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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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거부할 사람이 없듯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맛집으로 소문난 집을 찾아가서 먹는 것을 즐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집은 대부분 손님들의 회전율이 빠른 곳으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런 집보다는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조용한 곳, 화려한 음식을 내는 곳보다는 소박한 가정식 음식을 내는 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내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싫지만 내 뒷사람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쫓기듯 식사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식을 한다면 그런 집을 주로 찾게 된다. 그렇다 보니 늘 가는 곳만 가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선뜻 낯선 곳에 들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노가시라 고로는 외국에서 잡화를 수입하는 무역상이다. 그래서 고객들을 만나는 일도 잦고, 출장도 잦은 편이라 늘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 들른 적이 있는 곳이라면 그런 음식점을 찾겠지만, 낯선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처음 보는 곳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아무곳에나 선뜻 들어가는 법이 없다. 일단 먹고 싶은 것을 정하고 그런 음식을 파는 곳을 찾는다든지, 가게의 분위기를 잘 살피고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아무데라도 들어갈 법도 한데, 이 남자에겐 그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총 19편의 연작단편으로 이루어진『고독한 미식가』는 이노가시라 고로가 선택한 음식점과 그곳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로 도쿄의 음식점이 나오지만 때로는 도쿄가 아닌 곳의 음식점과 그곳에서 파는 음식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식가라는 제목과는 달리 아주 평범한 음식들이다. 우리는 미식가라고 하면 아주 희귀한 재료로 만든 비싼 음식이나 호텔 주방장처럼 요리 수업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내놓는 곳에서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노가시라 고로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른 미식가이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사람이랄까. 그래서 그가 먹는 음식은 모두 평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고른 음식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느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노가시라 고로가 먹는 음식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 몇가지를 들라면 야키니쿠, 오마카세 정식, 비엔나 소세지 카레, 돈까스 샌드위치가 있다. 야키니쿠의 경우 얼마나 잘 먹던지 보는 내가 배가 부를 정도였달까. 미식가 이전에 대식가였군, 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마카세 정식의 경우, 이름이 재미있어서 기억한다. お任せ(오마카세)란 '맡겨만 주세요'란 뜻인데, 말그대로 주방장이 모든 것을 일임하는 요리이다. 주방장이 고른 재료와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요리라, 이런 것은 주방장을 잘 알지 못하면 선뜻 시키기 힘들텐데도 이노가시라는 선뜻 시켜서 먹고, 또 추가 주문까지 하는 것을 보니 꽤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비엔나 소세지 카레는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무척 특이한 요리라서 기억나고, 돈까스 샌드위치는 야채는 하나도 없고 돈까스만 달랑 들어간 샌드위치라서 기억난다. 내가 생각하는 샌드위치란 야채가 듬뿍 들어간 것이 대부분인데, 돈까스만 달랑 들어가 있다니, 먹다가 목이 막힐까 겁난다. 

그외에 내가 좋아하는 타코야키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오사카의 풍경이 그대로 담긴 그림도 멋졌고, 타코야키 포장마차에서의 손님들의 농담도 재미있었달까. 완전 단골손님들로 꽉 찬 분위기 속에서 홀로 고독함을 맛봐야 하는 이노가시라. 타코야키의 맛은 좋았을지라도, 마음은 조금 불편하지 않았을까. 나같은 경우 그런 게 싫어서 음식을 사올 때는 주로 포장을 해오는데, 이노가시라 역시 포장을 하려다 발복 잡혀서 그곳에서 먹게 되었지. (笑)

음식 이야기와 더불어 그곳의 분위기, 때때로 떠오르는 추억에 관한 이야기까지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한 사람이 평생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면, 책 수십권은 탄생하지 않을까. 음식이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는 원칙은 깨지지 않겠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음식이란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건조하고 삭막한 현대 사회.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쓰지 않고 혼자 식사를 하는 이노가시라 고로. 음식을 먹는 순간 만큼은 그는 자유다. 그리고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그러하기에 그는 진정한 미식가인 것이다.

뒷편에 수록된 스토리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낯선 음식점 체험기와 다니구치 지로, 구스미 마사유키, 그리고 소설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대담도 무척 즐거웠다. 특히 대담편에서 한 컷트에 하루를 꼬박 쓴다는 다니구치 지로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배경이 이토록 섬세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달까. 마지막 스토리로 뭔가 모르게 뚝 끊겨졌다는 느낌은 들지만, 대담이 있어 그 부분을 상당히 완충해 주었다. 한 권쯤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어려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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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적거리는 곳 보단 조용한 곳이 좋아요. 리뷰 읽다보니 어떤 느낌의 책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요. 음식이야기와 관련된 책이라.. 평범한 것이 특별함을 낳는게 좋아요. 일상의 소박함도 좋고요. 장바구니로 가는군요ㅎㅎ

스즈야 2011-03-14 23:2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전 다니구치 지로 원래 좋아하는데요, 음식 이야기도 참 맛있게 썼더라구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다니구치 지로의 자연과 인간에 관한 만화도 강추합니다.

2011-03-1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인간에 관한 만화라면 <신들의 봉우리>와 같은 작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다니구치 지로씨의 책이 생각보다 많아서 뭘로 먼저 시작할지 고민이 되네요.
처음은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권수는 상관없어요)

스즈야 2011-03-15 21:35   좋아요 0 | URL
시튼 시리즈도 좋구요, 동토의 여행자도 좋아요.
좀 다르지만 개를 기르다도 좋구요.
전 아직 신들의 봉우리는 못읽었답니다.... 읽을게 너무 많아요.. 아니, 읽고 싶은 만화가 너무 많다는 말이 맞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