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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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은 소년이었던 때를 그리워한다. 소년은 어른이 되면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자신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많을 뿐이라고 생각할 뿐. 그러나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이때문에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때문에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어른의 여유는 어른의 허세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약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어른이 된 소년 역시 허세를 부리고 만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의 무모한 용기, 어설픈 열정 같은 것들을. 그래서 소년과 어른은 서로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늘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여기 아직 소년이지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가 있다. 이름은 강연우. 고교생이다. 싱글맘인 엄마 신민아씨와 함께 살아간다. 연우의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육아방침은 철저한 방목. 자유를 주는 대신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해주는 울타리 역할을 엄마가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연우는 편모가정의 아이일지라도 비뚤어지지는 않았다. 때론 사춘기적인 일탈을 하고 싶어 '나 비뚤어질테야'라는 행동을 보이긴 해도 늘 그자리로 돌아온다.

연우는 전학과 이사를 동시에 했다. 이사 첫날 자신의 방을 올려다 보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 연우는 그 소녀가 이채영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자신과 동갑내기이며,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우에게는 또다른 친구인 독고태수가 있다. 그는 조기유학을 다녀온 아이이며, 그곳에서 무척 힘든 일을 겪은 듯 하다. 태수에게는 여동생 마리가 있는데, 태수와 같은 학년이다. 태수네 집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에 가까운 행복한 집이지만 어디인가 일그러져 있다. 그건 채영이네도 마찬가지. 어린 시절 영재교육을 받았지만 일반 학교에서는 학습부진아로 낙인찍힌 이력이 있다. 마리는 모범생이자 어른들이 좋아하는 타입의 아이로,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다 꿰뚫어보고 있는 영특한 아이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오빠 태수를 걱정하는 부모님때문에 바른 생활 어린이로 살아가고 있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이렇듯 남녀 고교생 네명과 그들의 부모인 어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이다. 연우가 살아가는 10대 청소년의 세계와 연우가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가 절묘하게 비교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연우의 환경은 특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싱글맘인 엄마는 지금 연하남과 열애중. 연우는 지금 엄마가 사귀는 재욱에 대해서는 반감은 가지고 있지 않다. 엄마가 솔직하게 연우를 대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여유를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님들은 우리들에 대해 늘 강한 모습만 보이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연우의 엄마는 좀 다르달까. 그래서 연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털어놓는다. 친구같은 엄마와 아들이다. 하지만 역시 엄마는 엄마이기에 연우에게 자신의 모든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는다. 연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어차피 이해하거나 배려해줄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안다.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자식간이 얼마나 될까.

태수네 집을 봐도 채영이네 집을 봐도 부모와 자식은 단절되어 있다. 태수네 부모님은 마리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고, 태수가 혹시 마리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한다. 채영이네 역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마음을 닫은 엄마 사이에서 채영은 방황한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겉으로 보기엔 이상적인 집이라고 해서 속까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연우네는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어 보여도 오히려 태수네나 채영이네보다는 부모자식간의 거리가 가깝다. 그런 걸 보면 참으로 묘하다. 물론 이것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인지도 모르고, 진짜 현실속에도 연우네 같은 집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이건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너져 버린 현대 가족을 이토록 뚜렷하게 비교해서 보여주는데에는 이런 설정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말이다.

소년시기의 사랑, 우정, 그리고 소년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숨막혀 하는 아이들의 작은 일탈. 『소년을 위로해줘』는 가벼운 필치로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였던 어른들이 아이였던 시절을 깡그리 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전히 아이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이미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연우의 엄마의 글에 등장하는 채영의 아버지는 우리 시대의 평균적인 어른의 모습이자 부모의 모습이다. 자신도 꿈이 있었고 동경하던 것이 있었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은 결코 예전 그 시절에 품었던 이상적인 모습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쨌거나, 대결할 힘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가치관에 따르는 척해야 하는 미성년자 신분. 우리들, 그래서 자꾸 비밀이 많아지고 자기 방으로 숨어드는 건가.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되면 우리가 미워하던 사람들처럼 위선적이고 허세만 부리는 거 아냐? (310p) 

나도 서른이 넘은 어른이라 이런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저 답답해 보이겠지. 왜 저러고 사나 싶겠지. 그러면서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는 게 이해도 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은 어른의 마음은 그 나이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나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그런 어른들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서서히 잊어 가면서 또다른 정형화된 어른이 되어가겠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 실망하겠지. 문득 돌아본 자신의 모습에. 결국 이러고 살려고 그렇게 바르작대면서 살아왔나 싶어서. 제대로 된 출구도, 비상구도 없는 세상에 갇혀 살면서 유일한 해방구로 여겨지던 힙합의 혁명 정신에 빠져 있다가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유치해질지도 모르지. 그래도 어쩌겠니. 이게 현실인걸. 

겉으로 보기엔 딱딱해 보이는 정형화된 틀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도 소년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소년 시절의 열정을 되새기면서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소년시절의 열정과는 달라져버렸다. 인간이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달라지고, 그 시간이 그런 열정에 뭔가를 덧칠하거나 빼버리게 되면서 완전히 똑같은 열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니까. 그저 비슷할 뿐.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 안의 숨겨둔 소년을 혼자서 위로하며 평생 살아가게 되겠지.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나이값 못한다, 철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까. 진짜 소년일 때는 어리니까 어른들로부터 그렇다고 생각해주고 때로는 배려받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연우도 이젠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서서히 그 의미를 깨달아 가겠지. 그리고 평생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겠지. 그리고 연우 역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겠지. 그런 연우를 보며 나도 나의 소녀시절과 지금과 더 나중에 대한 생각을 하며 위로받으며 살겠지. 위로란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란 걸 마음속에 담아 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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