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뒷간 이야기 파랑새 풍속 여행 2
이이화 원작, 김진섭 지음, 심가인 그림 / 파랑새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있어 배설과 관련된 부분은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배변활동이란 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것인데다가 배설물이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역사책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문화의 독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한번쯤은 제대로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 뒷간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역사서는 <삼국유사>로 여기에는 측청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뒷간, 측간, 정랑, 통시, 해우소, 변소 등 뒷간을 뜻하는 용어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즉 뒷간과 관련된 것이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뒷간이라 불렸을까. 지금과 달리 옛날 화장실들은 수세식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름이 되면 냄새도 심하고 파리같은 해충이 꼬이기도 쉬웠던지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뒷간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뒤란 것은 북쪽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서 주로 뒷간은 북쪽에 위치한다.

뒷간의 형태는 발을 디디고 볼 일을 볼 수 있게 만든 부춛돌을 사용한 것이 가장 오래된 형태이지만 지역에 따라서 뒷간의 형태가 달라지기도 했다. 남쪽지방의 경우 볕이 잘 들지 않는 북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지만, 북쪽의 추운 지방같은 경우 집안의 외양간옆을 뒷간으로 이용했다. 외양간에서 나오는 두엄더미와 사람의 배설물을 섞어 거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산간지방의 경우 산짐승의 습격을 막기 위해 2층으로 뒷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 뒷간을 위치시키는 경우는 남쪽에서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제주도이다. 제주 똥돼지를 키우는 방법을 떠올리면, 아하, 하고 느낌이 올 듯.


위 사진은 신라시대의 변기이다. 자세히 보면 뒷쪽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동식 수세변기라고나 할까. 물을 부으면 저 뒤에 있는 구멍으로 배설물이 흘러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요즘의 수세식 변기와도 모양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변기는 앞쪽으로 배설물이 내려가지만 말이다.


절에서는 뒷간에 드나드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총 다섯단계의 입측오주를 외우는데, 이 입측오주는 '뒷간에 들어가서 빌어야할 다섯가지'쯤으로 보면 된다. 이를 외우는 이유는 수행과 더불어 뒷간에 있는 측신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동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측간에 사는 신은 성격이 예민하여 신경질적이라 노여움을 사면 동티를 입게 된다. 그러하기에 측간에 들어가기 전에 헛기침을 하고 들어가는 것도 측간신이 자리를 비켜주게 하기 위함이다. 안그러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고 있다 놀라서 뒷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머리카락을 뒤집어 씌워 시름시름 앓게 하다가 죽게 한다고 한다.


위에 보이는 것은 매우틀 혹은 매화틀이라고 하는 것으로 임금님이 사용하던 이동식 변기이다. 나무틀에 비단을 덧씌운 형태로 임금님이 볼 일을 보면 의원이 그 배설물을 보고 임금님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임금님의 뒷처리는 비단으로 했다고.


호자는 남성용 이동변기로 소변용이다. 호랑이 모양이라고 해서 호자인데,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호자를 보면서 난 요즘 병원에서 쓰는 이동용 소변기를 떠올렸다. 병원용과 모양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꽤 비슷하달까. 완전히 다른 점이라면 호자의 경우 실용성과 장식성을 고루 갖춘 반면, 병원의 소변용기같은 경우 실용성만이 있다고 하는 점이랄까.


여성용 이동변기이다. 난 이동변기라고 하면 요강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런 것도 있다니 놀라웠달까. 약시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려있고, 내용물을 비우기 쉽게 한쪽이 뽀족하다. 거름더미위에 붓기 용이한 형태이다.

이외에도 요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과거급제자 행렬뒤에 요강을 지고 따라가는 하인이라든지, 요강만을 전담한 하인들 이야기라든지. 아무래도 양반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 싫었던지라 아랫사람을 시켜 이 모든 것을 처리하도록 했달까.

이동용말고 집에서 사용하는 측간은 양반의 경우 갓걸이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푸핫하는 웃음이. 양반들은 뒷간에 갈 때도 갓을 쓰고 갔구나. 아이쿠야.


서민들의 경우 뒷처리를 할 때 뒷간 근처에 새끼줄을 매놓고 앉은걸음으로 몇 걸음을 걸어 뒷처리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단체로 뒷처리를 하지는 않았게지만, 가족을 비롯해 손님도 이걸 썼다고 한다. 이외에도 풀이나 짚 등을 이용해 뒷처리를 했다. 아무래도 서민들이 종이로 뒷처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뒷간과 관련된 도구라고 하면 역시 똥장군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똥장군은 지게 위에 올려져 있는 원통같은 것인데 어릴적에 이와 비슷한 걸 봤던 기억이 난다. 빨간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은 좀 가물가물하다.

시골 할머니댁은 내가 초등학교다닐 당시 양옥으로 집을 새로 짓기전까지는 한옥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뒷간이 바깥에 위치했는데 밤에는 여기에 가는 게 정말 무서웠다. 흙벽돌로 막아놓은 뒷간은 밑에 다 들여다 보이는 위에 널판지 몇장이 깔린 게 전부였으니까. 거기 앉아 있으면 빨간 휴지줄까, 파란 휴지 줄까하면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았고, 잘못 발을 디디면 밑으로 빠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동생이나 엄마와 함께 가서 문밖에서 지키라고 매번 부탁을 했다. 거기 있나, 응, 있다. 라는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일 뿐이지만.

배설물은 사람의 건강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으며,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거름으로 사용되는 아주 귀중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라며 쉬쉬하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수세식 화장실은 드물었고, 뒷간에서 나온 배설물을 발효시켜 거름으로 이용했던 걸 생각해 보면 요즘은 이 배설물과 화장실을 너무 소홀히 대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설행위와 뒷간문화는 우리가 살아있는 평생동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뒷간과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뒷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속에 대해 잘 알려주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16p, 58p, 67p, 78p, 80p, 87p,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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