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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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철저한 모계집단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장 암컷코끼리는 무리 중 가장 연장자로 무리를 통솔하는 의무를 가진다. 코끼리의 경우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물웅덩이가 있는 곳, 먹을 곳이 풍부한 곳, 위험이 적은 곳 등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가 꼭 필요하다. 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이다. 이렇다 보니 상아를 얻기 위해 인간이 나이든 코끼리를 죽일 경우, 무리는 대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것들만이 남아 무리 자체가 존속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그 무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나이든 코끼리는 코끼리 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인간사회는 어떠할까. 예전만 해도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노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의학의 발달과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년층 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반대로 출산율은 감소하게 되어 인구성장모형은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출산율은 높지만 영유아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도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정체된 인구성장모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이후 베이붐 세대가 태어났고, 그들은 현재 60대 초반이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은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부지쪽은 7남매, 엄마쪽은 5남매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무렵 -1970년대 -에는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홍보사업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어 그런지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구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사람들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신 평균수명의 급속한 증가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동시에 떨어져 어린 인구는 적어지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 역시 2차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이루었고, 원래 장수국가였던지라 평균수명 역시 꽤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국민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젊은이 하나당 노인을 7명 책임져야 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정규직보다는 파견직이나 프리터를 하는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부담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놀고 먹으면서 제 권리 다 찾는 노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인구조절구역』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노인문제와 관련한 소설이다. 노인들의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70대이상의 노인들의 살인을 종용하는 <노인상호처벌제도>라는 것을 도입한다. 이는 지정된 지역의 70대 노인들에게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다. '실버 배틀'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30일동안의 배틀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를 남기게 한다. 만약 기한을 넘기거나 생존자가 둘 이상이면 남아있는 모든 사람은 정부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된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몇가지 없다.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싫으면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거나.

거동이 가능하고 아직 기력이 충분한 노인들은 총기류 같은 무기를 구입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있는 날붙이 등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장소에 따라 노인들이 적은 곳도 있고 많은 곳도 있지만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미야와키쵸는 60명가량의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는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적이다. 죽고 죽이는 배틀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들의 자식들은 손을 놓고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틀을 방해하는 사람 역시 처형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해줘. 그러기 위해서 너희 노인들이 죽어줘. (151p)

개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치매나 오랜 병으로 가족들이 고통받는 경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오랜 병에 효자없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다. 같은 핏줄이요 나를 낳아준 부모지만 이들은 그저 살육을 지켜볼 뿐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배틀 대상인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잔혹한 학살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그 장면이 너무 잔혹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코믹함이 잔혹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특유의 코믹함과 스피디한 전개로 잔혹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런 장면은 인간말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죽음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잉여 인간으로 취급되어 도살당하는 것 뿐이다. 정부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 노인들이 스스로 그 일에 나서게 만드는 최악의 집단일 뿐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노인에게 휠체어를 제공하여 걷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자기 손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노인에게 밥을 지어줘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없도록 해버렸구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이 범람하게 된 거지요. 일사(一事)가 만사(萬事)라는 양식이야말로 이 배틀의 간접 원인이라고요. (242p)

정부는 복지제도를 만들어 노인을 우대해오는 정책를 펴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자 이번에는 노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인가. 

현대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치매나 노환으로 오는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 가족의 부양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찌르르한 느낌을 받게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근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70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소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70대의 노인이 본 현대 사회,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근미래사회. 츠츠이 야스타카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고, 노년의 작가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노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도덕도 양심도 생존이란 단 하나의 문제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노인들은 더이상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인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쓸모없는 존재, 죽어주는 것이 마땅한 잉여인간으로 치부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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