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생물학
한혜연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한혜연님 작품, 진짜 오랜만에 읽는다. 애총을 읽었더라면 이렇게 긴 텀이 생기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것은 ILLUSION과 M. 노엘이 마지막이였으니... 거의 10년만인가? 10년도 더 된 듯 하다. 그래도 다시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되서 너무 반가워요, 작가님!

첫번째 작품인 한성유전(限性遺傳)은 설날 벌어진 한 일가의 남자들 사망 사건과 관련한 내용이다. 왜 이 집안 남자들만 죽게 된 것일까.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대부분의 명절 풍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은 죽자고 일하고. 그러나 이 집안에서 특이한 점은 제사 음식은 여자들이 만들게 하면서도 간도 못보게 한 것이었다. 음복(飮福)은 남자만 하게 되니 제사 음식에만 들어있던 독이 남자들만을 죽게 만든 것이었다. 한 집안의 어둡고 음침한 비밀, 그 속엔 무엇이 감춰져 있었던 걸까. 이 작품을 보면서 작품의 제목이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덧붙여진 말레이시아 나무뒤쥐 원숭이의 이야기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계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육지동물은 바다에 살던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 진화해왔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의 먼 조상은 바닷속에 살던 생명들일지도 모르겠다. 더 큰 범위로 보자면 물 속에 살았던 생물. 인간 역시 태아 상태일때는 엄마 자궁속 양수안에서 떠다니지 않았던가. 이 작품의 마지막에 소개된 헤켈의 주장을 떠나 생각해 봐도 우리 인간은 수많은 생명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산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먹이연쇄>는 꽤나 충격을 받게 된 작품이었다. 먹이 사슬의 상위에 위치한 인간들은 다양한 것들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식물이나 대형 어류의 중금속 중독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죽임을 당하는 가축들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이 작품 내용과 그 스트레스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는 순간 머리가 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동기감응>은 여기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우리나라의 낙태 건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혼전 임신이나, 남아선호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고 버려진 아이들. 여성들은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입게 되는데, 남자들은 어떨지.

<오페론의 유전자>는 동반자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군가 선동이 된 사람과 그에 말려든 사람들. 도대체 왜 그녀는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완전변태>는 읽으면서 문득 전에 봤던 자연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숙주의 몸안에서 부화할 수 밖에없는 기생충에 의해 뇌가 지배당한 생물이 기생충의 숙주가 될 동물에게 잡혀 먹기 위해 나무위로 올라가던가. 하여간 그런 느낌의 작품.

마지막 작품인 <Butterflies>는 생물들의 서로에 대한 모방을 소재로 해서 쌍둥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치 독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도마뱀이나 개구리, 그리고 나비. 이런 예는 자연계에서는 수도 없이 많다. 다른 종이나 같은 종을 모방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동물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노력이지만, 사람은 도대체 어떤 목적때문에 타인을 모방하는 것일까.

『기묘한 생물학』은 총 7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이다. 작가의 전공인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작가만의 독특한 발상과 결합해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졌다. 생물학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동물들과 관련된 작품인줄 알았는데, 어라라? 인간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하긴 인간도 생물이니... 작가는 각 작품들의 제목이 된 생물학적 법칙을 인간 세상에 응용해서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진짜 저렇게 될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왠지 지어낸 이야기같지가 않단 말이지. 이 한 권으로 끝내기엔 너무나도 아쉽다. 속편이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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