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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평점 :
난 역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자주 읽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소설도 그러할 진대, 하물며 일본 소설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시대물은 즐겨 읽는데 아무래도 역사소설보다 조금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한 픽션이라는 것도 한몫하지만. 일본 시대물 중 가장 좋아하는 시대는 역시 에도 시대이지만, 헤이안 시대나 센코쿠 시대 이야기도 좋아하는 편이다. 에도 시대물은 꽤 많이 나와 있어 많이 접했지만, 헤이안 시대의 이야기는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야기나 겐지 이야기 정도를 접했고, 센코쿠 시대는 드라마『풍림화산』을 봤거나 세키가하라 전투가 등장하는 만화『사무라이디퍼 쿄우』정도를 읽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일단 한 권이라 부담이 없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센코쿠 시대 이야기니까.
센코쿠 시대는 약 100년간 지속된 난세였다. 센코쿠 시대 말기를 대표하는 명장을 떠올리라면 역시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먼저 떠오른다.『노보우의 성』은 센코쿠시대 말기로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한 후 히에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마지막으로 함락한 오시 성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즉, 센코쿠 시대 전반이 아니라, 또한 히데요시가 함락하고 통일한 일본 전체 성 이야기가 아니라 부슈의 오시 성과 관련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권으로 완결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시 성의 당주 나리타 우지나가의 사촌 나리타 나가치카는 이름보다는 노보우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다. 거대한 덩치에 못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행동도 굼뜨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남자이지만, 성주민들에게 무척 인기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사무라이의 아들이지만 무예란 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성의 농민들의 일을 도우는 걸 더 좋아하지만, 농사일도 망치기 일쑤라 농민들은 노보우를 좋아하면서도 일을 도와준다고 하면 극구 말릴 정도이다. 이렇듯 평온하게만 보이는 오시 성이지만, 히데요시가 간사이 지방의 호조 가문을 친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당주인 나리타 우지나가는 히데요시에 맞서 봤자 성의 사무라이를 비롯해 농민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호조 가문에 협력하는 척 하면서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기로 한다. 우지나가가 오다와라 성으로 간 사이 히데요시 진영의 이시다 미쓰나리가 오시 성을 함락하기 위해 오시 성으로 다가온다. 미쓰나리는 사자로 마사이에를 보내지만 거만한 마시이에는 오시 성의 사무라이와 현재 성주인 노보우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사람을 발로 걷어찬다.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조롱하고 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난 싫어. 그런 건 받아 들이지 못하겠어!!" (158p)
오시 성은 처음에는 히데요시에 항복의사를 표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보우는 마사이에의 말을 듣고 전투를 결심한다. 2만 3쳔의 병사를 가진 미쓰나리의 군대와 남녀노소 다 모아봤자 4천정도의 오시성. 누가 봐도 뻔한 결말이 나올 듯 하다. 하지만, 사태는 예상밖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농민들은 오시 성의 가로들인 마사키 단바, 사카마키 유키에, 시바사키 이즈미가 찾아와 전쟁동원령을 내렸을 때는 눈도 꿈쩍하지 않더니 나가치카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더니 군말 없이 전투에 참가하기로 한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눈에 갓난아이처럼 보이는 노보우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자면 노보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나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노보우가 아이같기만 하다면 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려하겠는가. 오히려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항복이란 수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노보우가 여기에서 하는 일은 극히 적다. 전투에도 직접 참가하는 것도 없고 전략을 세우는 것도 없다. 그래서 존재감이 희미해 보이지만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계략을 세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전투는 마사키 단바, 유키에, 이즈미가 주로 담당하는데 이들은 각각 개성이 강해 누군가의 명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 전략을 세워 싸우는 것을 택했다. 나가치카가 규율이란 것에만 얽매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통솔하려는 욕심을 부렸다면 첫 전투에서 패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보우의 강점은 인간적이란 것이고, 성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인물이란 것이다. 즉, 자신을 믿고 따라오게 만든 인물이었다.
특히 나가치카가 미쓰나리의 수공에 맞서 홀로 배를 타고 나가 배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에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얼마나 대담한 장수인가. 2만도 넘는 적병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 보통 사람의 배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리라. 하지만 이 행동의 속뜻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단지 자신의 죽음을 성주민들에게 보임으로써 수공으로 인해 침체된 오시 성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시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려 했다는 것이 더욱 더 놀라운 것이다. 무장의 춤이 아닌 풍작을 기원하는 춤.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치르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화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 노보우의 춤은 바로 그 평화를 기원하는 것에 다름없었다. 이 노보우의 행동이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이것이 수공을 무너뜨리는 계책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명장이란 사람 좋고, 어수룩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편안하게 대하지만, 평범한 이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계락을 지난 자를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303p)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 나가치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움직이는 능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경지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이 성의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미쓰나리의 대군에 맞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미쓰나리가 데리고 있는 군사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군사들일 뿐, 오시 성의 군사나 백성들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사가 아니었다. 비록 숫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시다 미쓰나리의 잘못된 판단과 억지스러운 전술 등이 오시 성에 역으로 운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미쓰나리는 스스로를 히데요시의 제자라고 생각했다. 스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히데요시를 자신과 능력을 견주는 경쟁상대로 여기기도 했다. (280p)
히데요시가 성공한 수공을 자신도 성공하겠다든지, 히데요시의 수하로 오랜 시간을 지냈지만 처음으로 맡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로 싶어 무리수를 둔 것은 미쓰나리에게 있어 패배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사이다 보니 전공을 세우고 싶어했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략의 천재라 불리는 미쓰나리가 이렇게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역사의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서에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사서에 기록된 것은 극히 일부이기에 디테일한 부분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것이다. 이는 어느 역사 소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어쨌거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노보우 나가치카를 비롯해 오시 성의 가로들이나 승려 묘료, 농민 다베에와 치요, 치도리 등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롭다. 또한 가이히메와 다마도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인데, 가이와 다마는 정말 여장부라 할 수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성처럼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연악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몸은 자기가 지킬 정도의 담대함을 가진 캐릭터라고 할까. 하긴 이런 난세에 남자에게만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겠지. 그래서 이런 여성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 수 밖에 없다.
또한 전투의 미학이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무슨 죽고 죽이는 전쟁에 미학이야?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마사키 단바와 적장의 일대일 대결 등 대장들이 결투를 할 때는 모두 손을 놓고 그들을 지켜 본다. 어쩌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부상자나 사앙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가치카가 배를 타고 춤을 추며 나갔을 때도 처음에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이 시대의 전투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이 시대 사무라이들은 에도 시대 사무라이와 달라 더욱 의리있고 자긍심이 높았다는 것도 본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시대의 전쟁과 비교해 보면 이 시대의 전쟁은 분명 미학이란 것이 존재한다. 요즘 시대의 전쟁은 겉으로는 평화와 정의를 내세우지만 속을 보면 철저한 자본의 논리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무조건 죽고 죽이지만, 이 시대는 분명히 요즘과 달랐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시 성은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더이상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최후의 수단이었으니까. 히데요시는 이 오시 성 함락으로 드디어 일본통일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히데요시가 죽고 다시 혼란이 찾아오고 세키가하라 전투를 거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전국 통일, 그리고 드디어 바쿠후시대를 열게 된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한 여러가지 이야기는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 따로 센코쿠 시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실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보우의 성』은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나온 특별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기본 역사 소설보다 덜 딱딱하고 더 재미있다. 또한 곳곳에 시대적 배경과 관련한 설명들이 덧붙여져 있어 센코쿠 시대에 대한 제반지식이 하나도 없다 해도 읽는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또한 히데요시가 좋아했던 일본 다도의 거성, 센 리큐의 이름도 거론되기도 한다. (요런 건 깨알같은 재미?)
『노보우의 성』은 선명한 캐릭터, 생생한 전투장면, 기발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진정한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참, 표지 이야기 하나더.
그림이 눈에 많이 익다 했더니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만화가 오노 나츠메가 표지 그림을 그렸다. 납치사 고요 그림 풍이랄까. 비록 표지 그림뿐이지만 노보우 나리카 나가치카의 특색을 잘 살린 그림이라 무척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