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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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아직 아이였던 나는 그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이 가장 큰 화제였던지라, 그것들이 아련한 기억 중 그나마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그런 건 낭만과 거리가 먼 듯하다. 하긴 그 나이의 꼬마가 낭만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알리가 없었지. 내가 생각하는 낭만의 시대는 90년대 중반이다. 내가 20대에 접어든 시기였고, 대학생이 된 시기였기에. 고교시절까지 학교란 테두리에 갇혀 감옥같은 생활을 했다고 느꼈으니 대학생활의 자유로움은 달콤한 낭만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낭만이란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픔과 상실, 그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천샹, 예러우, 그리고 망허가 살던 시대는 1980년대의 중국이다. 그 시절은 시의 낭만이 흘렀고, 시인들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시인들은 방랑자였고, 시인들은 발길 닿는대로 중국 대륙 곳곳을 누볐다. 천샹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시인 망허를 사랑했다. 그러나 방랑하는 시인을 붙잡을 수 없는 천샹은 그들이 나눈 사랑을 추억하며 몇 달을 보낸후 학교 선배인 라우저우어와 결혼한다. 일곱달만에 아기를 낳은 천샹은 아이의 이름을 샤오촨이라 짓게 된다. 천샹은 비록 망허는 자신을 떠났지만 자신에게 남겨진 샤오촨을 보면서 영원히 그를 곁에 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를 사랑한다 해도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사람도 아닌 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평생을 내어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는 시를 쓸 수도 시인이 되지도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만약 망허가 아닌 다른 시인이었다 해도 그녀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사랑이란 것이 때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단을 내리게도 한다지만, 천샹의 선택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시 한순간의 열정이 그녀를 사로잡은 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샤오촨을 낳은 후 그녀가 샤오촨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던 모습을, 언젠가 샤오촨에게 전해질 편지를 쓰던 천샹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한순간의 열정이라 말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파멸은 소리없이 찾아왔다. 그녀가 시인의 아들이라 굳건히 믿는 샤오촨의 생부가 망허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름을 사칭한 채 한 여자의 마음을 산산히 부서뜨린 자는 아마도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토록 지극한 모성애를 보였던 천샹이었건만, 그 일은 천샹이 모진 마음을 먹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샤오촨은 천샹의 시골집으로 보내지게 되지만, 그곳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다른 남자의 아이란 것을 알면서도 샤오촨을 자신의 아이로 거두고 천샹을 숭배하다시피 하면서 살아온 라우저우어. 그는 무너진 천샹을 보면서, 샤오촨을 밀어내는 천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신만을 사랑해온 여자를 사랑하는 라우저우어는 결국 또다시 천샹도 샤오촨도 잃고 혼자가 되었다. 이미 커다란 상실을 겪은 적이 있던 라우저우어는 또다시 커다란 상실을 겪게 되는 것이다. 상실이란 자주 겪는다고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픔도 절망도 겪으면 겪을수록 더 큰 아픔과 절망으로 돌아올 뿐이다. 결국 라우저우어에게 남겨진 것은 상실의 기억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망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권위 있는 학술기관에 배치되지만 그곳의 딱딱한 시스템에 숨막혀 한다. 때때로 시를 쓰던 망허는 결국 사표를 내던지고 자유를 찾아 시상을 찾아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미즈란 곳에서 자신을 알아 보는 예러우란 사회학과 대학원생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된 망허는 그곳에서 예러우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예러우는 다음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린다. 예러우가 한동안 답사 여행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망허는 사후커우란 곳에서 예러우를 기다려 결국 예러우와 재회한다. 예러우는 왜 허둥지둥 망허의 곁을 떠났을까.

당신이 시인이란 게 무서워요. 시인은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 낯선 자극을 원하죠. 영원히 신선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시인의 영감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난 평범한 여자예요. 내게 필요한 건 평범한 사랑이예요. […] 당신은 결코 나와 함께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일생을 살 수 없어요. 그런 생활은 당신을 질리게 하겠죠. 당신이 내게 싫증이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날 내팽개치고 떠날까 두려워요. 내가 당신 인생의 따분한 추억이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게 무섭다고요. 그런 결말은 절대로 원하지 않아요. (129p)

예러우는 망허를 더욱 사랑하게 되기 전에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가 가진 시인의 마음, 그것은 예러우가 망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겁내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예러우는 재회했을 때 더이상 망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예러우와 망허 두 사람은 함께 답사 여행을 하면서 자꾸만 없어져 가고 무너져 내려가는 지방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곳 사람들의 한 편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얼마 후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힘겹지만 꿈결같은 여행은 갑작스런 이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예러우는 자궁 외 임신 상태였고, 고된 여정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예러우의 갑작스런 죽음에 망허는 망연자실해지고 시란 것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그후 러시아로 건너간 그는 나타샤란 여성을 만나게 되고 또다른 삶을 시작한다. 난 망허가 평생 그녀를 기억하면서 살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사람을 만난다. 순수의 시대는 예러우의 죽음으로 막을 내려 버린 것이다. 어쩌면 순수의 시대가 완전히 허물어지기 전에 아름답게 끝나버린 것은 예러우의 죽음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황톳빛 바람이 부는 황톳빛 대지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단 둘뿐이였으니 그들이 도시로 돌아가 다른 일상을 만나게 된다면 망허의 마음 속에 또다른 바람이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내겐 들지 않는다.

천샹은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삶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한 예러우는 죽음으로 삶을 잃었다. 망허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시를 버렸다. 사랑했으나 아픔과 절망과 상실을 동시에 맛봐야 했던 이들을 치유해준 것은 시간과 사람이었다. 특히 천샹의 경우 샤오촨이 자신때문에 죽었을거라 생각했을테니 그간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샤오촨에게 편지를 쓰고 찢고 또 편지를 쓰고 하는 천샹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릿해져 온다. 비록 한순간은 샤오촨을 버렸을지라도, 어미는 어미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망허는 또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업까지 성공하게 되니 겉으로 보기엔 천샹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훗날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상실을 극복하고 치유의 길을 더 잘 걸어온 것은 천샹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요, 아픔과 상실과 치유의 반복일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이 거짓임을 알게 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잃을 수도 있다. 운명의 베틀에서는 행복과 희망의 실이 들어가 짜여지기도 하고, 절망과 아픔과 상실이라는 실이 들어가 짜여지기도 한다. 그 운명의 베틀에서 짜여지는 완성품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그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예러우의 운명의 베틀은 이미 멈췄지만, 천샹과 망허의 베틀은 여전히 덜그럭거리면서 그들의 운명을 짜고 있을 것이다. 한때 천샹의 운명의 베틀에서는 시에 대한 사랑이란 실이 들어가 하나의 무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다른 실이 다른 무늬를 짜낼 것이고, 망허의 베틀에서는 예러우란 실이 들어가 하나의 무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다른 실이 다른 무늬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시의 시대, 순수의 시대, 길 위의 시대는 저물었을지라도 그것이 영원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음 속에 그리고 정신 속에 새겨진 흔적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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