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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례식에 가보면 고인이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장례식의 분위기를 보면 그 집안이 어떤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평범한 집안의 경우 애도의 분위기가 넘쳐 나지만, 큰 유산으로 갈등을 겪는 집안의 경우 긴장감이 팽배하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규모의 유산은 한 집안의 비극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이누가미 일족』은 신슈의 나스란 곳에 터전을 잡고 있는 재벌가 이누가미 일족에서 벌어지는 음울하고 잔혹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헤 옹이 남긴 유언장은 피로 피를 씻는 갈등을 불러 올 요소로 가득했다. 사헤 옹은 젊은 시절의 은인 노노미야 다이니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다이니의 손녀딸인 다마요가 자신의 세 손자중 한사람을 선택해 결혼하면 모든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남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세명의 손자 중 누구라도 다마요와 결혼을 하지 못하면 유산은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과 아오누마 시누마란 사람이 세 손자보다 더 많은 유산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관계가 복잡해서 여기에서는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핵심만을 말하자면 다마요 〉아오누마 시누마 〉세 손자의 순서대로 유산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이 유언장 문제로 집안이 시끌벅적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돌아온 첫째 손자 스케키요가 진짜 스케키요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케키요의 모친인 마츠코는 자신의 아들이라 극구 주장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첩에서 태어난 자매이다 보니 다른 자매들은 첫째 마츠코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다마요란 인물에 자꾸만 시선이 가게 된다. 은인의 손녀란 이유만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아름다운 여성인 다마요. 그녀는 스케타케, 스케토모의 사건 현장에 그 직전까지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명민한 두뇌를 가진 그녀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스케키요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다른 사람을 조용히 선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마요가 혹시....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지만, 미리부터 의심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다마요의 알리바이는 확실한데다, 누군가 다마요를 노리고 있는 듯한 정황이 몇 번이나 포착된다. 단지 은인의 손녀란 이유만으로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는 것같아 보여도 이누가미 일족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마요는 눈엣가시이자 구명선이기도 한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의 분위기는 증오하면서도 밀어낼 수 없는 애매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후루다테 법률 사무소의 와카바야시 도요이치로는 이 유언장때문에 벌어질 참극을 두려워해 긴다이치 코스케를 나스로 불렀지만, 긴다이치 코스케와 만나기전 독살당하는 일을 시작으로 둘째 손자 스케타케는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고, 셋째 손자 스케토모는 교살당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첫째 손자 스케키요마저 괴상한 상태의 사체로 발견되는데... 도대체 범인은 무엇을 노리고 이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이누가미 일족』은 다른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다른 공간적 배경을 가진다. 다른 시리즈는 섬이나 산 속 같은 닫힌 공간이며, 등장하는 구가(舊家)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경원시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이누가미 가의 경우 사헤 옹이 만든 가문인지라 그 역사가 짧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있어 존경을 받는 가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누가미가를 두려워하게 되긴 하지만. 또 하나 다른 점은 다른 시리즈의 경우, 대부분 일족이 멸족하는 지경까지 이르지만 이 작품은 나름대로 해피엔드란 것이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이 선량한 존재이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참혹한 일가 참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달까.
하지만 결말을 제외하고는 그 분위기가 시종일관 무겁고 음울하다. 사헤 옹의 잘못된 처신과 판단은 각기 다른 첩에게서 태어난 세 딸인 마츠코, 다케코, 우메코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헤 옹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과 그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마저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게 만들었다. 다마요 역시 유언장 공개 이후 더욱 험난한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세 딸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텐데, 사랑은 커녕 미움만 받게 되었으니 그 분풀이를 아오누마 모자에게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그 방법이 너무나도 잔혹해 비극을 키우게 되었으니 동정만은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할 밖에. 그러나 그런 이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그 마음이 갈갈이 찢겼을 것이란 건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그 살해 수법이 가문의 세 가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마음에 두려움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역시 사요코이다. 사촌오빠인 스케토모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가졌으나 유언장 발표 이후 스케토모는 사요코를 버리고 다마요의 눈에 들기 위해 용을 쓰고, 다마요 겁탈 미수사건까지 일으키고 죽었으니.
이누가미 일가의 비극은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이 유언장이란 것을 통해 터져나왔을 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사랑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이누가미 일족을 읽으면서 해피엔드로 끝날지언정 개운한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이 사건의 뒤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너무도 잔혹하고 암울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