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테크 바벨의 도서관 10
윌리엄 벡퍼드 지음, 문은실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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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열번째 책은 윌리엄 벡퍼드의 작품이다. 영국작가이지만 아라비아의 종교와 문화를 모티브로 쓴『바테크』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유일한 장편이다. 다른 작품집의 경우 각 작가의 작품중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왜 이 책만 장편 소설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윌리엄 백퍼드란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중에는 여행기 두 편과 일기와 전기 등이 있지만 소설같은 문학 작품은 없다. 이 작품은 원래 1782년에 프랑스어로 씌어졌지만, 1786년 S.헨리가 영역본으로 나온 것을 벡퍼드가 개정한 것이다.

고딕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아라비아의 아바시데스 족의 아홉 번째 칼리프인 바테크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모험에 나서게 되는 환상적인 모험소설이다. 칼리프는 거대한 부와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군림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바벨의 탑을 쌓아올리기도 하고 세상의 보물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어느날 그는 언월도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그곳에 적혀 있는 글귀는 칼리프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상인의 모습을 하고 왔던 악마는 칼리프에게 이슬람 신앙을 버리고 어둠을 숭배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칼리프는 지하에 있는 불의 궁전의 문을 열 자격을 얻고 세상의 모든 보물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부적, 그리고 아담 이전의 술탄의 왕관을 얻게 될 것이라 한다. 탐욕스러운 칼리프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불의 궁전에 다다르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백성들을 짓밟고 육욕에 지배당하는 칼리프는 이미 자신의 백성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두려움과 절망이 넘쳐난다. 신앙을 버리고 백성을 저버린 칼리프는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지니가 보여준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저버리고 불의 궁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인 것이다.

그것은 고삐 풀린 정열과 악독한 행위에 대한 징벌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징벌이었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의 지식에 쳐놓은 울타리를 넘는 눈 먼 야망에 대한 응징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응징이었다. 순수한 지성에게만 제한된 발견을 노리는 것으로 오만에 도취되어, 인간이란 무지하고 비천하게 생겨먹은 존재임을 알지 못해 스스로 불러들인 응징이었다. (190p)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주인공인 칼리프 뿐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 카라티스는 칼리프보다 더욱 잔혹한 인물이며 칼리프가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어둠을 숭배하고 있던 인물로 나온다.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란 존재이다 보니 칼리프 역시 악마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버린 것이 아닐까.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을 알려고 하고, 제 힘을 넘어서는 것을 짊어지려 애쓰는 경솔한 인간들, 필멸의 자들에게 비탄을 내려라' 라고 씌어진 언월도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었다면 칼리프가 지옥에 떨어질 일은 없었으리라.

사실 칼리프가 떨어진 지옥의 모습은 그다지 끔찍하지 않았다. 물론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배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형벌은 끔찍함 그 자체이지만. 오히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칼리프가 저지른 악행이 지옥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라티스가 저지른 짓도 지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와 사회의 규범이 있다. 아무리 왕일지라도 만능은 아니며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어둠을 숭상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말로에는 구원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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