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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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사는 곳은 인구가 20만이 채 안되는 작은 지방도시이다. 20년전에도 17만 정도라고 했으니 인구의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 중심을 제외한 주변의 땅에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시내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조그마한 수퍼가 있고, 그 근처로는 재래시장이 섰지만 이제 재래시장은 큰 것 두개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고,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대형 평수가 많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또한 예전의 중심지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한때 주택지로 인기가 높았던 곳은 사양화를 걷고 있고, 예전에는 허허벌판이던 곳이 개발이 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주택지가 새로 조성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공무원, 학생, 그리고 농민을 빼면 다른 직장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다른 면에서는 낙후되어 있다. 좋은 말로 양반의 도시이자 학문의 도시이지 그것빼면 시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는 인구수에 비해 꽤 많은 편인데, 그 이유는 시외쪽의 시골에서 시내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울 아부지가 다니시던 초등학교는 이젠 분교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 시외 인구는 줄어들어 버린 상태다. 그래도 국립대학을 비롯해 대학도 몇 군데나 되어 그쪽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꽤 많지만 대부분은 서울같은 대도시쪽으로 진학하는 편이다. 고교생들까지는 많은데, 20대 이후의 젊은층이 별로 없달까. 그나마 학생들이 많아서 그렇지 안그러면 진즉에 고령화되고도 남을 도시다. 이는 단일시로서는 면적이 제일 넓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스울 정도로 우울한 일일지도.

유메노 역시 그런 도시이다. 인구 12만의 작은 지방 도시. 주변의 작은 도시 3개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퍽도 적다. 하지만 역시 이곳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와 신시가지는 발전하는 한편 구시가지는 날로 몰락해간다. 거대한 마트와 전자 상가는 개인 수퍼와 상점들을 문닫게 했고, 젊은층이 점점 줄어들면서 도시 자체가 고령화되어 간다.

이 소설은 다섯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몰락해가는 한 지방도시의 실상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잔혹하고 진중하게 묘사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공무원으로 생활보호대상자를 관리하는 케이스워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의 보조만 받으려는 사람들을 물색해 그들의 보조를 끊고, 더이상 보호대상자가 늘지 않도록 조사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아이하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는 정말 돈을 많이 받는구나, 그리고 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달까.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기준이 까다로운데다가 정작 나오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조금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돈데, 유메노의 경우 수십만엔, 우리돈으로 수백만원이 넘는 돈이 생활보호보조금으로 지급된다. 이러니 사람들은 일을 안하고 보조금을 타서 놀고 먹으려는 케이스가 많아졌지만.. 특히 싱글맘에게도 보조금이 이렇게 지급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여기도 재정이 불안해지자 보조금받는 대상을 줄이고 심사기준을 높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하라는 언젠가 현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계기가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놓고 만다. 그가 우연히 파칭코 주차장에서 목격한 것은 주부원조교제였다. 한 여인에게 꽂힌 그는 그 주부를 스토킹하기도 하고 다른 여자를 사기도 한다. 이혼한 상태인 그로서는 별로 꺼릴 것이 없지만, 문득 그는 이 주부들을 보면서 자신의 전처도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범한 공무원에서 갑자기 일탈 노선을 타게 된 아이하라는 일을 대충대충하다가 한 생활보호대상자 대상에게 찍히고 만다. 사회부적응자인 그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게 되는 아이하라는 어떻게서든 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구보 후미에는 고교 2학년 학생으로 이곳의 정체된 삶이 싫어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한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역시 도교대 시험을 볼 예정이라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성적은 아슬아슬하다. 벌써 도쿄 지역의 대학생이 된 듯 자기 주변의 고교생을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구보 후미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는 개뿔. 학원에서 돌아오다 덜컥 납치를 당하고 마는데...

후미에를 납치한 것은 게임 오타쿠. 그의 집 별채에 갇혀 하루하루 눈물 마를 날이 없는 후미에는 조금씩 감금생활에 적응해 간다. 이 오타쿠는 완전히 게임에 빠져 그녀를 메일린이라 부르고 자신을 루크라고 할 정도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 상태로 부모를 상대로 잦은 폭력과 폭언을 구사한다. 후미에는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탈출하려 하지만 감금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또다른 걱정이 생긴다. 무사히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납치 및 감금 사건에 연루된 것이 세상에 다 알려졌을 것이고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진 소문은 솜방망이가 쇠방망이가 되고, 티끌만한 것이 태산이 되어버리니까.

가토 유야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전직 폭주족 출신이다. 지금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직장이란 것이 폭주족 출신들이 만든 회사이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이혼, 아이는 전처가 기르고 있다.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지만 배운 것 없고, 기술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일 뿐. 같은 폭주족 출신 후배들은 브라질인들과 싸움을 하지를 않나, 생활보호대상자에서 밀려난 전처는 아이를 그에게 덜컥 맡겨버리고, 그의 선배는 사장때문에 속상해하다가 사고를 쳐버리는데...

호리베 다에코는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한다. 식품매장에서의 좀도둑을 잡는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만 가족관계가 좋지 않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동기간인 오빠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이고, 자식들은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아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신흥종교에 빠져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신흥종교집단의 표적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 다에코는 어머니 입원문제때문에 속상해하다 경증 치매에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돈도 없지 직장에선 해고되었지, 신흥종교집단에는 매달 돈을 바쳐야지.

다에코를 보면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달 회비로 2만엔(우리돈으로 20만원이 넘는다)을 납부해야하고, 출가하려면 전재산을 바쳐야 하는데, 왜 교주가 돈욕심이 없다고 할까. 아마도 말빨에 속아서, 자신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것에 속아서 그렇지 싶다. 현세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생각하고 내세를 위해 산다니. 그런 교주가 성형수술에 고급 가구에 명품쇼핑을 하나? 거참.

야마모토 준이치는 40대 초반의 시의원으로 현의원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대부터 정치을 해 온 집안이라 이 지방 유지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부동산 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야쿠자와도 손을 잡고 있다.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져 입후보만 하면 당선이 되던 것도 옛날 말. 지금은 은퇴한 정치인의 무리한 요구와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골치가 썩어난다. 게다가 마누라는 집을 수리할 계획에 돈을 퍼붓지를 않나 명품 쇼핑에 돈을 들이붓지를 않나,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딸은 벌써부터 엄마를 닮아 쇼핑에 맛을 들였다. 현의원으로 출세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였지만, 어느샌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큰 일을 내고야 마는데...

이들을 보면 10대부터 40대까지의 인물들이다. 즉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하겠다. 10대를 대표하는 후미에는 지방 대학보다는 도교쪽의 대학을 선호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여느 지방을 가도 똑같다. 하지만 그 꿈은 납치 및 감금이란 것으로 산산히 부서진다. 20대를 대표하는 유야는 10대 시절의 불량소년, 지금은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한다. 이른 결혼의 실패로 이혼한 상태에 아들까지 기르게 된 상황. 그의 선배 시바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장과 시비가 붙어 사고를 친 후 인생 종치게 된 상황에 몰렸다. 30대의 아이하라는 공무원생화을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괜히 우쭐해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 혹독한 칼날을 휘둘렀다 자신이 그 칼을 맞게 생겼고, 거기다가 전처을 묘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버렸다. 40대 초반의 시의원 야마모토는 현의원으로 출마할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은퇴한 정치인과 알력싸움에서 큰 일을 저지르고, 야쿠자와 험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즉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에 몰렸다. 다에코는 신흥종교가 자신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줬다고 믿었지만, 그게 다 거짓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외에도 부모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히키코모리 게임 오타쿠, 이민 노동자로 사회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인들(디뉴), 공부에는 관심없고 어른들의 말은 그냥 생으로 씹어버리는 고교생들, 폭력과 공갈과 협박이 최선의 해결책이라 믿는 야쿠자, 주부 원조 교제단 등은 유메노란 작은 소도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을 묘사한듯 하기도 하다. 하긴 유메노를 세상의 축소판이라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몰락해가는 지방 소도시의 정체와 우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대조적인 모습을 비롯해 젊은층이 대도시로 빠져나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혼 가구의 급증 등은 사양길에 접어든 중소도시의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유메노라는 도시에 사는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꿈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어쩌면 이들이 불순한 꿈을 꿨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한 유메노의 사정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결말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마 죄를 지은 자는 죄를 지은 자대로 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그머니 빠져나갈 인간도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완전한 다른 삶을 꿈꿀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꿈은 꿈이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반쯤 부서진 꿈을 이들은 다시 온전한 꿈으로, 온전한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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