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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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을 받고 책 상태를 확인하며 이리뒤적 저리뒤적 하다가 sida A, side B라는 표현을 보고 문득 테이프와 LP판을 떠올렸다. 요즘 나오는 CD는 한쪽면 밖에 없지만, 테입이나 LP판은 A, B면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테이프는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LP판은 오래전에 단종되었다.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예전에 음악을 들을 때는 LP판으로 들었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스크래치에도 바늘이 튀는 일이 생겨 보물 다루듯 다뤘던 LP판. 게다가 큼지막한 쟈켓 사이즈는 얼마나 멋졌던지. 내가 모으던 건 헤비 메탈 그룹 쪽이었던지라 쟈켓 사진을 보면서 흐뭇해한 적도 많았다. 감히 CD나 테이프 사이즈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으니까. 그런 것이 참 그립다.

 
side A의 표지 인물은 푸른색 마스크에 검은색 옷,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왠지 차갑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뒷배경까지 그런 느낌이다. 문득 상상을 해본다. 차갑고 절제된 이야기일까, 하는. 그러나 첫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살짝 놀라게 되었다. 왠지 내가 이제껏 읽었던 작가의 작품 성향과 다른 느낌이었달까. 차분하다. 고요하다, 라는 느낌. 이 느낌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뒤로 넘어가면서 작가 특유의 이야기 느낌으로 점차 바뀌었다.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해달까. 어쨌거나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로 나누어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렇게 산다

우린 이렇게 산다, 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근처>와 <누런 강 배 한 척>은 중년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근처>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자의 이야기이고 <누런 강 배 한 척>은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둔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간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씁쓸한 자괴감과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굿바이 제플린>은 젊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빽도 없고 돈도 없지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산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다. 돈을 벌기도 힘들고 사랑을 지키기도 힘들다. 그래도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하는 이 남자, 이 남자는 딸기우유처럼 달콤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은 과거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타지 성향을 띄든, SF성향을 띄든 상관없다. 그저 옛날 이야기라 생각된 것을 이렇게 구분했다. 사실 구분하기 좀 애매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양을 만드신 그분께서 당신도 만드셨을까?>란 작품이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낯선 장소로 이동한 고와 도란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들은 작은 공간안에서 일정 시간만 되면 습격해오는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 와서 그곳에 모자란 것을 채워놓고 간다. 갇힌 공간안에서 생각마저 갇혀버린 두 사람은 꿈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돌아 보게 한다. 우리는 과거의 삶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그리고 현재 자신을 둘러싼 것의 구속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크로만, 운>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했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멸망과 창조로 이루어진게 아닐까, 하는. 그도 그럴 것이 세계의 불가사의한 유물을 볼 때, 저건 외계인이 만든 게 아니고 현대인들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혹은 정말 평행우주란 것이 있어서 그 우주들이 일시적으로 겹칠때 생겨난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간간히 하곤 한다. 증거는 없지만. 그리고 또다른 생각 하나. 거대한 세상속에는 자신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거대한 우주가 존재하고 그 속에 각 개인들의 작은 우주가 무수히 존재하는 것처럼.

<축구도 잘해요>는 마릴린 먼로가 자신의 전생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가장 작가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랄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앞의 설정에 따라 본다면 이건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SF물은 아니다. <깊>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안의 액체와 조직을 다른 물질로 바꿈으로써 그 압력에 견디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새롭게 창조된 또 하나의 자신일까, 아니면... 몸은 바뀌었어도 의식이 그대로라면 자기자신이 아닐까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들은 그게 과연 자기자신일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건 정말 누구일까. 나는 하나의 자아로만 이루어져 있는 존재일까, 수많은 자아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일까.  <굿 모닝 존 웨인>은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몇천년 후에 깨어난 사람들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거 참, 웃지 못할 이야기로군. 우리의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side B의 남자는 은색 마스크에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다. A면의 남자보다는 캐주얼한 차림이랄까. 왠지 차갑고도 뜨거운 걸 연상하게 되는 사진이다.

우린 이렇게 산다

첫번째 작품인 <낮잠>은 side A의 시작과 느낌이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중년이 아니라 노년의 남성이 주인공이다. 이 남자는 현재 양로원에서 생활한다. 아내는 몇년 전 죽었고, 자식들은 나이든 아버지를 모시려 하지 않는다. 이 남자는 이곳에서 첫사랑을 만난다. 그녀는 그러나 이미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 남자는 행복하기만 하다. 노년의 얼마남지 않은 생, 일장춘몽이 아니라 달디단 낮잠처럼 곱게 곱게 이어지길....  

<루디>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남자가 알래스카 여행 중에 어떤 남자의 공격을 받게 된다. 무차별 공격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목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시야는 너무도 좁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사룡(四龍)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龍+龍+龍+龍은 무림의 고수였던 네명의 사람들이 현대에까지 살아 남아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오랜 시간을 살아왔건만 인간 세상은 변함이 없구나.

<비치 보이스>는 군입대를 앞둔 네명의 청춘들 이야기이다. 그들의 엉뚱한 바다 여행이야기, 그 결말은?   

<별>은 제목은 참 예쁜데, 내용은 참 아프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삑) 적금 깨고, 카드 긁고, 회사돈까지 횡령해서 모시던 여자친구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감옥에 갔다가 지금은 대리 운전을 하는 남자, 그 남자가 그때 그 여자를 다시 만났다. 배신하면 잘 살기나 하지, 그래야 복수라도 해줄텐데, 아쉽게도 그녀는 이혼할 위기에 애까지 뺏길 위기란다. 그래서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갈 정도로 술을 퍼마셨겠지. 그런 그녀를 보는 그 남자의 심리 변화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

<아치>는 자살을 하기 위해 다리 아치에 오르는 사람을 구하는 순경의 이야기이다. 그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삶을 문득문득 돌아보는 순경은 조금씩 자괴감에 빠져 자신도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가진 것 없고, 가질 수 없는 건 더 많고.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슬(膝)은 선사시대를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또다른 빙하시대의 도래, 그러나 남자는 공동체와 함께 길을 나설 수 없다. 그의 아내는 열이 펄펄 끓고 새로 낳은 아이는 엄마의 젖이 없어 쫄쫄 굶는다. 어떻게든 먹이를 구해야지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그는 사냥을 나서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죽어가는 매머드. 하지만 매머드 역시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진 상태라 사냥은 불가능했고, 오히려 남자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굶어 죽어가는 가족을 보면서 자기 살이라도 뜯어 먹이고 싶은 남자의 마음. 그것이 슬(膝)이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들도 이렇지 않을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아스피린>은 갑자기 한국의 상공에 나타난 괴비행체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모두들 두려워하지만, 결국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의 정체가 뭣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러고 보면 아무리 큰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해도 결국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천부적인 적응력을 타고 났는지도.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중년의 자동차 영업맨의 이야기이다.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나고 지금은 실적도 제대로 못올리고 있다. 게다가 계약직. 이렇다 보니 집안 형편은 불보듯 뻔하다. 아들은 겨우 지방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비싸 전세금을 빼서 등록금을 마련한다. 돈 나올 구멍은 없고, 돈 빠지는 구멍은 점점 커지고. 결국 화성에 차를 팔러 가는 남자. 그곳에서라도 고수입을 올리시길. 근데 화성에 차를 팔러 갈 정도가 되면 미래의 이야기인 듯 한데, 미래에도 우리의 삶은 이런 거야? 암울하군.

그러고 보면...

작가의 책은 모던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이다. SF나 판타지의 겉모습을 취하고 있어도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그 대상은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 자신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열심히 갈구해도 그 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런 것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엽기적인 유머를 동반하고 있지만 그 속은 결핍감으로 가득하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가여운 존재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치않을 것 같다. 과거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궁핍함은 여전하며, 그것은 미래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핍은 돈이나 그런 것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메말라가는 감정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신적 결핍이 훨씬 크다. 물론 둘 다에 해당되는 게 지금의 삶이지만. 그래서 웃을 수 없다. 그렇다고 울 수도 없다. 우리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현재의 역할을 잘 연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LP판을 보면 속지가 한장 꼭 들어 있었다. 지금 나오는 CD는 책처럼 꾸며져 있지만, LP판의 경우 워낙 얇아서 속지 한 장으로 앨범을 설명했었다. 쟈켓만큼 큰 속지였던 기억이 난다. 이 더블 아트북은 LP판의 속지라기 보다는 CD의 미니북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더블은 LP판으로 탄생하지 못했으니,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겠지.

이 아트북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헌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각 작품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가 수록되어 있었다. 코멘트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책을 읽고 느낀 것과 작가의 의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질. 이거 어쩌면 좋지? 이제껏 내가 쓴 이 글을 처음부터 수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것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어쩌면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살아온 시간의 길이가 달라서 일수도 있고, 작가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세상을 보는 눈의 폭과 너비와 깊이가 나와 다르기 때문 일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실려 있는 18편의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역시 가장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왜냐하면 그외의 사람들은 내가 일방적으로 아는 사람이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는 그 단어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자식들은 부모님의 사랑의 발끝에도 못미친다고.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 등장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자식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끝내 하고야 말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나는... 못난 자식일 뿐이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겠지.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가끔은 반성을 하면서.

사진 출처 : 더블 set, 더블 1권 표지, 더블 2권 표지, 더블 아트북, 더블 아트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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