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이야기는 아무런 설명없이 시작해서 뚝, 하고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디찬 바람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온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닿지 못했다. 도대체 왜?

바르트와 베니는 서로가 한 켤레의 신발이라 부를만큼 단짝인 친구다.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꼭 두 짝이 있어야만 하는 한 켤레의 신발. 그런 두 친구가 누군가를 피해 도망을 간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묵직한 발걸음을 힘겹게 뗀다. 바르트는 옷 속에 품고 있는 죽음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만 하다.

한해의 마지막 날,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집에서 오리를 죽이고 말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베트예만은 우리 엄마가 자기 것이라고 여겼지만 엄마는 우리 것이었다. (53p)

바르트는 베트예만과 가까이 지내는 엄마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혹시 새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로 상스럽고 욕을 잘하며 폭력적이다. 그런 베트예만을 바르트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초대받은 베트예만 앞에서 식탁을 엎어버렸다. 소년 바르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부의 몸짓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돌아온 것은 베트예만의 폭력이었다.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바르트는 베트예만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집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본다.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일에 대한 분노와 베트예만에 대한 미움은 당사자가 아닌 오리에게로 돌아갔다. 오랜 기간 우리에 갇혀 있던 늙고 힘없는 오리. 바르트는 베트예만 대신 오리를 괴롭히고 결국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르트의 개, 엘머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었다. 아니면 우리가 좀 더 나이가 들어버려서 예전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돌이키고 있는 것이었으면 싶었다. (50p)

바르트는 오늘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베니의 집으로 몸을 피하지만 그곳으로 베트예만이 찾아온다. 그 상황에 바르트는 공포를 느낀다.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직접 맞부딪혀야 하나. 바르트의 머리속은 고민으로 꽉 차있다.

하지만 바르트는 결국 베트예만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다시 그 상황에서 도망을 치고 만다. 그런 바르트를 쫓아온 것은 베니의 엄마였다. 베니의 엄마의 따스함에 바르트는 안도한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베니의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베니의 엄마는 바르트에게 베트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아주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바르트의 입장에선 그 말이 이해될 듯 말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를 이해하기엔 그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점을 잘 생각해 봤다. 나 자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었다. 베니랑 베니 엄마가 곁에 있는데도, 늘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있는 마을 저 길 너머에 엄마랑 로나가 있는데도 말이다. 베트예만이 왜 손톱을 물어 뜯으며 창밖을 내다봤는지 이해가 갔다. 외로운 건 끔찍하니까. (56p)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베트예만에 대한 거부와 배척,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베트예만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바르트를 궁지로 몰고 간다. 게다가 베니는 그런 바르트의 공포와 절망을 부추긴다. 베니는 오리 사건을 일으키게 한 발단을 제공했고, 바르트가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겼으며, 엘머에 대한 복수를 하도록 부추긴다. 친구라면 말려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베니는 그럴수록 바르트를 죄어오기만 한다. 칼과 맨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베니를 보면서, 자신의 일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닌데도 바르트를 자극하는 베니를 보면서, 도대체 이 소년은 어디까지 비뚤어져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베니가 돌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르트의 엄마와 동생이 베트예만의 집으로 왔을 때 거짓으로 상황을 꾸며낸다. 그리고는 바르트를 남겨두고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바르트는 자신의 엄마와 동생, 베니가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절망과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정말 혼자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더 꼭, 더 다정하게 안아줄 두 팔이 필요했다. (76p)

나를 위로해줄 엄마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지하실과 헛간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104p)

바르트는 베니의 행동으로 더욱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도 동생도 베트예만과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혼자라고 느꼈을 터인데 말이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아니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한 켤레 신발같았던 베니 역시 자신을 배신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엘머는 죽어 버렸다.

아이들은 어른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때 대부분은 무시하거나 거부의 몸짓을 보인다. 어른은 아이들이 상대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예만처럼 폭력적인 사람에게는 거부나 무시의 의사에 대한 반응이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크리스마스때의 일이 그랬던 것처럼. 만약 그때 베트예만이 조금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 둘의 상황은 좀더 달라질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베트예만이 참을성있게 굴었더라면, 바르트의 걱정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먼저 헤야려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르트 역시 베트예만이 가족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아 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베트예만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베트예만과 그에게서 철저히 등을 돌리고 있는 바르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둘의 골은 너무나도 깊어졌고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해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는 아주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베트예만의 속마음이 어떤지, 바르트의 엄마가 가진 생각이 어떤 것인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베트예만의 경우 바르트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손을 내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한 소년의 굴절된 시각에서 그려지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적합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거부와 배척,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폭력의 악순환, 그리고 그 폭력을 부추기는 이. 바르트가 베니를 보면서 베트예만의 모습을 떠올린 것처럼 난 바르트의 얼굴을 상상하며 베트예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바르트가 선택한 맨손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차갑고 감정없는 베트예만의 플라스틱 손이 되어버릴 것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제발, 더 늦기 전에 그 완고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를.
뒤로 돌아서서 어긋남의 근원으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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