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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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성과 달리 호러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책은 몇년전 앤솔로지 형식의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읽었던 작품은 <아웃사이더>라는 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 꼭 전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새로운 번역으로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이 책말고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다섯권으로 번역한 책이 있지만 번역 오류가 심하다는 말에 발만 동동 구르며 새 번역 재출간을 기다렸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사정상 이제서야 러브크래프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역시 그 오랜 기다림은 허무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번째 작품인 <데이곤>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한 남자가 마주치게 된 끔찍한 광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언덕과 그곳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는 구조된 후에도 그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환각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실 바다에서 표류하다 보면 수분 섭취나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져서 환각을 보거나 망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망상이나 환각이 그토록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남겨 지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면, 나의 자취를 쫓아 언제든 나를 낚아채 암흑속으로 밀어넣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니알라토텝>은 이집트에서 온 외계의 신으로 절대적 혼돈과 어둠의 중심을 의미하는 매우 음산한 존재이다. 잔혹하며 냉혹한 니알라토텝과 그가 거느리는 괴물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인간들. 그들은 죽어가면서 본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있기나 했을까.

<그 집에 있는 그림>은 비를 피해 낡고 오래된 집으로 들어간 한 남자가 그 집 주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끔찍한 공포에 관한 것이다. 오랜 시간 한가지에 몰두해 그것만 생각한다면, 사람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자신이 늘 보고 있는 그림이 현실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 주인의 뒤로 보이는 열린 문틈 사이에 있던 것은 과연....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공간인 미스캐토닉 계곡이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

<에리히 잔의 선율>은 주인공 '나'가 오제이유가라는 곳에서 하숙을 하던 당시 들었던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이야기로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그 소리에 관한 기억을 마음속에서 놓지 못하는 화자의 회고이다. 에리히 잔이 살고 있던 5층 창문 너머에 존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조각의 빛도 스며들지 못할 어둠, 그 뒤에 숨어 있던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에 관한 연작 소설이다. 대학 동기인 '나'와 허버트 웨스트가 17년전 아컴 소재의 미스캐토닉 대학에서 연구했던 것, 그리고 그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종될 때까지 허버트 웨스트가 집착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누덕누덕 기워 이름없는 괴물을 창조했다면, 허버트 웨스트는 시체를 되살리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뇌까지 죽어버린 시체가 살아난다 해도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란 기대는 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두 사람. 연구에 대한 집착은 끝내 파멸을 불러왔을지니.
이 작품이 섬뜩한 이유에는 죽은 자를 되살리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그치지 않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의 인간성이란 것도 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되살아난 존재가 완벽히 소멸되지 않고 사라진 경우이다. 때로는 그들 앞에 나타난 적도 있지만, 다른 괴물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만 되살려낸 크램패리 대령의 등장은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가져다 준다.

<벽속의 쥐>는 한 남자가 선조의 영지에서 뼈대만 남은 건물을 복원한 후 겪는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집의 지하에 숨겨져 있던 것. 그것은 고대의 광기 어린 신앙의 현장이었고,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가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준 공간이었다.

<크툴루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신화의 세계의 존재 크툴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깊고 깊은 숲 속에서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비밀 의식을 치루고 있다.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이계의 존재이다. 크툴루는 절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크툴루의 도시가 다시 세상으로 떠오를 날까지 비밀 의식을 진행하며 그의 부활을 기다릴테니까. 크툴루의 부활은, 그 때가 언제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겠지.

책 뒷쪽에 크툴루 일러스트가 실려 있는데,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 문득 영화 <딥 라이징>의 괴물이 떠올랐다. 나만 그런가?

<픽맨의 모델>은 픽맨이라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공포스러워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지만, 사실적 묘사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그려내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일까. 인간의 시야는 좁다. 자신이 본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인간은 어떤 공포와 직면하게 될까.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나오는 네크로노미콘은 압둘 할하즈레드라는 사람이 쓴 금서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러브크래프트의 창조물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다수 언급되는 책이라 사실성을 가미하기 위해 씌어졌는데, 이 작품으로 네크로노미콘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생길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 났다. 나같은 경우 일본 만화 <가방도서관>이란 작품에서 네크로노미콘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 책에도 러브크래프트의 이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더니치 호러>는 네크로노미콘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으로 더니치에 사는 윌버란 남자가 실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요그- 소토스라는 외계의 신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는 설정으로 씌어져 있다. 오랜 시간전부터 마법을 익혀온 휘틀리가의 비극이랄까. 휘틀러가 2층에 갇힌 존재는 광기와 난폭함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이다. 가축이 피가 몽땅 빨린 채 죽어가는 사건을 보면 츄파카브라라는 괴물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더욱 사악하고 거대한 암흑의 존재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윌버가 죽기전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변태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의 습격은 그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발자국만 남겨지는 걸 보는 걸 상상해보라. 차라리 눈에 보이는 괴물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인스머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는 공포물로 이방인인 '나'가 그곳에서 겪는 극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부 사람들과 고립된 삶을 사는 인스머스의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기형이라고만 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술주정뱅이 영감에게 들은 인스머스의 비밀은 사실이라고 믿기엔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날 밤 호텔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오는 존재들. 그는 그들을 피해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바다속에 사는 미지의 존재들과의 교배로 태어난 인스머스의 후예들. 그들은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진실은 더욱 깊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관한 깨달음이랄까. 자신의 혈통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죽음으로 밖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과 개구리의 모습을 반반씩 가진 디프원. 비릿한 냄새와 바다쪽에서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그들의 존재를 상상하면...

<현관 앞에 있는 것>은 문이 열렸을 때 그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가질 때 발생할 수 있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가?

마지막 작품인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는 로버트 블록에게 바쳐진 작품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은 로버트 블레이크이다. 마을에 버려져 있는 오래된 교회. 그곳은 이단의 교회였다.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그곳은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건드리기라도 하면 깊고 깊은 어둠 속에숨어 있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자연스럽게 무너질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폭풍우로 전력이 끊어진 밤, 그곳의 어둠에 숨어 있던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간은 예로부터 어둠을 두려워했다. 현대는 전기란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밤중이라도 두려울 정도로 캄캄한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불의 발명으로 어둠을 극복했다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은 어둠을 한층 더 짙게 만들고, 불이 없을 경우의 어둠을 한층 더 두렵게 만들었을 뿐.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크툴루 신화』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다. 사실 크툴루 신화란 것에 대해서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었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읽어 나가면서 왜 스티븐 킹이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스티븐 킹의 저작에서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를 들어 '문'이란 장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가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문'이란 것은 현실 공간의 문이란 뜻도 있지만, 현실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장치로서의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공포는 문을 열어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그 문을 열기 전까지 문 뒤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동안 극대화된다. 이는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고대의 신 니알라토텝, 크툴루 신화, 그레이트 올드원, 가상의 책이지만 그 진위 여부를 두고 뜨겁게 논쟁이 벌어지는 금서 네크로노미콘까지 그의 손끝에서 창조된 미지의 존재들은 여전히 그 몸을 문 뒤에 숨기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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