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노예들 바벨의 도서관 9
잭 런던 지음, 김훈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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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아홉번째 책은 잭 런던의 단편소설집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소개된 작가들 중 내가 가장 많은 작품을 접했던 작가가 바로 잭 런던이다. 꿈이란 것을 통해 선사시대 이전의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비포 아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야성이 부르는 소리』, 그리고 미래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독재우익에 맞서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강철 군화』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였지만,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채 미국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잭 런던. 그의 소설에는 그의 삶이,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황금을 좇아 알래스카로 건너갔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은 모험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혹독한 기후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읽은『미다스의 노예들』은 잭 런던이 써낸 다양한 문학적 성향을 두루 훑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진주잡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마푸히의 집>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재력과 힘으로 원주민들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무엇이 승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연의 힘앞에는 권력도 재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직 살아 남겠다는 의지, 그리고 작은 집이나마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이 자연의 힘도 물리칠 수 있었다. 백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커다란 진주에 불과했지만 마푸히의 가족에 있어서는 희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삶의 법칙>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나이가 너무 많아 더이상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짐이 되어 버려지게 된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처음에는 안간힘을 써서 버티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고려장 풍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일본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에서 산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혹독한 기후앞에서는 부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누군가는 부족 전체를 위협하는 인물이 된다. 만약 인정에 이끌려 가족들이 노인을 이끌고 함께 길을 떠났다면 가족은 혹독한 추위에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운명, 하지만 그것을 결국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가 않는다.  

<잃어버린 체면>은 잔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의외로 결말이 유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들이 핍박하고 괴롭혔던 원주민들에게 역으로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게될 운명에 처한 한 백인이 기지를 발휘해 잔혹한 고문만큼은 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편안하게 죽고 싶다, 라는 건 그곳에 있던 누구라도 바라던 일이 아니었을까. 사기를 치려면 당당하고 담담하게. 남자가 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미다스의 노예들>은 제목만을 봤을 때는 배금주의로 똘똘 뭉친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 미다스의 노예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이 비밀집단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부유한 자들을 압박해가는 방식은 냉혹하며 철저하다. 부유한 자들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돈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부자들만의 자존심일까. 무고한 사람들이 죽든, 자신이 결국 자살을 택하든 결코 그들과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머릿속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어쨌거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든지 간에 지금도 이 투쟁은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달라짐으로써 겉모습만 변했을 뿐. 

<그림자와 섬광>은 평생을 라이벌 관계로 살아온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서로를 적대시하고 라이벌 관계로 여기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었다면 이들의 운명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  

타히티나 알래스카에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과 서로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인물(혹은 계급과 계급)을 다룬 소설은 잭 런던이 추구했던 문학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마푸히의 집>과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삶의 법칙>은 잔혹한 자연앞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작품은 대항, 한 작품은 순응이라는 대조점을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미국 현대문학의 이방인이자 방랑자로 살았던 잭 런던의 작품은 풍부한 자전적 경험과 생존 당시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때로는 에둘러 표현하고 때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잭 런던의 소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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