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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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시된 부분은 생존이란 것이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가 지나면서 사회는 계급 사회가 되어가고 신분제 사회의 상층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밥이라도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인 시대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그외의 욕구도 조금씩 상승했다. 그런 시대를 지나 현대 사회가 되면서 신분제는 없어지고 한때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가난이란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속사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왕족과 귀족으로 나뉘는 신분제 사회는 무너졌지만, 지금은 새로운 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해낸 신귀족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들의 부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한국이 자본주의란 것을 도입하고 몇십년간은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였지만, 199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 경제는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빈민층이 아니라 이제는 평범한 서민가정들마저 빈민층으로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재개발 아파트등의 부동산투기등의 여파로 인해 중산층마저 빈민층으로 추락해가고 있다.

『비즈니스』의 주인공 '나'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이다. 연애결혼을 했고 지금은 슬하에 중학생 아이를 하나 두고 있다. 남편은 10년간 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지금은 말라버린 고목처럼 살아간다. '나'는 아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들처럼 평범한 집안의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 출세길도 완전히 막혀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월급은 고작 100만원 남짓. 이 돈은 세식구 생활비로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비즈니스'라 생각하고 있다. 

'나'가 살고 있는 곳은 서해안에 인접한 도시. 그곳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시장은 스스로를 '비즈니스맨'이라 칭하며 신도시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당연히 구시가지는 외면되고, 신도시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해버렸다. 구시가지는 개발 뒷편에 밀려 잊혀진 곳이 되었다. 또한 해안도로때문에 갯벌은 망가져 횟집들은 모두 망해버렸고, 구시가지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신도시로 가서 파출부나 용역일꾼등이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비즈니스 상대로 만난 한 남자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는 해안가에서 횟집을 하던 사람으로 지금은 경매에 넘어간 횟집 건물에서 자폐아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가 구시가지에 와서 횟집을 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바닷길은 막히고 그의 생활줄도 막혀버린 것이다. 아내는 급사했고, 아들은 자폐증. 그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울 뿐이다. 

'나'에게는 주리란 친구가 있다. 그녀는 어린시절의 가난이 죽도록 싫어서 사랑도 비즈니스라 생각하며 살아온 여자이다. 그래서 결혼도 그렇게 했다. 현재는 돈도 풍족하고 젊은 애인도 두며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시댁에서의 그녀는 여전히 하류계급이다. 그런 것이 지긋지긋한 그녀는 젊은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하려 한다. 첫사랑일까. 사랑도 비즈니스라던 여자가 진짜 사랑을 하다 보니 신중하지 못했다. 결국 시집의 계략과 젊은 애인의 배신이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어쩌면 첫사랑의 배신이 가장 큰 상처가 되었으리라.

이에 비하면 '나'는 사랑해서 결혼한 케이스다. 그렇다고 주리보다 행복할까. 주리보다 가난하지만 주리보다 행복하지도 않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런 '나'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은 횟집을 하던 남자와 그의 아들 여름이었다. 오전에는 자신의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여름이네 집에 가서 지내는 두집 살림을 하던 '나'는 문득문득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생활은 이젠 결코 행복하달 수 없었고, 아들을 위해서는 몸을 팔아서 과외비를 마련해야했던 '나'는 여자로서의 행복도 엄마로서의 행복도 모조리 빼앗긴채 살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지속될리가 없다.

횟집 남자는 시장을 납치했다가 중태에 빠뜨리게 되고 그간 저질러 왔던 범죄도 들통난다. 이 남자의 범죄는 부유한 사람들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이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다고 보긴 힘들다. 그가 도둑질을 한 이유는 단지 자신의 집을 경매에서 낙찰받기 위함이었으니까. 시장을 납치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단지 시장의 사과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처지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회운동이나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모두에게 잊혀진 포구 마을, 신도시의 쓰레기 하치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 구도시는 사람들의 관심밖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횟집 남자가 바다에서 사라진 후 '나'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까지 잃게 된 후 결국 여름이와 함께 살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피붙이도 아닌 남인데다 자폐증까지 앓고 있는 아이를 언제까지 돌볼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런 미래의 일은 상상할수 조차 없는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미래가 어디 있고, 꿈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지금 …… 참 좋아." 라고. 지금이란 단어가 눈에 아프게 박히는 것은 '나'의 처지를 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될 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더 커져간다. 하지만 부는 항상 상위를 점하는 몇 퍼센트에 편중되게 된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점점 비대해져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본주의 시스템에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전같으면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가정도 이제는 점점 그 시스템 아래에서 짜부라져 간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이 투자의 원칙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토목건설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4대강 사업, 각종 댐 건설을 비롯해 미분양 아파트가 차고 넘치는데도 신규 아파트를 짓고 있고, 재개발 사업이랍시고 원주민들을 도시빈민으로 만들어 간다. 평범한 중산층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지만 언제 발판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지경에 몰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재개발 아파트니 뭐니 해서 은행빚을 얻어 부동산 투기 끝물 시장에 합세했다가 은행빚에 몰려 시름이 끊이지 않는 집도 너무나 많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원 몇개씩 다니는 것으로 시작해 중학생만 되면 입시학원과 과외를 받기 위해 밤늦도록 공부를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미래는 얼마나 보장되어 있을까. 대학만 가면 끝일줄 알았는데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해도 취업은 보장되지 않는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시절부터 유학을 떠나니 경쟁이 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엔 그냥 자본주의 사회일지는 몰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계급 사회가 형성되어 버린 나라다. 우리의 미래와 행복은 이미 자본에 저당잡혀 버렸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비즈니스적 삶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이상 발 붙일 곳도 숨쉴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우리에게 행복한 내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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