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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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이란 이름은 초등학교 시절 잡지의 인터뷰에서 처음 접했었었다. 인터뷰이가 누군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말했는데, 그 당시로 내 생각으로는 인터뷰이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라고 손꼽을 정도라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난 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염소의 축제』를 읽으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실 라틴 아메리카는 내 관심밖에 존재하던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작디 작은 섬나라인 도미니카 공화국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억할 만한 꺼리가 내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체 게바라 평전 등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전부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반면 문명화정도가 낮아 오랜 시간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다. 도미니카 역시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었고, 그래서 공용어는 영어, 종교는 가톨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염소의 축제』는 1930년 정권을 잡은 트루히요가 공포 독재정치를 펼친 31년간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상황과 독재자의 마지막  날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세가지 시점으로 서술된다. 첫번째는 트루히요 정권하에서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던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두번째는 트루히요, 세번째는 트루히요를 노리는 암살자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트루히요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입장과 각각의 사람들의 처한 입장에서 서술되는 주관적 입장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일단 우라니아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우라니아는 14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35년간 도미니카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친척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살던 우라니아가 35년만에 도미니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난 것은 왜일까.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였는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되어 버렸기에 용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의외로 우라니아는 아버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 당시 도미니카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진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긴 일을 추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우라니아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물어진 입은 열릴줄을 몰랐다. 우라니아는 왜 14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보내진 것일까. 아마도 우라니아가 게속 이곳에 머무른다면 위험스런 상황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라니아 역시 아직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마음 속에 꽁꽁 봉인해 둔 것, 그 끔찍한 일은 무엇일까. 그 일을 잊기 위해 우라니아는 공부에 몰두했고 지금은 세계은행에 근무하는 엘리트가 되었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 남용과 살인, 부패와 비밀 염탐, 격리와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공포는 이미 신화가 되어 버렸다. (168~169p)

그녀가 도미니카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곳에 와서 정리해야만 할 일. 그것은 아버지와 만나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정권과 도미니카의 역사에 대해 계속 조사해왔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전에 난 상처에 대한 치유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터뜨려야만 할. 그것을 해결해야만 우라니아는 또다른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겠지. 

트루히요 편의 이야기와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트루히요 정권의 권력구조와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트루히요 편의 경우 트루히요의 개인적 문제에 대한 부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암살자들의 경우 트루히요 추종자에서 암살자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70대가 된 트루히요는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요실금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인물이 말년에 들어서는 요실금으로 고생한다니. 인생의 아이러니가 이런 것일까. 또한 그의 자식들 중에 제대로 된 인물이 하나도 없다. 정권을 물려주고 싶어도 물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물쓰듯 쓰는 돈, 여자와의 스캔들 등 아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자식들 뿐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협조적이었던 미국도 트루히요 정권에 등을 돌리고 경제봉쇄등으로 압력을 가한다. 왕좌에서 군림해온 왕이 이젠 안팎으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인 물을 썩게 마련이고, 어제의 우방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된 것이니...

암살자들은 트루히요 추종자들이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지배력, 공포가 주는 것은 일종의 마취제이자 환상이었다. 하지만 마취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효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깨기 마련이고, 환상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옅어져 결국 없어지고 만다. 그러하기에 트루히요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암살을 꾀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트루히요가 살아있는 한 자기를 비롯한 수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불쾌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며,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한 사람이면서도 두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형벌 속에 살아가야 한다고, 즉 공적인 장소에서는 진실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247p)

그는 야수를 죽일 것이고, 하느님과 교회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 그는 자기 손을 피로 더럽히면서, 조국을 피흘리게 했던 야수의 피를 씻어버릴 작정이었다. (322p)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트루히요의 차자 지나가길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을 둘러싼 내외적 상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염소의 축제』1권은 카브랄을 통해 권력의 중심에 있다 몰락한 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카브랄과 우라니아의 뒤틀린 부녀관계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또한 권력의 중심이자 공포의 중심이 된 트루히요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했으며. 어떤 몰락의 과정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암살자들을 통해 트루히요 추종자들이 어떻게 그에게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라니아의 아버지는 우라니아에게 어떤 대답도 주지 않았고, 암살자들이 트루히요를 죽인 뒤 도미니카 정부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도 피상적으로 밖에 묘사되지 않았다. 독재자가 죽는다고 바로 질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의 죽음 뒤에는 커다란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혼란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트루히요의 사후 도미니카의 변화, 그리고 우라니아와 아버지의 대화는 향후 어떤 식으로 펼쳐지게 될까. 우라니아는 과거의 망령을 떨쳐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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