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혼자서 귀를 파지만 어린 시절에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가 귀청소롤 대신해주셨다. 움직이면 큰일난다, 라는 말에 꼼짝도 않고 귀를 대고 누워 귓속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 순간은 시원하면서도 무서운 그런 복잡미묘한 기분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귓속으로 귀이개가 들락날락 할 때마다 뭐랄까, 간지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옛날에 엄마 무릎을 베고 귀청소를 하던 생각이 문득문득 났달까.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의 손님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 저마다의 고민도 있고, 저마다의 사정도 있는 사람들이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령층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느끼는 귀청소를 하는 시간에 대한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듯 하다. 

한 소년은 할아버지가 귀를 파는 것을 마지막으로 임종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할아버지가 행복해하며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한다. 사춘기적 호기심이 더해진 작품인데, 첫장면은 임종이란 다소 무거운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끝장면은 풋하고 웃음이 터져버린다.

긴머리 남자는 첫사랑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의 딸이 그에게 찾아와 전하는 이야기는 아련함을 남긴다.

동선동 일기는 귀 파주는 가게 근처에서 귀청소를 할때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은밀하게 엿듣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변태적이라기 보다는 노년의 비밀스러움을 즐기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검을 잘 다루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달인은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그림만으로 충분히 그 내용을 전한다. 검의 명수이지만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남자. 그는 짚단 베기를 할 때 잠자리가 앉아 있는 곳을 피해 벤다거나, 그를 찾아온 길고양이 가족에게 자신이 먹을 밥을 선뜻 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모기가 귓속에 들어가 앵앵댄다는 것. 물론 죽여서 꺼낼수도 있겠지만 그는 굳이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를 찾아간다. 살아서 앵~~하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던 모기의 운명은 그후 비극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따스함을 안겨 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는 권고퇴직당한 후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후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떠돌이 개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중 소소한 행운도 만나고, 불운도 만나게 되는 남자는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에서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귀청소일 뿐인데 불면증은 싹 사라지고 달디 단 잠을 잘 수 있었던 남자. 이런 걸 보면 행복은 정말 소소한 데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레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는 이혼녀이자 싱글맘이다. 그녀가 뭐만 하려 하면 비가 온다나. 그런 사람이 있다. 소풍을 가려하면 비가 오고, 생일만 되면 비가 오고, 결혼식날도 비가 오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그녀의 인생은 불운으로 점철되어 보이지만, 귀파주는 가게를 다녀온 그녀의 운명은 180도 변했다. 이는 귀파주는 가게의 작은 마법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 부부와 아이가 만들어낸 삶의 작은 마법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불감증에 시달리는 여자, 어린 시절 시원하게 귀를 파주던 감각을 잊지 못하는 여자, 출산의 두려움을 가진 여자 등 각 에피소드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편 한편마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달까. 또한 작화 자체는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 어렵지만 각 인물들의 개성을 잘 담아 내고 있다. 또한 귀를 파는 순간에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담긴 손끝, 발끝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에 수록된 총 9편의 에피소드들은 짧은 분량이지만 그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때로는 풋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한 작품들은 우리 삶의 긴 시간에서 찰나를 점하고 있는 귀청소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시간 중에서 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그 시간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에게 꼭 어울리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