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한 조각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8
마리아투 카마라.수전 맥클리랜드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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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차서 말이 안나올 정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인생은, 길지도 않은 인생은 왜 이렇게 말도 안될 정도로 꼬이고 꼬이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한 구석을 맴돌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마리아투가 겪은 한 가지 일만으로도 미쳐버리거나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 절망, 상실감. 마리아투는 이 모든 걸 어떻게 견뎌낸 것일까.

시에라리온.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오랜 기간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후 11년간의 내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기대수명 40세. 평균 수명 80세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살며 현재 서른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나로서는 기대수명 40세란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하달 정도로 국력도 경제력도 갖추지 못한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마리아투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행복했다. 비록 부모님이 아닌 고모의 가족과 함께 살았을지라도, 그 지역의 풍습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기에 마리아투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하지만 열네살이 되던 해 고모부의 친구인 살라우란 남자가 마리아투를 두번째 아내로 맞으려 했고, 그 남자에게 강간당한 후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마리아투의 시련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정부군과 대치하던 반군들이 마리아투가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리아투와 사촌 오빠들은 살아 남았지만 두 손을 잘렸다. 프리타운의 수용소에서 살면서 마리아투는 구걸을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원치 않는 임신, 두 손이 없는 장애. 아이가 태어났지만 마리아투는 아이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고, 결국 아이는 열달만에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마리아투는 자신이 임신한 것도 몰랐다. 또한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자신의 사연을 듣고 살라우가 자신을 임신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손을 자른 반군 소년은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못하도록'이란 이유를 댔지만, 마리아투는 대통령이란 말도 투표란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마리아투에게 있어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투가 그런 시련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가족들이었다. 수용소 사람들 중에는 장애를 입었다고 자신의 가족을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리아투의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 가족의 연대감이 그녀를 지탱시켰다.

그리고 수용소에서의 연극은 마라아투의 울분과 절망감을 표출시키는 역할을 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함으로써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어갔다. 또한 마리아투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준 영국인 데이비드와 캐나다인 빌의 도움으로 마리아투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은 힘들었다. 기후도 맞지 않았고, 의수는 마리아투에게 있어 큰 족쇄였다. 그후 캐나다로 건너가 또다른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마리아투의 생활은 크게 변하게된다. 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키워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군 소년병을 만난 마리아투는 용서와 화해란 것을 배우게 된다.

마리아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낼 결심을 하면서 떠올렸던 생각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시에라리온에서는 늘상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그런 일은 우리같은 사람은 평생 겪지 않을 이야기인데, 그곳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전에 희생되었고 깊은 절망과 상실과 아픔을 겪었는지 그 말 한마디로 보여주는 듯 하다. 하긴 마리아투의 몇 안되는 가족도 그렇게 많이 희생되었으니,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이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힘겨운 일을 보면서 내심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라는 안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아투의 이야기는 그런 것을 넘어선다. 그건 아마도 마리아투가 사는 곳의 풍습이 우리와 달라서, 우리는 내전같은 것은 겪어본 적이 없기에, 내 조국은 사람의 목숨을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쉽게 없앨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리아투가 겪었던 일은 내가 평생을 통해서도 겪을 일이 아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하기에 마리아투의 이야기는 이기적인 안도감 대신 절망의 바닥에서도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인간의 강한 정신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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