의 마음이 갈대같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나츠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것을 꿈꾸면서도 오렌지색 가로등불빛어럼 따스한 것을 꿈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마구 분출하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나츠가 고른 상대가 죄다 별로였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몫 한다.

나츠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엄마딸에서 벗어나고 남자의 지배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츠가 결국 이룬 것은 무엇일까. 성적 욕구의 해소말고는 뭘 얻었을까. 차라리 남자들을 갈아치우면서 그로 얻은 에너지를 창작욕으로 바꾸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츠가 그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면서 쓴 작품은 딱 하나다. 물론 이제까지 그녀가 쓰던 작품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여전히 미비하다. 그리고 나츠는 자유롭지만 여전히 외롭다.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욕망을 분출하고 그것으로 끝나거나 아쉬움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츠는 욕망을 사랑과 결함시키고자 했다. 그게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남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나츠가 열망하는 불꽃과 가로등 불빛은 상반되는 지점에 있다. 두 가지를 모두 갖기 힘든 건 나츠도 희미하게 깨닫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불꽃을 좇으며 살 수 있을까. 불꽃은 화려하지만 오래가지 않기 떄문이다.

책띠지의 관능소설이란 표현이나 역자의 한 중년여성의 성장소설이란 말 모두 내겐 탐탁지않다. 성애묘사가 수위가 높다고 관능적인 것은 아니다. 점점 갈수록 지겨워졌달까. 오히려 관능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메일교환쪽이었다. 그리고 나츠가 분명 엄마딸에서 벗어나고 남자들이 만든 여성성이나 올바른 여성상에서 벗어나고자 한 노력은 있지만 그것으로 성장했다고 보긴 힘들다. 여전히 나츠는 안개속을 헤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나츠가 안타깝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그런 감정으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되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더블 판타지라는 제목에서 의미하듯 남녀간의 차이에 대해서 좀더 확장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주로 나츠의 입장에서 나츠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할 뿐, 남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상황을 통해 짐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과 욕망에 있어서 남녀의 반응은 무척 다르다. 그것을 여자의 입장에서만 주로 드러낸 것은 반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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