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술맛은 안녕하세요? 1 - 막걸리 이야기
박기홍 지음, 최미르 그림, 박록담 감수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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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막걸리를 처음 마셔본 것은... 고교 2학년때였던가? 그냥 호기심에 누가 주는 걸 마셔본 기억이 있다. 그때 마신 막걸리는 일명 막사(막걸리 + 사이다를 혼합한 것)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참으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에 막걸리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입학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서 4년동안 주야장천 마셨다고 해야하나. 물론 맥주나 소주를 먹기도 했지만 가난한 학생 신분에 막걸리만큼 싼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공연이나 체육대회, 축제 때는 막걸리를 박스로 쌓아놓고 마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대구에 있던 학교라 팔공산 불* 막걸리가 주종목이었달까. 거기에 고갈비(고등어에 양념을 해서 구운 것)만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었더랬다. 물론 많이 마신 다음날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지만 말이다.  

막걸리를 제대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입학때부터였지만 막걸리와 처음 만나본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드셨는데 그 술은 젯상에도 오르고, 할아버지의 반주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손주들 간식용으로 만드시는 찐빵을 발효시키는 역할도 했지. 그때의 기억이 확실하게 나는 건 아니지만 누룩을 보면서 딱딱하게 굳은 빵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기포가 뽀글뽀글 생기는 독안을 들여다 보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할머니가 만드신 막걸리를 먹어 본 기억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술을 공식적(?)으로 마실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할머니께선 막걸리를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막걸리란 술은 집집마다 만들어 먹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술이었다. 특히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새참으로 막걸리 한사발씩을 드시면서 일을 했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막걸리는 싸구려 술, 돈 없는 사람이나 먹는 술 등으로 전락하기 시작해 한때는 막걸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술도가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유명한 술도가나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봤던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것들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막걸리를 대량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서 소량 주문이라도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배달한다는 주인장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왔다.

우리와 친근한 술, 집집마다 만들어 먹던 술이 왜 지금은 이렇게 천대를 받는 것일까. 막걸리 맛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약간의 단맛, 알싸한 맛, 쏘는 맛, 텁텁한 맛 등 내가 기억하는 막걸리 맛만 해도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막걸리는 뒤끝이 안좋다는 것. 즉 숙취가 심한 술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막걸리는 좋은 소주처럼 뒤끝이 없다. 안동 소주 45도짜리를 마셔본 사람은 안다. 마실 때는 목이 타는듯 뜨겁지만 의외로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떡이 되도록 마시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오늘 술맛은 안녕하세요?』는 서른 살의 공무원 공희주를 중심으로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머니가 만들던 막걸리, 할머니가 만든 막걸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우리 할머니가 만드신 막걸리는 유명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맛은 아니었을지라도 우리 집안의 조상님들을 위해 바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공희주는 할머니의 막걸리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 부산으로 떠난다. 부산에 있는 산성도가에서 듣게 되는 할머니 이야기. 어쩌면 공희주의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할머니 모습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있어 막걸리는 추억이 담긴 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추억은 지나간 일에 대한 그리움, 지금은 우리 곁에 있지 않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란 의미다. 우리에게 잊혀진 것을 되새기게 해주는 그런 것이란 의미다.

공희주가 할머니의 자취를 더듬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막걸리가 어떤 술인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희주의 친구가 차린 와인바와 막걸리 도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 우리 전통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와인은 종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와인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비싼 와인이나 희귀한 와인이 많다. 하지만 막걸리는 서민의 술, 마시면 뒤끝이 좋지 않은 술로 낙인 찍혀 쓸쓸히 사양길을 걸어 왔다. 이 책은 그런 막걸리의 전통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전통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전통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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