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35년만에 도미니카를 찾아온 우라니아. 그녀는 14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껏 자신의 삶을 일구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의 편지에도 절대 응하지 않았던 그녀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자신의 조국을 찾아온 이유, 그녀가 고국인 도미니카로부터 등을 돌렸던 이유는 무엇이고 자신의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던 이유, 그리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2권에서 밝혀진다.

2권의 구성은 초반부는 1권과 비슷하다. 우라니아, 트루히요, 그리고 암살자들의 시점에서 돌아가면서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도미니카에 몰아닥친 정치 사회적 혼란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도미니카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암살에 가담한 대통령과 로만 장군의 상반되는 대처능력이다. 허수아비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염소의 사망 이후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도미니카 공화국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싹을 틔워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발라게르의 활약은 자못 흥미롭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은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달까. 

발라게르와 달리 로만은 염소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지배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비록 총통이 몸은 죽었을지라도 그의 영혼이나 정신 같은 것이 계속해서 그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꼈다. (226p) 그는 생전의 염소가 걸어 놓은 최면상태이자 마취상태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로만 장군은 이성을 잃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파멸을 맞는다. 로만 장군을 비롯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은 트루히요의 죽음으로 광기에 물든 아들 람피스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숨을 거둔다.  트루히요의 유족들은 그들이 도미니카에서 떠나는 날까지 그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그 고문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 소름이 끼친다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트루히요의 집권 31년동안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을 것이지만 집권을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뿐이라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물론 역사에서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만약 로만이 이성적으로 대처했더라면, 람피스가 돌아오기 전 군대를 장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랬더라면 람피스와 트루히요의 형제들의 광기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미국의 개입 요소가 더 적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미 역사는 그렇게 씌어져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우라니아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우라니아는 도미니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을 추궁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답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우라니아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생긴 골을 메꾸지 못할 것이다. 대신 우라니아는 고모와 사촌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서 희생한 게 아니에요, 고모. 날 사려고 했던 거예요. 자기의 죄의식을 씻어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게 하등의 쓸모도 없으며,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라고 느끼면서 평생을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44p)

나는 아빠가 살아 있지만 죽은 몸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살길 원해요. (138p)

위 두 문장은 우라니아가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1권의 내용으로 볼 때 우라니아를 미국으로 피신시킨 것은 우라니아의 아버지 카브랄로 보여졌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발라게르와 총통 트루히요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진실은 달랐다. 카브랄은 자신에 대한 총애를 거둔 트루히요의 생각을 두려워 했고, 결국 자신의 딸을 트루히요에게 제물로 선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입지를 되찾기 위해 딸을 희생한 아버지를 우리니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트라우마는 남자에 대한 불신, 어른에 대한 불신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우라니아는 어떤 남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어쩌면 우라니아는 자신을 강간한 트루히요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악마앞에 선뜻 내놓다니. 우라니아가 겪은 고통, 상처, 절망, 분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잔인하고 참혹한 말을 들려주는 건 바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예요. 이제 이 이야기는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이미 끝난 일이니까요. 이미 지난 일이고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아마도 다른 여자였다면 그런 충격을 극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어요. (364p)

그녀는 미국에서 엘리트층에 속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녀의 일부분은 열네살의 소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오랜 기간동안 그녀를 잠식했던 비밀. 그녀는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써 자신이 그 일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볼 때 우라니아가 그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국과의 인연을 아예 끊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을 통해 그녀는 치유의 길을 향해 한 발을 내딛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남성중심의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고통받아 온 여성, 공포정치로 31년동안 장기 집권을 한 총통, 그리고 그를 죽이고 도미니카에 자유를 가져오려 했던 암살자들의 이야기로 대변되는 도미니카의 잔혹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도미니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오랜 기간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다 독립했지만 잇다른 독재정권의 집권으로 몸살을 앓아온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빼앗긴 채 공포에 마비되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포는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트루히요같은 독재자가 오랜 기간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마비 효과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마비상태로 남아있는 것도, 영원히 한자리에 머무르는 것도 없다. 다른 누구보다 앞서 그 감각에서 해방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희생으로 또다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환희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트루히요 신봉자들이었던 이들에게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달라진 정치 사회적 상황은 그들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만을 자극할 뿐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박통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이런 부류일 것이라 생각한다. 트루히요 신봉자들이 공포정치는 잊었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통의 유신체제를 잊고 경제발전 같은 신화에만 집중하듯 말이다. 또한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우라니아같은 사람도 있다. 앞으로는 부디 우라니아가 여전히 자신을 좀먹고 있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염소의 시대에서 벗어나 밝은 빛속으로 걸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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