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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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책은 별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을 더 많이 본 듯 하다. 캐리, 미저리, 그린 마일, 돌로레스 클레이본,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등. 영화를 생각해 봐도 스티븐 킹은 공포 소설만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더 놀랍다. 공포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설마 다른 장르의 작품도 잘 쓰겠어? 라는 편견과 선입관이 와르르 무너진다. 모두 재미있게 혹은 감명깊게 봤던 영화인지라 새삼 이 작가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내가 고른 책은 스켈레톤 크루 (상). 이 작품집 속에는 몇년전 개봉한 영화 미스트의 원작 소설<안개>가 실려있다. 짙은 안개 속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시시각각 그들의 목숨줄을 조여오는 미지의 생명체들. 아무것도 모른체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공포에 대한 반응은 정말로 피부에 직접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런 면도 좋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마음에 든 이유는 결말부에 있었다. 결말이 그렇게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 영화는 그렇고 그런 괴물 영화로 끝났을테지만, 경악할 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결말은... 최고다.

그렇다면 원작 소설은 어떨까. 영화는 - 사실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 - 원작 소설을 잘 재현해 놓았지만, 소설의 결말과는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아, 왠지 영화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드는 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것은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쪽이 훨씬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랄까. 그렇다고 원작 소설의 결말부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원작 소설의 포인트는 마트안에 갇혀 버린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는 것에 있다.

단 몇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람을 노리는 괴물. 하지만 그 괴물은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 일부분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크기는 얼마나 큰 것인지, 어디에서 인간들을 노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괴물은 모습을 다 드러낼 때보다 살짝살짝 보이는 게 더 무섭다. 안개는 그런 역할을 충실하게 맡고 있다. 맑은 날이었다면 괴물이 그토록 무섭게 다가왔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각이란 감각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인간의 존재에 있어 시각이 차단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공포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주위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는 인간의 공포를 극에 달하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마트안에 갇힌 80여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커모디 부인의 광적인 연설이 극한의 공포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생존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 가치관 등도 쉬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미지의 존재에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의 군상극. <안개>는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일듯 말듯한 미지의 괴물과 작은 공간안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심리가 잘 반영된 소설이다.

중편 소설인 <안개>뒤에 나오는 8편의 소설은 모두 단편소설이다. 환상과 공상을 넘나드는 작품을 비롯해 인간의 편집증적인 광기를 보여주는 작품,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람들, 타인에 대한 모멸과 멸시가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으며, 미지의 존재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작품등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원숭이>는 악령이 들린 인형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인데, 실제로 이 원숭이가 하는 것이라곤 심벌즈를 울리는 일밖에 없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편집증적인 광기와 공포를 선사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탄의 인형처럼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지만 원숭이가 심벌즈를 울리는 행위는 누군가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정말 인형의 짓인지 아니면 우연한 결과인지 읽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혹시 할이 보는 것은 모두 환상이나 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어른이 된 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마지막 부분을 보면 정말 악령이 들린 원숭이 인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람들에 관한 두 가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공간을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조운트>는 공간 이동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유쾌한 반면, 후자는 음울하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미지의 괴물, 환상과 망상, 편집증적인 광기, 인간끼리의 차별과 모멸과 멸시, SF적인 면이 돋보이는 시공간 사이로의 이동 등 소재도 다양할뿐더러 결말 부분도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하는 총 9편의 작품들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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