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바케 2 - 사모하는 행수님께 샤바케 2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에도의 상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나가사키야의 도련님 이치타로는 삼천살 먹은 요괴의 손자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건강한 날보다 앓아 누워지내는 일이 더 많다. 요괴를 보는 능력은 있지만 특별히 요괴의 손자다운 능력은 없다. 그렇지만 인정많고 머리가 좋은 도련님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이부자리에 누워 해결하는 이부자리 명탐정이다. 물론 직접 조사하는 것은 힘든 일인지라 주위의 요괴들의 도움을 받지만, 그래도 인간들과 다른 감각을 지닌 요괴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을 보면 참 난 인물은 난 인물이다.

부모님이나 요괴들이나 이치타로를 대하는 것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할 정도로 과보호.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한 후계자인데다가 반혼술로 되살린 존재이다 보니 수시로 쓰러져 자리보전하는 이치타로를 과보호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도련님은 비뚤어지지도 않고 바른 생활 청년으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뭐, 따지고 보면 비뚤어질테다! 라고 선언을 해도 주변의 요괴들이 가만히 있을 위인들이 아니기에 그럴 수도 없겠지만.

시리즈 1권인 에도시대 약재상 연속살인 사건은 장편이었다면 2권인 사모하는 행수님께는 단편 연작이다. 총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수수께끼같은 사건 풀이도 있지만 니치키의 옛날 이야기같은 것도 나와 무척 흥미로웠다.

<사모하는 행수님께>란 제목을 보고 난 푸핫하고 웃어버렸다. 물론 여기에서의 행수란 일꾼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내가 사는 곳 - 경상도- 에서는 행수님이란 단어가 형수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형님을 행님이라고 하는 것처럼 형수님을 행수님이라고 발음한다. 난 이상하게 묘한데서 웃음이 터진단 말이지. 어쨌거나 그건 그렇고. 이 단편은 니키치에게 연문을 보낸 한 낭자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도 시대의 건물은 목재로 지어진 것이 많다. 특히 나가야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라 불이 나면 번지기도 쉽고 타기도 쉬웠다. 그래서 샤바케 시리즈에는 특히 화재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화재와 살인사건. 그 사이의 연관성을 푸는 가운데 드러나는 슬픈 사연. 비록 사람을 죽인 이라고 하나 범인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에는 묘하게 납득이 간다.

<에이키치의 과자>는 이치타로의 소꿉친구인 에이키치의 과자를 먹고 죽은 남자의 사건과 관련된 미스터리이다. 에이키치가 만드는 과자는 맛이 없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규베에는 늘 에이키치의 만주를 사던 사람이다. 고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규베에의 사연은 가슴 한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그가 유일한 위안을 얻었던 시간은 과자를 사러 왔을 때 에이키치와 담소를 나누던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던 위인이었지만, 에이키치에겐 좋은 말동무였고, 자신의 과자를 서슴없이 사주던 사람이었기에 에이키치가 보는 규베에의 죽음은 슬플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시대나 지금이나 돈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관련된 부분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달까. 돈은 사람을 풍족하게도 만들지만 고독하게도 만든다. 

<하늘빛 유리>는 통가게인 아즈마야에서 일하던 마츠노스케 - 이치타로의 이복형 - 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즈마야에서 일어나는 괴사건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 정말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보다 더 무서운 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츠노스케의 이야기를 보면 에도 시대가 얼마나 신분구별이 철저한 사회였는지를 잘 알게 된다. 이복형제이지만 한 명은 도련님, 한 명은 고용일꾼 신세.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라 마츠노스케의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좀 불편해진다.

새로 맞춘 이불에서 밤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넉장짜리 이불>. 진심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사는 집이나 만지는 물건에는 많든 적든 간에 인간의 기가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이불집 주인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고용일꾼들. 그들의 눈물과 한숨이 이불을 만드는 방안에 쌓이고 쌓여 그들이 만드는 이불에도 흘러 들어간다, 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이불집 주인의 맘보를 고쳐주는 부분도 유쾌했다.

이 작품집에는 니치키의 이야기가 두 편이 들어가 있는데, <니치키의 연인>이 바로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앞에 나온 <사모하는 행수님께>는 니키치를 짝사랑하는 여인의 연문과 그 여인의 죽음과 관련한 미스터리라면 <니키치의 연인>은 순수한 사랑이야기이다. 천년이 넘도록 한 요괴 여인을 사모하는 니키치의 이야기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그가 죽고 새로 태어나는 몇 백년의 시간을 홀로 기다리는 요괴 여인. 인간들은 고작 백년 남짓 사는 삶에서 수없이 많은 사랑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인간과 요괴의 시간 관념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천년이란 시간은 요괴에게 있어서 아주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니키치의 이야기와 인간을 사랑한 요괴 오요시의 사랑이야기. 아름다우면서도 절절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반전은 오요시의 정체. 

마지막 작품인 <무지개를 보다>는 꿈인듯 현실인듯 환상인듯, 솔직히 헷갈리는 작품.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치타로가 얼마나 요괴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요괴들만의 도련님 길들이기(?)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이나 요괴들의 과보호를 싫어하면서도 그것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깨닫는 도련님. 도련님의 성장은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 듯 하다.

2권『사모하는 행수님께』는 살인 사건과 같은 미스터리와 더불어 요괴들의 사랑 이야기같은 이야기도 실려있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또한 겉모습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 특히 그들이 가진 추악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역시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다른 게 없지 싶어서 말이다.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가 곳곳에서 웃음을 터지게 하는 샤바케 시리즈는 에도 시대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괴와 인간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다른 감각이랄까. 때론 그런 것이 섬뜩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성향 차이이지 근본이 악랄하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악랄해지기 때문에 섬뜩하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랄까. 권수를 더해갈 수록 더욱 흥미를 더해가는 샤바케 시리즈. 3권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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