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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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바'라는 이름은 내게 낯설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지만 아직 내공이 한참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작가의 이력을 읽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작가 아서 코넌 도일 경과 평생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란 것과 셜록 홈즈의 죽음을 두고 논쟁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뭐랄까,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 노다지를 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은 프랑스 고위 공무원이었던 외젠 발몽이 프랑스 총경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로 시작해 영국에서 탐정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번째 단편인 <500개의 다이아몬드에 얽힌 수수께끼> 편이 바로 외젠 발몽이 프랑스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외젠 발몽은 프랑스 경찰의 무능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미리 밝히지만 유감은 없다'란 표현을 몇 번이나 쓰는 것으로 보아 심히 그 일에 대해 심히 유감이란 것은 둘러둘러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푸흡하고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외젠 발몽의 쓰라린 회고인데도. 덧붙여 말하자면, 이 작품의 결말에서도 크게 웃을 수 밖에 없다. 진범에겐 안된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후 영국으로 건너온 발몽은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에 대한 배척 - 언어적, 문화적 - 도 감수해야 했고, 영국 공직자들의 괄시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고, 또한 의뢰가 매일매일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상당 기간 가난한 생활을 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래도 자신의 집에 안전감옥을 만드는 걸 보니, 상당히 수상한 - 우리가 생각하는 탐정의 이미지와는 다른 - 냄새를 풀풀 풍겼다고나 할까. 발몽은 <두 얼굴의 폭탄 테러범>에서 영국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에 껴들어 그들의 폭파 계획을 방해하기도 하고, <은숟가락에 담긴 단서>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 중에 감쪽같이 사라진 어음을 훔친 범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 작품이 무척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은숟가락과 관련한 일화가 이 사건의 커다란 단서가 된다는 점이었다. 오호라, 그런 뒷이야기가 따로 있었구려. <치젤리그 경의 사라진 재산>은 고집스럽고 남을 믿지 않은 완고한 귀족이 사망하면서 남긴 유서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 집의 어디에 유산이 숨겨져 있던 것일까. 정말이지 이건 치젤리그경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유산 은닉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앨러리 퀸과 전문가 열한 명이 선정한 최고의 미스터리 열두편 중 하나로 선정된 <건망증 클럽>은 정말 이지 여기에 실린 작품중 감히 최고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듯 하다. 이 사건은 외젠 발몽의 실패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실패의 원인은... 멍청한 영국 경찰때문이었다나 뭐래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외젠 발몽은 프랑스와 영국의 사법 시스템이 다른 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특히 영국은 벌써 미란다 원칙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미란다 원칙은 1966년에 선언되었다) 게다가 피의자가 집에 없을때 가택 수색을 하는 것도 불법인지라 수사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 듯 하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프랑스 경찰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사건 수사에 있어서 만큼은 융통성이 더 많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권력의 횡포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미묘한 지점이 자주 비교되었다. 여하튼, 그런 문제 때문에 결국 외젠 발몽은 눈 앞에서 증거가 사라지고 범인을 그냥 풀어줘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실패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정말 멋진 이유는 범인과 탐정의 밀고 당기기가 압권이기 때문이다.

왠지 고딕 미스터리 냄새가 풀풀 풍기는 <기형 발 유령>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사랑으로 빚어진 비극,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10년후 다시 그 저택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내용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귀족이란 계급은 없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계급의식은 남아 있어 지금의 이야기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는 미스터리이다. 고저택을 걸어다니는 유령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공포와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혼합한 작품.

<와이오밍 에드의 석방>은 당시 수사 기관의 허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당시에도 역시 수감자 가족을 말로 구슬려 사기를 치고 돈을 뜯어낸 수법이 있었음을 보여준달까. 지금이라면 가장 기초적인 지문대조로 누가 누군지를 가리겠지만, 그때는 지문 대조 기술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헛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가 사기 치기가 더 쉬웠을 수도 있겠다.

<레이디 알리시아의 에메랄드>는 외젠 발몽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남자들은 미인에게 약하다고 하더니, 외젠 발몽씨 당신도 그랬구려. 처음에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야만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의뢰에 그 의뢰를 거절할까 하지만, 의뢰인이 아름다운 여성이란 것을 알고 덥썩 그 의뢰를 수락하는 외젠 발몽. 그가 알리시아 아가씨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문장들에 웃음이 쿡쿡하고 터져나왔다. 또한 이 사건 자체도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결말을 보면서 외젠 발몽이 좀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앞날에 축복있으리~~

셜록 홈즈 패러디물인 <셜로 콤즈의 모험>과 <두 번째 돈주머니의 여행> 편은 세계 최초의 셜록 홈즈 패러디물이라고 한다.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넌 도일경과 친분이 두터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셜로 콤즈의 모험>은 사건 수사를 멋지게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야드에 완전히 깔아 뭉개지는 안타까운 홈즈의 이야기였고, 두번째 패러디물인 <두 번째 돈주머니의 여행>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등장해서 설전을 벌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즉, 아서 코넌 도일 경과 홈즈가 함께 등장한다. 아, 가련한 홈즈여. 더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서 그만.

프랑스인으로서 영국에서 탐정으로 성공하는 외젠 발몽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삑) 웃음 없이는 읽을 수 없다. 그정도로 유쾌·상쾌·통쾌하달까. 프랑스 고위 공무원 자리에서 쫓겨나 혈혈단신으로 영국으로 건너와 탐정으로 성공하기까지 힘겨운 일도 많았고, 프랑스와 영국의 차이때문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추리 능력과 사건 수사 능력때문이지 않을까.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탐정 위풍당당 외젠 발몽의 재기발랄 탐정성공담인『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두 홈즈 - 하나는 사람 홈즈, 하나는 고양이 홈즈 - 사이에 외젠 발몽이 위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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