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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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제일 무섭다고 느꼈던 것은 밤의 어둠이었다. 지금이야 어딜가도 가로등이 환해서 구석진 곳이나 어두울 뿐 예전처럼 어둡지는 않지만, 어릴때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정말 캄캄했었다. 가로등도 없고 인가도 띄엄띄엄 있는 곳이었던지라 밤외출을 나가려면 - 화장실이 재래식으로 밖에 있었다 - 플래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방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면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가 떠오르고, 밑은 뻥 뚫려 있어 뭐가 튀어 나오지 않으면 내가 빠질까 두려웠다.

지금은 어둠 자체를 그다지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물론 혼자 밤길을 걸으면 무섭긴 하지만 그건 어둡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불쑥 나타날까 무서운 것이다. 그 누군가는 귀신도 요괴도 아닌 사람이다. 요즘처럼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또 있을까. 그래서 밤 늦게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 상황이 오면 반드시 혼자 탄다. 그게 낯선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보다 덜 무섭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렇다 치고, 그럼 에도 시대는 어땠을까. 그 시대는 지금처럼 과학도 발달하지 못한 때인데다가,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지라 그것을 거슬러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요괴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꿈속의 자살>은 오쿠로야라는 솜 도매상에서 일어난 괴이한 이야기이다. 젊은 주인 부부의 외아들이 정혼을 할 때에 이르러 오쿠로야의 하녀인 오하루가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주인 아들과 하녀가 당연히 맺어질리 없고, 결국 그 하녀는 다른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오쿠로야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긴지는 도련님의 심부름으로 오하루의 집에 가게 되는 긴지는 그곳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묘한 꿈을 꾸게 된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인지라 긴지는 그날 이후 오쿠로야를 그만두게 되는데, 그후 오쿠로야는 완전히 망하게 된다. 도련님과 어떤 여자가 동반자살을 하는 꿈을 꾼 긴지. 이 꿈은 미래의 일을 보여준 것일까.

주인집 도련님은 하녀를 농락해도 되지만, 하녀는 도련님에게 진심으로 반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도련님이 하녀에게 진심으로 반할리가 없으니까. 이는 당시 사회가 얼마나 철저한 신분사회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용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과 어린 시절부터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는 사람. 흥미로운 것은 이들은 이러한 신분제 사회에 대해 크게 반감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것에 길들여져서 그런건 아닌지.

<그림자 감옥>은 납 도매상 오카다야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에 대한 것으로 그곳 대행수였던 마쓰고로가 이소베라는 오캇피키에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천륜을 저버린 자식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마누라의 치맛폭에 휩싸여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다니. 오카다야에서 일어난 일들은 원념으로 죽어간 큰마닌 오타즈의 저주였을까, 아니면...

<이불방>은 똑같은 곳에서 고용살이를 하게된 자매의 이야기이다. 술집 가네코야에서 고용살이를 하던 오사토는 어느날 급사하게 된다. 그후 오사토의 동생 오유가 그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오유는 그곳에서 일을 하던 중 하녀의 우두머리 오미쓰의 부름을 받고 이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불방에서 자면서 꾼 꿈에는 언니 오사토가 나오는데...

한 집안에 걸린 저주와 그것에 씌인 사람, 그리고 죽어서도 동생을 지켜주려 했던 언니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단편.

<매화 비가 내리다>는 오엔과 미노키치라는 남매의 이야기이다. 남매 사이가 보통 그러하듯 미노키치는 누이 오엔이 못마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사에서 오엔이 대흉이 나온 점괘를 매화나무에 걸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을 보게 된 미노키치.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엔은 수건을 얼굴에 덮어쓰고 세상과담을 쌓고 살게 되는데...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를 보면 교고쿠도가 "남에게 저주를 걸면 자신의 몸에 구멍이 두 개 생긴다"라고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저주를 걸 능력이 있어 저주를 거는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잘못되도록 기원을 하는 것 자체가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오엔은 자신의 바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 것을 보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경우이다. 그래서 오엔은 세상과 담을 쌓고 스스로를 벌주면서 평생을 살아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해 악담을 퍼붓고 나면 오히려 자신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한 것에 대해. 나쁜 바람은 함부로 품지 않는게 좋다. 

<아다치가의 도깨비>는 도깨비가 등장하지만 마음이 푸근해지는 작품이었다. 앞에 수록된 작품들이 음울했다면 처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작품이었달까. 사람들의 나쁜 기운이 모이고 모여 형성된 모습인 도깨비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도깨비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달까. 이 작품은 뒤에 나오는 <가을비 도깨비>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가을비 도깨비>는 음험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어두운 작품이지만 도깨비란 소재를 끌어 온 것이라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도깨비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한 사람을 의미한다. 장대비에 비치는 모습은 사람의 모습일까, 도깨비의 모습일까. 

<여자의 머리>는 죽은 후에도 성불하지 못하고 원념으로 가득차 떠돌아 다니는 한 여자의 영혼이야기이다. 주인집 아들을 혼자 좋아했지만, 그 마음을 보답받지 못하고 원한을 가졌던 여자가 죽어서도 그 원념을 버리지 못해 다시 찾아온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얼마나 미련이 많은 존재이며,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인지. 

<재티>는 괴이쩍은 화로와 관련한 이야기이다. 겨울이라 그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하녀가 중고 화로를 사다 숯을 피웠는데, 그 이후 그 하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다 덜컥 죽어 버린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퍼뜩 떠오른건 오래된 물건이 요괴가 된 쓰쿠모가미였다. 이 화로가 쓰쿠모가미였는지 뭔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지만, 사실 중고 물품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때 그 화로가 그 근처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작품인 <바지락 무덤>은 가장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고 할까.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요네스케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바둑친구였던 마쓰베에에게 들은 기이한 이야기인데, 수십년을 주기로 똑같은 얼굴이지만 이름과 출신지는 다른 사람이 찾아 오면 모른 체하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혈육일수도 있겠지만 완벽히 똑같은 얼굴과 그때의 나이와 똑같은 사람이라. 이는 더 생각해 보지 않아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른 척만 하면 아무 탈없이 일을 하다 사라지고 또 수십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나 일자리를 구한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이 사는 법. 그것을 참견한다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모른 척 하는 것이 더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예지몽, 원귀, 도깨비, 저주. 어떻게 생각하면 수상쩍고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 보면 이는 모두 사람에게서 기인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 깃든 어둡고 사악한 기운이 만들어 낸 일. 우리가 상대를 볼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겉가죽뿐이다. 그 속에 무엇이 깃들어 있을지는 짐작키 힘들다. 설령 그게 도깨비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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