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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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은 내게 있어 아직 미지의 분야이다. 한국 소설이나 일본 소설은 자주 읽지만 이상하게도 중국 문학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할까. 루쉰이나 다이허우잉, 최근의 장윈을 제외하면 접해본 작가가 전혀 없으며 읽은 책도 각 작가당 단 한 권씩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중국이지만 사회체제가 달라서 그런지 지금의 중국은 너무나도 낯설다. 그렇다 보니 문학 역시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그래서 일부로라도 이젠 중국 문학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나게 된 바진의『차가운 밤』. 혹시 어렵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설렘을 가지고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의 시간적 배경은 1944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시기로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시기에서 일본이 항복한 시기까지의 약 1년간이며, 공간적 배경은 국민당정부가 피난을 와 있던 충칭이다. 작품의 화자는 왕원쉬안이라는 30대의 남자로 결혼하여 아내와 아들이 있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가난은 그들 가족을 궁지로 몰고 가고, 직장에서의 무시와 경멸은 그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심각할 정도에 이른 고부간의 갈등은 나날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해지지 않는다.

나약한 성격의 왕원쉬안은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어머니와 신여성인 아내의 갈등을 보면서도 아무 방책도 세우지 못한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골은 너무나도 깊다. 원쉬안의 어머니는 원쉬안의 아내인 수성을 보고 그년, 창녀, 정부등으로 부르며, 수성이 무얼하든 못마땅해 한다. 고부간의 대립되는 모습은 한의사와 서양의사, 전족세대와 전족을 하지 않은 세대, 중매 결혼과 자유연애결혼, 샤오쉬안의 교육문제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전의 일이 정말 꿈만 같아요. 우리는 이상이 있었고 이상을 실현할 용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왜 우리는 예전처럼 살 수 없는 건가요? (41p)

왕원쉬안은 대학까지 졸업한 지식인층이었지만 전쟁은 그에게서 꿈과 희망, 행복 그리고 건강마저 앗아가게 된다. 교육사업을 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가족의 행복마저 앗아갔다.

어머니는 고통을 호소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내는 빛나고 풍부한 생명력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청춘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어머니의 초췌하고 수심 어린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고, 아내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대하는 것도 두려웠다. (110p)

원쉬안의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왔다. 그러하기에 아들에게 거는 기대도 많고, 아들에 의지하는 부분도 무척이나 크다. 그러하기에 아들의 사랑을 가져간 수성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은 이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삶면서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수성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고 그것을 증오로 바꾸어 수성을 대하는 것이다.

따뜻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집, 선량하나 유약하고 병든 남편, 극히 이기적이고 완고하며 보수적인 어머니, 싸움과 질시, 적막과 빈곤, 전쟁 중에 사라진 청춘, 자신이 추구했으나 날아가 버린 행복, 어두운 앞날, 이 모든 것이 그녀 가슴속에서 파도처럼 용솟음쳤다. (151p)

사람은 좋지만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남편과 자신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시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의 손에서 자라 자신을 대할 때도 데면데면하게 구는 아들 샤오쉬안까지 그녀는 집에 도통 정을 붙일 수 없다. 이런 그녀가 마음이 가는 것은 역시 사회생활일 수 밖에 없다. 은행에서의 근무는 그녀의 숨통을 틔워 주었고, 멋진 남성의 구애는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결국, 수성은 그들을 두고 란저우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자유롭게 날기 위해.

자신은 그녀와 동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210p)

시간은 병들고 늙은 인력거꾼이 끄는 마차처럼 그들을 천천히 끌고 갔고,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도 그에게는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252p)

원쉬안과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녀는 자신들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충칭에 머무르는 동안 수성은 란저우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정체와 비상. 이것이 이들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은 왕원쉬안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이상도 꿈도 빼앗기고 가족마저 해체되었다.『차가운 밤』은 전쟁으로 인한 한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는 소설로 고부간의 갈등을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더 큰 의미에서 신구세대의 갈등을 의미한다. 이는 한 가족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내에서의 신구세대의 갈등도 의미한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옛시절로 돌아가길 꿈꿨던 사람들은 종전이 자신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린가."하는 문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가족이 완전히 무너져 해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구세대의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구세대들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유지하려 하고, 신세대들은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이상향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도, 나약한 입장을 취하는 것도 힘겨운 현실을 결코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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