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일까,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운명의 상대고 나발이고가 어디 있어? 그냥 적절한 상대와 만나는 것이지,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명의 상대? 꿈 같은 이야기야. 아이처럼 아직도 그런 걸 믿어?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사랑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거나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는 하긴 하는데 있는 족족 다 깨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어떨까. 이제껏 남들만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던 나지만, 여전히 운명의 상대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직 못만난 것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번의 연애에서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혼자인 걸 봐서는 못만났다고 하는 게 옳다. 난 전생도 믿고 내세도 믿는 사람인지라 지금이 아니면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서른도 훨씬 넘은 나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이 20대였다면 운명의 짝을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저주라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은 착한 맘씨로 공덕을 쌓아야..(쿨럭) 나도 내 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빈곤한 생각에 쩔어..(음) 하여간 그렇다.

이십대에는 제짝을 만나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상대와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적잖이 실망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연애를 잘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여전히 난 그 해답을 모른다.

내 친구들 중에는 벌써 오래전에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나처럼 혼자 사는 친구들도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십년을 연애하면서 수십번도 더 헤어진다고 하던 친구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찌나 잘 사는지. 또한 정말 이 부부는 서로의 운명의 짝인게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친구 커플도 있다. 그들의 외모는 무척 비슷하다. 사랑하면 닮는다지만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두 사람은 턱이 약간 튀어나온 일명 주걱턱인데, 내친구도 내친구의 남편도 턱이 똑닮았다. 이런 걸 보면 정말 두 사람은 운명의 상대가 맞긴 맞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저 턱이 증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달까. 

하지만 첫눈에 딱 보고 그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고 눈치챌 수 있을까. 물론 첫눈에 반했다라는 이야기를 자랑거리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에 끌린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이상적인 타입이랄까. 겉모습에 반하고, 만나면서 속마음에 반한다면 더욱 이상적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상적인 만남은 많지 않다. 오히려 만나다 보니 좋아졌다, 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의 주인공 아키오는 재벌집의 후계자로 훌륭한 부모님과 훌륭한 형을 두고 있지만, 스스로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이 늘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그가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나즈사라는 평범한 여성이다. 아키오는 나즈사와 결혼하면 늘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2년만에 깨지고 만다. 나즈사가 예전에 사귀던 신이치란 남자가 이혼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크게 흔들려 버리게 된 것이다. 아키오는 나즈사의 마음이 일시적으로 흔들린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즈사의 마음은 이미 신이치에게로 기울어져버렸다.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것이 있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도 쉽게 깨져버리고 만다. 아키오는 나즈사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려 하지만 이미 둘 사이는 너무나도 많이 벌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나즈사의 일로 개인적 상담을 하던 미치코와 가까워진 아키오는 직장 선배로서 의지했던 그녀가 새삼스럽게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에게서만 나는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향기. 그것은 아키오가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미치코는 향수는 일체 쓰지 않았다고 하니까. 하지만 아키오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잠시동안이지만 행복했던 미치코와의 결혼 생활이 그를 위로해줄테지만, 이제 더이상 자신의 운명의 상대가 자신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슬퍼할 것이다. 왜 우리들은 항상 너무 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아키오 - 미치코, 나즈사 - 신이치 뿐만이 아니다. 제일 안타까운 건 역시 나기사이다. 아키오의 정혼상대로 정해졌지만 아키오의 형 야스오를 좋아하는 나기사. 하지만 야스오는 형수 마리를 좋아한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을 늘 바라보던 나기사의 운명은 갑작스런 사고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서로 마주 봐야 할 두 사람이 제대로 마주 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 세상에는 흔하지 않다. (151p)

이 세상 사람들 각각에게 단 한명의 운명의 상대만 존재한다면, 그 사람만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다면 세상에 슬픈 사랑이란 없을텐데. 하지만 그런 행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다. 이들 역시 그랬다. 그리고 현실의 우리도 그렇다. 어쩌면 그런 슬픔들이 있기에 운명적인 사랑이 운명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지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엘리트 약혼자를 둔 미하루가 결혼을 앞두고 옛날 애인과 다시 만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결혼 상대자를 두고 누군가를 - 그것도 옛 연인- 을 만난다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하루와 약혼자 세이지의 사이는 조건에 맞추어 결정된 사이라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미하루의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은 옛 연인 구사키일지도 모른다. 결혼이란 것에 대해 비관적 입장을 가진 미하루, 그리고 그녀에게 얼핏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만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구사키. 미하루는 결혼식 전날 마지막 운을 걸고 한가지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 

이 세상엔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정의, 다른 하나는 바로 드라마이다. (224p)

결말부를 보면서 새삼 이 문장이 떠올랐다. 현실에 드라마는 없다. 드라마처럼 보여도 드라마는 아니다. 이 책 역시 가상의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드라마틱한 연출은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 운명적인 사랑의 드라마틱함을 생각했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결말이라 생각한다. 사랑에는 때가 있다. 미하루는 그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미하루는 그 사랑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스스로 외면해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공허함 뿐일 것이다. 미하루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의 상대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눈앞에서 놓쳐버렸으니까.

운명의 상대에 대한 이야기인데 두 편 모두 새드엔딩이다. 아키오는 미치코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였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고, 미하루는 운명의 상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냥 보내버렸으니까.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너무 늦게 깨닫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거나. 그래서 더욱 공감가는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사랑은 디테일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사랑은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부화된다. 나같은 경우 이 말에 공감을 하는 이유가 나도 디테일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조개가 있는 남자면 좋겠다, 손가락이 길고 예쁘면 좋겠다, 쌍꺼풀은 진하지 않지만 눈이 좀 큰 편이면 좋겠다 등등. 물론 그외의 조건 - 학력, 집안, 키 - 등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더 많이 신경쓰는 부분은 행동이나 버릇이다. 아무리 좋은 점이 많을지라도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나 버릇을 가진 사람이면 외면하게 된다. 난 묘하게도 사소한 일에 감동받는 일보다는 사소한 일에 실망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행동이나 버릇은 절대 못고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이기에 아흔아홉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단 한가지 단점이 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난 그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래서 사랑을 못하는가. (씁쓸)

어쨌거나 사랑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존재하기에 단 한번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운명이란 것을 깨닫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때로는 그것들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도 있다.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인내심이 많은 것이 아니니까. 운명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늘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사람의 인생은, 죽기 직전 마지막 하루라도 좋으니까, 그런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하면 성공한 거야. 말하고 보니 보물찾기랑 비슷하네. (153p)

앞으로의 인생에서 만날 운명의 상대를 너무 늦게 깨닫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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