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병원도 싫고 의사도 싫다. 어릴 때부터 자주 병원신세를 져야 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병원에만 가면 더 아픈 느낌이 든다. 온통 아픈 사람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의사들의 냉담한 태도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몇년 전 하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간 적이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종합병원이 있어 일단 그곳에서 진찰받았지만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도 2~3시간을 기다려 3분 진료받았다. 질의응답이 전부, 나머지는 검사, 검사, 검사. 지리한 검사가 이어지고 며칠을 기다려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근막통증증후군이란 생소한 병명. 되게 거한 병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를 받자고 피검사에 소변검사, X-레이 촬영에, MRI까지 찍었다. 사실 이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데 치료방법은 약물, 주사, 재활치료등 정도다. 그러니 그다지 심각할 건 없는데 괜히 사람 겁주고 있어, 이런 느낌이었달까. 

검사비는 둘째치고 제일 기분이 안좋은 건 역시 의사의 태도였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환자를 봐야 하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환자를 단지 케이스로만 보는 게 제일 싫었다. 의사 입장에선 내가 인간으로 보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달까. 이런 건 수없이 경험해 봤다. 문진으로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검사. 그리고 주사나 약처방. 병원을 다닐 때마다 늘 이런 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병원도 의사도 싫다. 물론 그들이 그냥 의사가 된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건 실력이 좋은 의사는 많지만, 좋은 의사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신의 카르테』는 지방의 한 병원에 일하는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구리하라 이치토. 이 병원에서 5년 근무한 의사로 결혼은 1년전에 했다. 이정도 설정만 보면 대충 그렇고 그런 의학 소설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근데 이거 첫페이지부터 묘하다. 조금 더 읽으면 어디가 묘한지 알게 된다. 책 본문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 의사 말투가 올드하달까.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고 그의 소설『풀베개』를 무척 좋아해서 소설 전문을 달달 외울 정도라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게다가 그가 다른 의사들에게 붙인 별명인 늙은 너구리, 늙은 여우, 자약 선생 등을 비롯해 그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인 온타케소의 거주민인 남작님과 학사님등을 봐도 나쓰메 소세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것이다. 별명을 붙인 걸 보면『도련님』이 떠오른다. 그건 그렇고.

구리하라는 내과를 담당하는 의사이지만 근무하는 병원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응급실 담당도 하고 있는데, 구리하라가 근무하는 날이면 환자들이 더욱더 많다는 미스터리한 의사이기도 하다. 며칠 밤새는 건 기본이지만 나름대로 이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구리하라. 그가 대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령의 환자들로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 기억나는 환자는 노령의 암환자인 아즈미씨. 남편과 사별한 후 외롭게 살아온 할머니인데 대학병원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구리하라가 일하는 병원에 재입원한 환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 할머니를 방문하는 노신사와의 일화와 구리하라가 아즈미씨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챙겨주던 장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고이더니 결국 아즈미씨가 천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으흑하는 신음과 함께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꽤나 유머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이지만 환자와 의사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아즈미씨의 죽음때문이 아니었다. 노신사와 아즈미씨의 오래된 인연과 그들의 사연, 구리하라의 생일 선물, 그리고 천국에서 보낸 편지가 내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단순히 신파극이었다면 눈물이 이토록 나오지 않았으리라. 

또한 학사님과의 일화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학사님의 사연을 듣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남작님이 학사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낸 학사님의 앞날을 위한 축복이 담긴 선물이랄까. 이런 선물은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지리라. 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고, 멈추지 않는 비도 없다는 구리하라의 말처럼, 사람의 인생은 늘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한다. 음지의 시간이 길었다 해도 언젠가 해가 뜨는 양지의 시간이 오게 마련이니까.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남작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무심하게 말하는 듯한 구리하라의 말투에 웃다가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마음이 먹먹해지다 눈물을 터뜨리게 만드는『신의 카르테』. 의사 출신 작가라서 그런지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세심하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오마주랄까 그런 면도 많이 보인다. 직접 책제목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지만, 등장인물에 별명을 붙이는 것이나 문체등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달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뭉클한 적은 있었어도 으흐흑,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울었던 책은 거의 없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의 사연이 등장함에도 신파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또한 나름대로 고충을 앉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같은 느낌도 좋았다.

의술은 단순한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인술이라 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구리하라의 장점이자 환자들이 구리하라를 신뢰하는 점이다. 물론 구리하라는 실력도 좋은 편이라는 건 따로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지. 구리하라같은 의사들이 좀더 늘어난다면, 환자를 단순히 케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봐주고 그들의 속내도 들여다 봐주는 의사가 있다면 환자들은 덜 고독해질지도 모르겠다. 아즈미씨의 말처럼 아프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내가 얼마만큼 아픈지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세상이 덜 원망스럽지 않을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는 소설의 맛을 더하고, 유머러스함과 눈물콧물 쏙 빼게 만드는 사람들의 사연은 감동을 더한다. 2010년에『신의 카르테』2권도 발간되었다고 하는데, 2권도 얼른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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