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가 지구에 처음 출현했을 때는 그들에게 생존본능만이 있었다. 하지만 정착을 하고 필요에 의해 도구를 발명하면서 인간은 점점 발달된 존재가 되어 갔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인간은 점점 문명화되기 시작했고, 문명의 발달과 함께 기술도 발달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은 문화적인 면보다는 좀 더 늦게 발달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발달하기 시작한 기술의 진화는 점점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단기간에도 놀랄만큼의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풍족함과 편리함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많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그 기능이 점차 쇠퇴해가게 된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 신체의 퇴화를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기술에 대한 맹신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기계나 기술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기술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DNA 검사를 통해 범인을 찾는 기술이란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DNA가 발견되고 DNA를 검사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지만 소설의 설정상 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DNA만으로 범인을 프로파일링할 수 있고 몽타주까지 그려낼 수 있다면? 검거율은 당연히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DNA 해석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NOT FOUND」라고 해석 결과가 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연쇄살인 사건으로 처음엔 젊은 여자들을 노린 사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DNA 해석 시스템을 개발한 개발자 두 명마저 살해당하게 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아직 DNA 등록자가 완벽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시스템상의 문제일까.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의 가구라 류헤이는 개발자 남매에게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DNA를 해석한 결과에 경악하게 된다. 가구라 류헤이 적합률 99.9%. 자신이 그들을 죽일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가 죽인 것일까. 가구라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류라는 다른 인격을 만들어냈다. 가구라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인격인 류는 감성적이며 심리적이고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즉 둘은 극과 극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가구라는 1주일에 한번씩 자신의 다른 인격을 출현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렇다 보니 혹시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가 사건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가구라는 자신이 용의자란 생각을 하고 이 사건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도주한다. 도주 중 가구라는 류의 여자친구라는 스즈랑을 만나게 되고 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대체 스즈랑은 누구일까. 스즈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대충 눈치를 챘지만 정확히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막바지에 이르러 알게 되었는데, 이 스즈랑의 존재가 류 뿐만 아니라 가구라에게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된다. 류만이 볼 수 있었던 스즈랑을 가구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두 인격의 골이 메워지고 있단 증거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모든 일이 끝난후 류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에 납득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크든 적든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각과 심리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좀 다른 말로 하자면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의 구분이랄까.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것이 어느 것에 좀더 치우쳐 있을 뿐 가구라와 류처럼 완전히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일부러 두 인격을 완전히 상반되게 그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더 중시하고 있으며 무엇에 더 의지하고 살아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균형과 조화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가구라와 류가 서로의 접점을 찾게 되면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이 어떤 인간형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또다른 계급분화란 문제이다. 분명히 지금 시대에는 계급이란 것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에 있어서 그 계급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술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사람이고, 하층부에 있는 사람은 지배당하고 관리를 받는 사람이라 나온다. 즉 지배와 관리가 가능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이 이 세상의 룰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발달도 상위계층을 위한 것이며 계급사회를 존속시키고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견이 비약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 내용만으로 볼 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그럴 것이란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인류문명이 생산해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쇠퇴하기 시작한 인간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추구해야할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케 만든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될 수록 그 구성원들은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부품이 되어 간다. 이 작품은 이런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DNA 해석,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통한 미스터리 추적극이자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지양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플래티나 데이터』는 논리적이자 감성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과학기술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이야기하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본질이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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