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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3초 - 뉴 루비코믹스 964
아니야 유이지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댔다. 한 손으로는 아무리 흔들어 봐야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를 내고 싶어 자기 빰을 때리면 그건 자학이다. 사랑도 그렇다. 혼자서 아무리 두근두근 해 봐야 그건 짝사랑일 뿐. 상대가 자신을 마주 보고 같이 두근거려야 사랑이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이 통했을 때 이루어 지는 것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 동갑내기인 치바나 마나부와 카지 히로토는 유치원때부터의 친구이다. 치바는 언제부터인가 히로토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히로토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치바의 성격은 왕소심한 편이라 히로토에게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백을 잘못 했다가 혹시 친구 사이마처 깨질까 두려워 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치바에겐 독특한 버릇이 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앞에 닥치면 눈을 감고 셋을 세면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 마음과는 다른 말을 내뱉는다는 것. 그것은 치바의 집안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치바의 아버지는 현재 여성인 미미로 살아간다. 요시미란 남자 이름을 버리고. 그래서 그런지 왠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없는 치바이지만 히로토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치바.
그런 치바에게 위기가 닥쳤다. 치바의 아빠(삑!) 엄마 미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이사를 간다는 것. 고교생인 치바에겐 선택권이 아무것도 없었다. 치바는 히로토에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만, 미미가 무심코 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히로토는 크게 화를 내게 된다.
눈 감지마! 그거 정말 싫어! 언제나 자기 내면만 보고 있으니까, 내가 안 보이는 거잖아! (59p)
치바에게는 대면하기 무서운 순간을 회피하기 위한 3초. 그리고 속마음과 다른 마음으로 눈을 뜨기 위한 3초였지만, 히로토에게 있어 그건 치바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3초였던 것이다. 치바가 눈을 감지 않았더라면, 좀더 일찍 히로토의 마음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후 4년. 히로토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 만약 히로토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자존심만 내세우지 않았다면 둘 사이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렇다. 히로토 역시 치바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는 치바의 입장과 히로토의 입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그저 아이처럼 보였던 히로토에게 그런 속내가 있었을 줄이야. 4년만에 받은 치바의 쪽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히로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렇게 아프게 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달까.
아니야 유이지라고 하면 하드보일드한 그런 작품만을 그릴 줄 알았다. 특히 <문신의 남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감성 풍부한 작품도 그려내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었달까. 물론 <문신의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순정이란 면에서 빠지진 않지만. 이 작품과는 확실히 달랐다. 십대 중반의 소년이 이십대 청년이 되면서 겪는 감정을 순수하게 펼쳐 놨다고 할까. 사실 작화면에서 보자면 결코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가슴 속에 깊히 박힌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미미와 미미가 결혼해서 함께 사는 남자 후지타니의 이야기가 특히 잔향이 많이 남았다고나 할까.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그들의 사랑 방식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각 작품마다 독특한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작가, 아니야 유이지.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느낌의 작품일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