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2 러브크래프트 전집 2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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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2권의 부제는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이다. 우주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우주선이 등장하거나 다른 은하계 혹은 다른 행성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배경은 전부 지구이며, 외계인의 직접적인 등장도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다른 유명 SF 작품처럼 화려한 맛은 없다. 하지만 읽다 보면 등줄기가 써늘해지는 느낌이 든다. 현실성이 강하달까. 이런 것이 다른 SF작품과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SF 작품만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2권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첫번째 작품인 <저 너머에서>는 익숙한 공간이 극한의 공포를 주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 실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무런 사물이 없는 공간은 그냥 빈 공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이 빈공간이 아니라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바글바글대는 공간이었다면? 차라리 유령이나 귀신이 보이는 것이 고마워질지도 모른다.

<금단의 저택>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러브크래프트의 뱀파이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연기같은 모습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다른 뱀파이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러브크래프트의 뱀파이어는 균류로 덮여있다. 이런 균류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괴물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인데, 매끈한 피부보다는 균류로 덮여 있는 뱀파이어는 더욱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냉기>는 1권에 나온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훨씬 더 진보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 작품이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보다 뒤에 씌어진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앞선 작품에서 되살아난 존재는 식욕이란 본능을 가진 좀비에 가깝지만, 이 작품에서 되살아난 존재는 지능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겉보기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좀비는 겉으로 보기에 구별이나 되지, 이런 존재가 내 곁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를 생각하면 오히려 좀비보다 더 오싹하지 않을까. 

<우주에서 온 색채>는 한 농장 인근에 운석이 떨어진 이후 변해가는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서히 자신의 주변을 침식해가는 어떤 존재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결국 모두를 파멸시킨 색으로만 이루어진 존재. 거대한 우주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우주는 인간에게 어떤 동정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는 외계인들이 인간사이에 숨어 살고 있다는 설정을 가진다. 영화 <맨 인 블랙>의 경우 그 존재들이 인간과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외계인들은 깊은 산 속에서 숨어서 지낸다. 그들은 흔적을 남기긴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알아봐 주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그들에 대해 궁금하면 일종의 응징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과 지구를 관찰하는 것이지 인간과 어울리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광기의 산맥>은 여기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남극에서 발견된 고대의 외계 종족과 그들이 만든 건축물을 탐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야기의 반복이 심해 좀 장황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장치는 "당신들은 절대 내 말을 못믿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화자의 심정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인류가 나타나기전 지구를 지배하던 존재들인 올드원과 그들이 창조했지만 그들을 파멸로 몰고간 쇼고스의 역사는 인간이 절대로 들여다보지 말아야 할 어둠이 아니었을까.

<시간의 그림자>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외계 종족이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그들의 존재가 직접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의 꿈과 유적을 통해 드러난다. 외계종족인 그레이트 종족은 러브크래프트의 다른 작품에 나오는 미지의 존재나 외계 종족과는 달리 인간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그들은 특정 인간들의 몸을 빌려 인간 세상을 관찰하며 살아온 존재이다. 주인공 남자가 바로 그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개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소멸하지만 이 남자만큼은 꿈을 통해 그 시간을 기억해낸다.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 그들의 남긴 유적으로 향한 이 남자는 그곳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SF 장르답게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과학자같은 학자들이 화자가 되거나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많다. 또한 1권에서 자주 나오는 미지의 존재나 수수께끼의 혈통보다는 고대에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던 고대 외계 종족이 등장하거나 운석같은 것을 통해 지구에 도착한 외계의 존재와 오래전부터 인간의 주변에 살고 있는 외계의 존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과학적인 서술이 많다는 것도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SF적인 느낌만을 주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적인 공포와 결합된 SF라고 할까. 게다가 그들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지구에 왔고 높은 문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시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들이 더욱 현실성있고, 더욱 오싹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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