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 얼굴 바벨의 도서관 7
너다니엘 호손 지음, 고정아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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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일곱번째 책에는 우리에게『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다섯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난『주홍글씨』를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영화를 본 기억은 나는데. 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 <세 언덕 사이의 분지>란 작품과 교과서에 수록된 <큰바위 얼굴>을 읽은 적이 있다. 그외의 작품은 거의 접해보지 못한 내게 있어 이 단편집은 너무나도 근사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첫 작품인 <대지의 번제>는 인간들이 이제껏 쌓아온 문명에 관한 것을 모두 불태우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은 인간을 구속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혁명을 꾀했다. 그것은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화염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없앤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순간, 인간들은 이제껏 자신들이 쌓아왔던 것을 다시 기억하고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바로 '인간의 심장'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저들이 그 음험한 동굴을 정화할 방법을 못 찾는다면, 이렇게 엄청난 수고를 다해 태운 모든 잘못과 불행이 그 동굴에서 다시 나올 거야. 예전과 똑같거나 더 나쁜 형태로. (46p)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자체가, 인간의 정신자체가 말살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이다. 인간의 역사는 겉으로 보기엔 시대에 따라 달라진 양상을 보이겠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결국 속은 그대로인 것이다.

<히긴보텀 씨의 참사>는 제목과는 달리 꽤 유쾌한 작품이다. 도미니커스 파이크란 젊은 행상이 히긴보텀씨가 살해당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 소문이란 것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리 퍼져있고, 또한 히긴보텀씨는 아직 건재하다는 이야기가 나와 도미니커스가 가져온 이야기를 반박하기를 거듭한다. 도대체 히긴보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미래의 일'이 '과거에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돌고 도는 소문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 때로는 과거가 미래를 앞서 미래의 일을 새롭게 재편할 수도 있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섬뜩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다. 하지만 섬뜩한 것은 겉모습일 뿐. 목사의 검은 베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우리는 흔히 자신만의 마스크를 쓰고 상대를 대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솔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날 갑자기 두겹의 검은 베일을 두르고 나타난 목사의 기행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검은 베일은 그저 검은 베일일 뿐이다. 사람들은 검은 베일이 뜻하는 것을 무심결에 깨달았기에 그것을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렇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우리가 늘 얼굴 위에 쓰고 있는 마스크를 형상화한 것이다. 난 절대 마스크같은 것은 쓰고 있지 않아,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마스크가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웨이크필드>는 한순간의 객기로 일으킨 장난으로 인해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아주 멀게 만든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일주일을 생각했지만, 그것이 이십년이란 세월이 되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런 순간 순식간에 우리는 미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큰바위 얼굴>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작품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 싶다. 나도 언제, 어느 교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작은 산골마을에 사는 어니스트는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얼굴과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훌륭하게 이끌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어니스트는 매일매일 큰바위 얼굴을 보며 조용한 삶을 살았다. 때때로 큰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부자, 군인, 정치가 등이 차례차례 나타났지만 그들에게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큰바위 얼굴과 같다고 생각해도 어니스트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찾아온 시인은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니스트가 가진 장점들을 꿰뚫어 보게 된다. 시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외친다. 어니스트야 말로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말을 믿지 않고 큰바위 얼굴을 하고 있는 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어니스트가 찾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부자, 군인, 정치가에게서는 무엇인가가 빠져있었다. 원래부터 사람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시인이 어니스트를 보면서 느낀 점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꾸준한 자기 성찰과 부단한 노력, 이런 것이야 말로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주요한 요소일테니까. '이 소박한 사람이 살아있어 세상은 매일 조금씩 좋아졌다'는 본문의 글처럼 말이다.  

다섯편의 이야기는 철학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도 하고, 코믹한 미스터리로 유쾌함을 전해주기도 하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보이는 모습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도 한다. 또한 자신이 파놓은 함정때문에 미아가 되어버리는 사람의 이야기도 꺼내고, 진정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무겁거나 딱딱한 이야기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알레고리를 이용한 작품의 경우 순간적으로는 그의 이야기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의미에 대한 파악이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결말부에 등장하는 명쾌한 결론은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기에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알레고리의 의미를 찾아내는 지적 탐험의 즐거움에 탐닉할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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