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의 눈 바벨의 도서관 8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최재경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여덟번째 책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작품집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라는 풀네임을 읽으며 내가 아는 작가던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작가 소개  부분을 읽으면서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 체스터턴은 사제이자 탐정으로 유명한 브라운 신부를 창조해낸 작가이다. 나도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소설은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게 전부지만 - 그러고 보면 독서량이 참 빈약하다, 나도 - 매우 인상적인 탐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읽었던 브라운 신부 등장 작품은 <푸른 십자가>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집 역시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단편이 네편이나 되지만 다행히 내가 읽어본 작품은 하나도 없다. (이걸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첫번째 작품인 <계시록의 세 기병>은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 칭하고 싶다. 실제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반전은 기가 막혔달까. 만약 책이 아닌 공연이었다면 기립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군인들의 충성심, 그리고 미묘하게 틀어지는 상황. 군인은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그러하기에 이런 틈이 생겼고, 그것이 변수가 되어 결과를 비틀어 놓았다.

이 작품에 관한 보르헤스의 해설 중에 백색의 기다란 길, 흰색 군복의 기병과 백마, 체스 게임등으로 멋지게 장식한 작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두운 밤길, 백마를 타고 흰색 군복을 입고 달려가는 병사를 체스 판에 비유한 것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체스 게임을 염두에 두고 보자면 이 기병들은 폰이다. 그리고 시인은 킹이겠지. 하지만 미묘한 어긋남이 체크메이트를 외치지 못하게 한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작품인가. 

나머지 네편은 브라운 신부의 추리 수첩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모두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각 작품의 느낌은 조금씩 다르다. <이상한 발소리>는 문밖으로 들리는 발소리로 추측하는 사건의 진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솔직히 브라운 신부의 능력에 대해 놀랐달까. 무슨 소머즈 귀도 아니고 각기 다른 발소리가 나는데도 그것이 한 사람의 발소리였으며, 또한 그 발소리가 달라지는 것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다니. 하지만 더 흥미로웠던 것은 범인이 그런 발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범인의 기지가 한 몫한 작품이랄까. 또한 스스로를 특별취급하는 부자들에 대한 비판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스라엘 가우의 명예>는 스코틀랜드의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고성은 고딕 미스터리의 장치를 소화하기에 훌륭한 장소이다. 그곳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건의 진실은 한 귀족 가문의 가치관을 담고 있었다. <아폴로의 눈>은 고대 신앙과 결부된 미스터리이다. 요즘 추리 소설의 경향으로 보자면 알리바이 트릭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적인 범인 두 명. 그들의 두뇌 싸움도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 작품인 <이르슈 박사의 결투>는 서로를 부인하는 존재, 서로를 상쇄하는 존재에 관한 미스터리이다. 왜 그들은 절대 만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알고 읽으면 별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지 몰라도 그 구성이 매우 치밀한 것에 감탄을 느낄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미스터리와 신비주의가 결합된 사건의 진실, 사제이자 탐정인 브라운 신부의 추리 능력은 요즘 이 책을 읽어도 오래된 작품을 읽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구성이 촘촘하다. 특히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브라운 신부의 말투는 사람 애간장을 타게 하는 면도 있지만, 그게 브라운 신부의 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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