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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섬 ㅣ 바벨의 도서관 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세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보물섬』을 읽으면서 모험을 꿈꿔 본 적이 있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으면서 선과 악이란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란 이름이 절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이 명작동화 중의 한 권인『보물섬』을 읽으면서 환상의 모험에 대한 꿈을 꾸면서 자랐다. 바벨의 도서관 5권은 이렇듯 대표작 한 두 권만 언급해도 아하,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소리 섬>은 마법을 사용하는 장인 칼레마케를 따라 목소리 섬으로 가서 조개껍질을 금화로 바꾸는 걸 본 케올라가 욕심을 부리다 칼라마케에게 버려진 후 떠돌면서 겪게 된 모험 이야기이다. 장인인 칼라마케의 눈에 띄면 죽임을 당할까 두려운 케올라는 숨어 살 섬을 살다가 버려진 듯한 한 섬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혼자서 편안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그는 이 섬이 바로 목소리 섬이란 걸 알게 되고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배를 타고 다른 섬에서 온 부족의 도움을 받아 그는 아내도 얻고 한동안은 행복하게 살지만 그 부족이 식인종이란 것을 알게 되는데....
욕심을 부리던 케올라가 여러 가지 난관을 헤치고 다시금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인데, 그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지나던 배에 구조되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기껏 도망친 섬은 장인이 마법을 부려 나타나는 목소리 섬이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부족을 만났더니 식인종이고... 어떻게 보면 케올라가 겪는 일들은 머피의 법칙을 따른다고나 할까. 웃음이 큭큭하고 나오면서도 묘하게 케올라를 동정할 수 밖에 없다. 마법의 환상과 모험의 아슬아슬함과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
<병 속의 악마>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병을 사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병 속에 있는 악마가 소유자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이루어주는 소원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르는 법이니. 악마의 도움을 얻어 훌륭한 집을 짓고 결혼식을 하게 된 케아웨는 결혼 직전 자신이 끔찍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 병은 다른 이에게 팔아 버렸다. 더 좋지 않은 것은 그 병의 가격이 내려갈대로 내려가 지금 자신이 산다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을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병에는 자신이 산 가격보다 더 싸게 팔아야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그 병을 마지막으로 소유한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괜히 악마의 병이 아닌 것이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병을 손에 넣고 결혼을 했지만, 죽어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케아웨는 잠도 안온다. 사랑하는 아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다. 케아웨의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병을 살 것을 결심하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주인공들같은 사랑을 하는 부부와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악마의 시험. 부부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 병을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부부의 모험담이 어우러진 작품.
<마크하임>은 예전에 앤솔로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번역이 다르니까 작품의 느낌도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파산직전에 이른 마크하임이 돈을 훔치기 위해 한 중개상을 살해한다. 그러나 그후 누군가 가게로 찾아오는데... 악행을 부추기는 한 남자의 등장과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크하임의 대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돈을 잃는다손 쳐도, 다시 빈곤에 빠진다고 해도 내 안의 한 부분, 더 나쁜 쪽이 선한 쪽을 끝내 깔아뭉갤까? 악과 선이 강하게 치고 들며 나를 양쪽으로 세게 끌어 당기지만, 나는 둘 중 하나만 사랑하지 않고, 둘 다 사랑해. (139p)
선과 악은 늘 공존한다. 특히 인간의 마음은 늘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고 흔들린다. 악행을 부추기는 남자와 자신의 마지막 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마크하임의 모습은『보물섬』의 존 실버나,『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지킬 박사의 모습을 연상시키게 한다.
<목이 돌아간 재닛>은 제목부터 으스스하다. 50년전에 악마를 만났던 목사의 이야기.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완고한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일까.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악이란 것은 늘 사람 주위를 배회하고 있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떨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중 <목소리 섬>과 <병 속에 든 악마>는『보물섬』처럼 흥미롭고 환상적인 모험이야기에 부부의 사랑이란 것을 더한 작품이다. 마법사나 악마가 등장하지만 살떨리게 무섭다기 보다는 유쾌한 어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쓰라림을 맛보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결말 부분 역시 해피엔드이다. <마크하임>의 경우 선과 악의 대립, 즉『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면이 부각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덜 무겁다. 마크하임의 선과 악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싸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품인 <목이 돌아간 재닛>은 악마를 만나게 된 신부의 이야기인데, 공포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목이 돌아간, 이란 표현을 읽고 난 엑소시스트에서 악마에 씌어 목이 돌아가던 리건의 모습을 떠올려버렸다.
마법과 악마가 존재하고, 모험과 사랑이 존재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와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대결하는 신부의 이야기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들은 유쾌한 이야기와 더불어 인간이 진실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토록 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