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기둥 바벨의 도서관 4
레오폴도 루고네스 지음, 조구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바벨의 도서관 네번째 책은 레오폴도 루고네스의『소금 기둥』이다. 레오폴도 루고네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강경 사회주의자 지식인 그룹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 시집을 펴내면서 문단에 데뷔한 작가이다. 주로 시와 평론 활동을 해왔던 작가로 소설은 3권을 펴냈는데, 여기에 실린 작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직접 선정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수르>는 자신의 침팬지 이수르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던 한 남자가 남긴 기록이다. 이 남자는 원숭이 종류는 원래 인간이었지만 말문을 닫고 원시세계로 돌아감으로써 원숭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이수르에게 차근차근 인간의 말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했고, 그는 이수르가 자의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수르는 정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 뿐일까.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은 진실일까, 아니면 그의 집착에서 나온 환상이었을까.   

<불비>와 <소금 기둥>은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불비>는 어느 날 한 도시에서 일어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청명한 여름 하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늘에서 뜨거운 놋쇠 비가 떨어져 내린다. 첫 불비는 강도가 약해 도시 사람들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두번째 내린 불비는 그 강도가 점점 세진다. 혼란에 빠진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간다. 이 작품을 보면서 오랜 시간전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신의 벌이라 생각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어떤 것이라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라 혼란에 빠진 사자의 등장시켜 이같은 일을 겪은 인간의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워지는 것. 그러나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고,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대답을 내려주는 이가 없다.

<소금 기둥>은 한 수도사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린 롯의 아내를 구원하려 하지만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려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롯의 아내 역시 천사의 경고를 어기고 뒤를 돌아봤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다. 이 수도사 역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무엇을 봤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멸해졌다. 인간은 때로 유혹에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때로는 호기심을 억눌러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앞의 두 작품이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라면 <압데라의 말>은 헤라클레스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압데라라는 도시는 말로 유명한 도시이다. 사람들은 말을 사랑했고 잘 돌봐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들은 사람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말썽을 부리는 정도를 넘어 인간들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광포해진 말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했던 말들에게 공격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그때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주석에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더라면 사자를 등에 지고 나타난 영웅이 누굴까 했을 것이다. 원래 이야기에 따르자면 압데라 시는 말에게 잡아먹힌 자신의 친구 압데라스를 위해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라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원래 이야기에 변형을 가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구성한 작가의 능력이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일을 겪은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의 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을 때 나타난 한 형체. 정말 잘못 본 것이거나 잘못 따라 그렸다고 믿고 싶지 않았을까.

<프란체스카>와 <줄리엣 같은 할머니>는 두 작품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란체스카>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이야기에서 그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난쟁이이자 곱사등이인데다 난폭하고 잔혹하기까지한 귀족에게 속아 결혼하게 된 프란체스카는 그의 동생 파올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가슴 속 깊이 품었었지만, 그것은 마음으로도 족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눈빛에 담긴 애절한 마음을 본 난쟁이 귀족은 결국 둘을 죽여버리고 만다. <줄리엣 같은 할머니>의 올리비아와 에밀리오는 나이차가 20살이나 나는 고모와 조카 관계이다. 우정같은 사랑을 40여년간 지속해온 두 사람. 그들은 어느 날 밤 나이팅게일의 마법에 빠져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는 순간에 이르지만... 아 무심한 달빛이여. 달빛은 밤의 종다리, 로미오와 줄리엣이 헤어질 시간을 의미했으니...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형수와 시동생, 고모와 조카이다. 즉 도덕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해서는 안되는 사이이다. 그러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는 비도덕적인 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 속 깊이 묻어 둔 사랑, 바라보기만 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달빛이 중요한 장치로 쓰이고 있다. 한쪽은 그들의 사랑의 파멸을 가져왔고, 한쪽은 고백의 순간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더욱더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버렸다.
 
『소금 기둥』에 수록된 총 7편의 작품은 공상과학과 환상, 성서와 신화의 내용의 각색, 공포, 사랑 이야기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는 레오폴도 루고네스란 작가의 작품 경향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도록 안배한 보르헤스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더라면 난 레오폴도 루고네스란 작가의 이름조차 모른채 살았을지도 모를테니까.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 과정을 단 한사람으로 축소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레오폴도 루고네스가 될 것이란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작품집은  나에게 여전히 생소한 아르헨티나 문학에 대한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