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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가게 ㅣ 바벨의 도서관 2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하창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허버트 조지 웰스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의 원작 소설 <닥터 모로의 섬>과 영화 <우주전쟁>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닥터 모로의 DNA>의 경우 원래 영화 제목은 소설 제목을 그대로 따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이상한 제목으로 바뀌게되었다. 여튼간에 그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이라도 영화 제목을 말하면 아하, 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외의 유명 작품으로는 <투명인간>, <타임머신>등이 있다.
첫번째 작품인 <벽 안의 문>은 어린 시절 우연히 발견한 문 안쪽의 세상을 평생 잊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문 안쪽의 세상은 세상 어느 정원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은 그에게 그의 이야기가 씌어진 책을 보여주며 이미 이곳에서의 그의 이야기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그후 그의 앞에 그 문은 여러번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동경하던 문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일에 매달려 그 문을 번번히 지나치고 만다. 이미 그는 처음 그 정원에 들어갔을 때의 아이가 아닌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역시 그런 문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현실의 욕망이 앞서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현실을 버리고 그곳을 택했을 경우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보았던 것은 어린 아이만이 볼 수 있는 환상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플래트너 이야기>는 플래트너란 사람이 실험을 하다 실종된 후 아흐레 간 머물게 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폭발로 인해 다른 차원으로 튕겨져 나갔던 것일까. 그곳에서 그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이 희미하게 비치는 현실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선과 악이 더 이상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아닐 때에도, 우리 앞에 놓이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여전히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영혼이 만약 죽음 뒤에도 계속된다면, 우리의 관심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 틀림없다. (89p)
인간의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어쩌면 수많은 영혼들은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도 모르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 하지만 다른 장소에서 -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엘비스햄 씨 이야기>는 여기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이었다. 늙은이와 젊은이의 영혼이 뒤바뀐다, 는 설정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다. 물론 노인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의미는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구만리같은 젊은이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인간의 욕망에 치가 떨린다. 또한 젊은이 역시 노인의 사탕발린 말에 넘어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닌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렸으니 그 또한 추한 욕망의 제물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끔찍한 것은 마지막 한문장이었다. 최고의 반전!
<수정 계란>은 SF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우연히 획득하게 된 계란 모양의 수정을 들여다 보던 남자는 무엇을 보게 된 것일까. 그 안쪽의 모습에 사로잡혀 결국 사망하게 되는 한 남자. 남자의 삶은 불행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아이들은 의붓자식들이다. 그렇다 보니 가족과 행복한 삶을 누리지도 못했고, 그렇다 보니 더더욱 수정 계란 안쪽의 환상적인 풍경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계란이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게 된 순간 오싹함을 느낄 것이다.
<마술 가게>는 예전에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 어느 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역시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진짜 마술이 존재하는 마술 가게. 그곳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지만 어른과 아이가 느끼는 감각은 사뭇 다르다. 마술가게 주인의 마술 시범이 보여주는 환상의 시간. 그러나 그곳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은 아니다. 내 눈앞에 마술 가게의 문이 보이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발을 들여 놓으리라.
바벨의 도서관 2권 허버트 조지 웰스 편에는 총 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또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허버트 조지 웰스가 그려내는 환상소설 세계의 짜릿한 맛을 느껴볼 수 있으니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