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초보자 미스터리 야! 6
가이도 다케루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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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의학 드라마란 것을 참 좋아했다. 지금도 물론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응급실에서의 피말리는 상황에 대한 의사들의 대처 모습이나 멋지고 잘생기고 능력은 좋지만 성격은 나쁜 남자 의사와 예쁘고 순진하고 순수하지만 눈물 많은 여의사들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들이 다수였다. 물론 그 중간에는 의사들의 암투를 그린 드라마도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는 숨가쁜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활약이었다. 즉 외과의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가 많았다. 하긴 드라마이다 보니 시각적인 면을 자극해야 하는데, 그럴러면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의사들의 이야기가 많아야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비슷비슷한 느낌의 의학드라마가 한동안 유행하더니 요새는 의사가 전문직으로서 높은 대접을 못받는지 요즘은 다른 전문직에 관한 드라마가 많은 듯 하다.
 
의학 소설로는 로빈 쿡의 소설을 미친듯이 탐독했던 때가 있다. 고교시절에 그랬는데, 그후로는 다른 책들을 읽다 보니 자연히 멀리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흐른 후, 가이도 다케루란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은『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과 이 책밖에 읽지 않았지만... 로빈 쿡과 가이도 다케루는 모두 의사 출신 작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의료행위에 대한 - 수술같은 것- 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났다. 정말 전문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어쨌거나『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으면서 의료계의 현실과 수술 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 그리고 심료내과의사가 바티스타 수술팀과 관련된 의료사고의 수수께끼를 밝혀가는 부분은 정말 짜릿할 정도로 흥분되었다. 그렇다면『의학의 초보자』는 어떨까.

소네카와 카오루는 14살의 중학생으로, 카오루의 부모님은 이혼했으며, 아버지는 게임이론의 권위자로서 미국에서 연구중이다. 카오루는 일본의 모든 중학생들이 응시한 잠재능력시험에서 1등을 하게 된다. 사실 카오루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카오루가 어떻게 1등을... 뭐 당연한 의문이다. 사실 그 시험의 출제자가 카오루의 아버지였기에 카오루는 미리 그 문제를 풀었고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게 된 것. 그렇다고 카오루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서 일부러 문제유출을 한 것은 아니다.

시험에 1등한 카오루는 단숨에 천재소년이란 별칭을 얻고 도조 대학 의학부에서 연구할 자격을 받게 된다. 의학이란 건 꿈도 꾸지 않았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소년이 의대에서 연구라니.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금세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기분이 급상승,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도조 대학 의학부로 나가게 된다.

공부라곤 하위권에 속하는 카오루는 의학부에 적응하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어찌어찌해서 차츰 그곳에서 적응을 해나가는 카오루지만, 의학부와 어른들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카오루를 도조 대학으로 데리고 온 후지타 교수는 명예욕이 대단한 사람으로 연구보다는 연구비 지원이나 의료계에서 이름을 날릴 일만 생각하는 인물로 비서를 보고 약국 아줌마라 하고 모모쿠라를 모구라(두더지)란 별명으로 부르는 것만 봐도 그 인간성이 드러난다. 이 사람의 추태는 날이 갈수로 심해지는데, 그 추태가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이다.  

카오루는 처음엔 심장이 벌렁벌렁 식은땀 줄줄의 상태였지만 후지타 교수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후지타 교수를 조금씩 닮아간다. 게다가 실험을 하다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되고 그 논문을 세계적 권위의 잡지에 싣네 마네 하는 일로 카오루 역시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열네살 카오루가 평범한 소년에서 천재소년이 되어 의학부에서 좌충우돌 활약상을 펼치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여기에 흥미를 더하는 것이 의학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의 어두운 뒷부분이다. 그 축은 물론 후지타 교수, 후지타 교수의 이야기를 보면 논문에 이름 올려주기, 잡지에 논문을 실어 자신의 이름 알리기, 의학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잇속 챙기기와 명예 획득하기에 주력하는 인물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라이벌 관계인 실험실은 깔보면서도 자신의 조교를 그쪽 조교와 비교해 무참히 깔아뭉개고 결국 실험에 있어서의 실패도 카오루와 그에게 떠넘긴다. 어른이라면서 책임감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오루가 실험한 논문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결국 그 일은 겉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여기에 덧붙여 후지타 교수는 모든 것을 카오루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카오루는 결국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카오루의 것은 아니니, 결국 카오루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반격에 나서기로 한다.

카오루가 아버지의 도움없이 어른들의 세계를 반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카오루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것에 전혀 껄끄러움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의 도움이 이 책에 있어서 가장 큰 재미를 준다. 먼 곳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아들을 응원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안에 있던 용기를 발산하는 카오루.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해도 결국 이 모든 것은 카오루의 용기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성장소설에 가깝게 느껴진다. 역사 만점, 영어 빵점에 만화책을 끌어안고 살던 평범한 소년이 의학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 이 일을 수락했지만, 진짜 의학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 미스터리적 요소는 카오루보다 먼저 도조대학 의학부에 오게 된 고교생 사사키에게 있었다. 작은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다.

카오루는 의학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의 어두운 면을 일찍 알아버리기도 했지만, 진정한 의학이 무엇인지, 진정한 어른의 태도란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잘 배운듯 하다. 평범한 소년에서 이제는 진심으로 의학을 연구하는 소년이 된 카오루.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길을 더욱 갈고 닦아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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