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단편집 바벨의 도서관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외 지음, 연진희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시아 문학은 유럽 문학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거의 없다. 일종의 편견이란 것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는 러시아 문학은 난해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것인데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도 어려워서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러시아 문학을 접했던 것은 고교시절인데,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알레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었다. 내 책은 아니었고 아버지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골라서 읽었는데, 당시 고교생이던 나에게는 무겁고 어려웠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하긴 그때도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을 즐겼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후 러시아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바로 몇 년전으로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과 스뚜르가츠키 형제의 작품이었는데, 흥미롭게 읽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도 큰 걱정없이 손에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악어>이다. 악어를 구경하러 갔던 이반 마트베이치가 악어에게 먹혀버리고 마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풍자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나이가 악어 뱃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악어 주인인 독일인은 그 사실을 몰랐을 때도 그 사나이를 위해 악어를 죽일 수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악어 뱃속에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것으로 더욱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반 마트베이치의 친구인 나는 이 문제를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은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며, 러시아 경제를 위해서는 악어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반 마트베이치의 아내는 악어 뱃속에 들어간 남편과 이혼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제일 가관인 것은 악어 뱃속에 들어간 이반 마트베이치다. 그는 자신이 유명해질 것이라며 '나'를 비서로 삼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계획하고 떠들어댄다. 이 모든 등장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를 가져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단편이지만 한편의 군상극이자 풍자소설인 이 작품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악어>는 배금사상, 물질만능주의, 관료정치의 비판과 더불어 지식인층과 여론지도층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편의 신문 기사는 이 풍자극의 정점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작품이 미완성 원고라고는 하지만 난 이 작품 자체로도 훌륭한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두번째 작품인 <라자로>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작품이다. 사실 난 이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 그의 작품 세편이 출간된 것으로 보아 그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가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병사한 라자로라는 남자가 예수에 의해 사흘뒤 부활한 뒤의 삶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은 라자로가 부활해서 돌아왔을 때 그의 부활을 기뻐하고 환영했다. 하지만 라자로는 아무것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공허함과 음울함만이 그의 주변을 떠돌고 있는 분위기랄까. 죽음이란 것을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공허함은 라자로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비탄과 두려움이 그대로 담겨있는 그의 눈빛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그를 기피하게 만든다.

만약 내가 라자로와 같은 경우라면 난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때때로 죽음의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들은 제 2의 삶이라 하며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라자로와 그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라자로는 확실한 죽음을 경험했고, 다른 이들은 죽음의 기운만을 느꼈기 때문일까. 결국 비탄과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선택한 라자로의 모습은 완전한 죽음 이후의 부활이 기꺼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것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른 작품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그의 삶 전반을 다룬다. 물론 어린시절의 삶이나 청소년기의 삶에 대해서는 훑듯이 스치고 지나가고,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대해서 주로 다루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고상하며 경쾌한 삶을 살았다. 직장 문제에 있어서도 탄탄대로였고, 사랑스런 여성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후의 삶은 급격히 달라진다. 아내는 임신한 후부터 그에게 짜증을 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는 등 그의 결혼 생활은 오랫동안 삐걱거렸다. 또한 승진문제에 있어서도 밀리는 등 그는 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또 올라가는 길이 나오듯 미끄러져 내리던 그의 삶이 다시 행복의 궤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지않아 그는 병을 앓게 되고 그것은 그의 삶을 급격히 추락시킨다. 원인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병과의 싸움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 말라붙어간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된 태도로 그를 대한다고 생각하게 되니, 어찌 하루하루가 편하랴.
하지만 이것이 이반 일리치의 망상만이 아니란 것은 글을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장례식에 참가한 지인들은 얼른 돌아가 카드 게임을 즐길 생각을 하고, 아내는 좀더 많은 돈을 정부로 받아내길 바란는 첫장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평소 그의 아내는 그를 배려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그를 끊임없이 깎아내렸고, 딸은 엄마를 닮아 다른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이런 상황의 이반 일리치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이반 일리치는 죽기 얼마전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를 돌아보던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죽기 몇 시간 전에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비록 삶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죽은 후의 얼굴이 편안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구원을 받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때이른 죽음이 찾아온 것을 보면 그를 가엽게 여기면서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 역시 죽음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더욱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하지만 죽음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 생각한다. 비록 끝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또다른 곳에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러시아 단편집에는 도스토옙스키, 안드레예프, 톨스토이의 작품이 한 편씩 실려 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잘 알려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몇몇 작품의 이름은 댈수 있는 작가이고, 톨스토이 역시 <바보 이반>이나 <안나 카레니나>등의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이 많은 유명한 작가이다. 나 역시 이 두 작품은 읽은 적이 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줄거리 전체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안드레예프의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낯선 안드레예프가 이 책에 실려 있는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달까.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허함과 음울함은 왠지 러시아 작가가 아니면 쓰기 힘든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 작품의 분위기는 모두 달랐지만, 각 작품은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무척 흥미로웠다. 앞으로는 다양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좀 더 많이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