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잘조잘 박물관에서 피어난 우리 옷 이야기 아이세움 열린꿈터 7
김영숙 지음, 지문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11월
품절


옷은 사람과 평생을 하는 존재이다. 태어날 때는 벌거벗고 태어나지만, 그후로는 하루라도 옷을 입지 않는 날이 없고, 죽어 땅에 묻힐 때도 옷을 입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경우 계절마다 입는 옷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복식의 변화가 뚜렷한 편이랄까. 기본에서 변형되긴 했지만, 그래도 시대마다 차이가 뚜렷한 편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의 복식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차례를 쭉 훑어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입게 되는 옷들과 행사나 계절에 따른 옷, 신분에 따른 옷 등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은 각각의 옷들이 직접 다른 옷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딱딱한 진행이 아니라 이야기식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혔다.

조선시대의 옷들이 전시된 박물관 전시실에 미라가 새로 들어왔다. 조선시대의 독특한 무덤형식인 회곽묘는 미라가 만들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라가 입은 옷도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당시의 복식이 어땠는지에 대해 잘 알려준다. 옷같은 것은 썩기 쉬운 편이라 보존이 잘 되지 않는지라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책이나 그림과 같은 것으로 추정하는데에 그쳤다면 이런 미라가 발견됨으로써 완전한 의복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평상복이 아니라 수의이긴 하지만.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입게 되는 옷, 그것은 바로 배냇저고리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옷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입히기 쉽고, 입었을 때도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요즘도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입히는 게 배냇저고리. 명칭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배냇저고리는 저고리라기 보다는 내복처럼 보이니 말이다. 이 파트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들의 배설물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하의는 남아, 여아 모두 치마 형식의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배만 가리는 배냇저고리도 있었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바람을 담아 배냇저고리에 실을 연결해 그걸로 옷을 여미게 만들었다. 실이란 것은 예로부터 장수를 기원할 때 쓰는 것이니. 또한 배냇저고리는 아이가 컸다고 버리는 게 아니었다. 양반집 자제들의 경우 자신이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품에 안고 과거를 보러가기도 했단다.

신생아 단계가 지나 처음으로 맞는 생일, 돌. 지금도 돌은 가족 및 친지, 친구들을 불러 놓고 성대하게 잔치를 연다. (100일의 경우, 집에서 간단히 가족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던 풍습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이니 무사히 첫생일을 맞이하는 것 만큼 기쁜 일은 없었으리라.

돌에 입는 옷는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해 보인다. 남자아이의 경우 풍차바지와 저고리, 두루마기, 돌띠, 호건을 썼고, 여자아이의 경우 치마, 저고리, 당의, 굴레를 썼으니. 그래도 아이들이 입는 옷이라 어른옷보다 간편하고 입고 벗길 수 있게 만든게 특징이랄까.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나도 내 돌사진을 꺼내놓고 비교해 봤다. 학이 수놓인 다홍색 치마에 녹색 색동저고리, 그리고 녹색 배자를 입고 있었다. (본인은 여자임) 아마도 학이 수놓인 것은 장수를 의미하겠지? 이렇듯 돌에 입는 옷은 아이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문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상에는 여러가지 물건이 놓이고 아이가 그중 하나를 골라잡게 하는 돌잡이 행사가 있는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상에 놓이는 물건들이 달랐다고 한다. 특히 여자아이 상에는 자나 실, 색지를 놓아 바느질 잘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옷은 기성복을 사입지만 당시에는 직접 옷을 만들어야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위 그림은 아동기의 남자아이가 입는 옷들이다. 요즘말로 도련님 패션이라고 하면 되려나? 오른쪽위에 있는 선복을 입은 그림이 제일 낯이 익다. 왼쪽 그림에 있는 아이가 쓴 복건은 호랑이 눈이 그려진 호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총명하고 용맹하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다홍색 치마에 색동저고리가 인상적이다. 색동저고리는 돌때까지는 남아여아 구분 없지만 그후로는 여아들이 주로 입는다. 왼쪽 맨 위에 있는 배자는 요즘 들어 다시 유행하는데, 저고리가 짧을 경우 그것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다. 물론 이 시기에는 방한용으로 입었지만.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드디어 혼례를 올린다. 남자의 경우 사모관대라고 해서 이날만큼은 조정의 관리들이 입는 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요즘은 폐백을 올릴 때나 아예 전통혼례를 올릴 때 이런 복식을 한 신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부의 경우 옷이 더 다채롭고 화려하다. 신랑의 감색 옷과 조화를 이루는 붉은색 옷이 신부의상의 특징이다. 족두리와 앞댕기, 연지곤지... 요즘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부가 겉에 입는 옷는 왕비의 옷인 활옷이나 공주의 옷인 원삼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결혼식때 보긴 많이 봤어도 잘 몰랐던 부분인데, 그런 것이었구나.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 남겨진 자들은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상복을 입게 된다. 위에 나온 상복은 상당히 간단해 보이는데, 우리집의 경우 남자는 머리에 쓰는 유건과 두루마기까지 갖춰입었다. 상을 당한 첫째날을 표시하기 위해 두루마기의 한쪽 팔은 벗고 있기도 했는데 이는 첫째날에 다른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함 이었다. 요즘은 이런 삼베로 만든 상복이 아니라 남자는 양복, 여자는 검은 한복을 입는 것을 주로 보게 되는데, 내 눈에는 여전히 그게 어색하다. 검은색은 서양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하니까.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왕족과 양반, 상민, 천민들이 입는 옷이 전부 달랐다. 또한 왕을 비롯한 왕족의 경우에도 그 등급에 따라 수의 모양이나 장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왼쪽 페이지의 영조는 붉은 색 곤룡포를, 고종은 황금색 어의를 입고 있다. 고종이 황금색 어의를 입고 있는 것은 이때가 대한제국시절 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이기에 황금색 복장을 갖춘 것이다.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은 앵삼을 입고 어사화를 꽂은 장원급제자의 모습이다. 관리들은 문관과 무관으로 나뉘었는데, 문관의 경우 학이 그려진 흉배가, 무관의 옷에는 범이 그려진 흉배가 있었다. 딱히 난 문관이요, 무관이요, 라고 하지 않아도 그런 것으로 구별되게 만들었으니 영리한 선택이라고나 할까.

양반가의 경우, 남자는 도포, 창의, 두루마기를 입고 외출했다. 나같은 경우 도포와 두루마기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창의는 처음 들어 봤다. 게다가 도포와 두루마기의 차이점도 이번에 알게 되었달까. 도포는 소매폭이 넓고, 두루마기는 소매폭이 좁다.

양반가 여성의 경우, 화려한 색감의 비단 치마을 입었는데 길이도 길고 폭도 넓어 풍성했다. 그런 반면 상민들은 몽당치마라고 해서 발목이 보일 정도의 길이, 천민은 두루치기라고 해서 무릎이 보일 정도의 길이의 치마를 입었다. 그러하다 보니 옷만 봐도 양반인지, 상민인지, 천민인지 구별이 가게 되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신분제가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계절에 따른 옷 순서이다. 여름옷은 주로 삼베나 모시로 만들어졌다. 삼베는 그나마 흔한 직물이었지만 모시의 경우 실을 잣기가 힘들어 고급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조상님들은 지혜를 발휘하여 등나무로 토시나 등거리를 만들어 옷안에 착용했다. 바람길을 만든 것이다. 또한 잘 때는 죽부인을 안고 자기도 했다. 대나무의 성질이 찬 것이니 그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은 얼마나 시원했을꼬.

겨울옷은 무명(면)으로 만들어졌다.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덕분에 민초들의 겨울이 덜 추워지게 된 것이다. 저고리를 겹으로 만들고 그 속에 솜을 두고 누빈 누비옷은 보기에도 포근해 보인다. 또한 부분적인 방한 용도로 쓰인 토시와 조바위, 남바위는 손과 머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설피의 경우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느니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았는데, 멱신은 처음 보는 것이라 무척 신기했다. 짚신만 신는 줄 알았더니 짚으로 부츠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랄까.

지금과 달리 옛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옷을 직접 해입었다. 그렇다보니 먼저 옷을 지을 실이 필요하다. 당시 주로 쓰이던 무명, 삼베, 모시, 비단을 만드는 방법이 총 4페이지에 걸쳐 나와있다. 무명이나 삼베의 경우 주로 상민들 이하가 옷을 해입던 재료이고, 모시나 비단은 양반 계급 이상이 옷을 해입던 소재이다. 비단이나 모시의 경우 실을 만들어 옷감으로 만들기 까다로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양반들이 주로 옷을 해입게 된 옷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방은 삼베로 유명하다. 특히 수의를 짓는 삼베같은 경우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베를 꼬아 실로 만들고 그것을 베틀에 넣고 옷감을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의 옷은 지금과 같이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옛사람들은 옷을 세탁할 때도 조심스레 했다. 특히 상민층의 경우 여벌옷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 난 이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이 옷을 세탁할 때는 옷을 다 뜯어서 세탁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옷감이 최대한 덜 상하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줄기도 많이 줄었을지도 모르고. 나같은 경우 대부분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휙돌리곤 하는데, 이런 걸 보니 정말 옷을 아낄줄 모르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책 뒤에 나오는 겨레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우리옷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복식 변천사이다. 한 페이지씩 정도 할애된 것이라 자세하지는 않아도 대략적인 복식변천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옷이란 것은 역사책에서 보여주지 않는 다른 부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쳐온 우리옷들. 이 옷들은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보물과 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비록 그 자취를 감춘채 박물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옷이라 해도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출처 : 책표지, 책 본문 中 (6~7p, 18~19p, 26~27p, 30+31+36p, 40~41p, 42~43p, 52~53p, 54~55p, 59p, 74~75p, 80+81p, 90+92p, 96~97p, 108~109p, 120~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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