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내 동생 우리또래 창작동화 61
강민숙 지음, 박지영 그림 / 삼성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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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 몇달 간 입양아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하나는 국내 입양아의 이야기로서 공개 입양된 아이의 입장에서 씌어진 소설이고, 하나는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국내 입양아의 이야기보다는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가 더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내 입양률을 매우 낮아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지금은 국내 입양도 많이 늘고, 입양아에 대한 편견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알게 모르게 그들은 불평등한 처사를 당한다.

그러고 보니 대학 시절 후배가 입양아였었다. 당시만 해도 입양이란 것은 사람들의 입에 쉬이 오르지 않던 화제였고, 당연히 처음엔 그 후배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나 역시 사회적인 편견 - 입양아는 음침한 성격에 사고뭉치라는 편견 - 에 사로 잡혀 그 명랑하고 활달한 후배가 감히 입양아였다는 걸 짐작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 명랑하고 활달한 표정의 이면에는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스스로가 양자로서 느끼는 자격지심이랄까. 그때만 해도 입양아에 대해 고운 시선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으니 스스로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 후배에대해서 난 어떻게 대했을까. 딱히 다른 시선으로 본 적은 없는 듯 하다. 양자란 표현에 그렇게 충격을 받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후에도 사이좋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후배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결혼을 해서 애 아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시기에 내게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에 비해 심하게 짧았다. 그래도 얼마나 명랑한 친구였던지, 그 주변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 찾아가면 친구네 엄마가 무척이나 날 반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후 그 친구는 다리 길이를 조절하는 수술때문에 1년 가량을 쉬었고 나와는 다른 학년이 되었다. 그때에도 그 친구는 늘 웃는 얼굴로 친구를 사귀었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너무 오래전에 헤어져 이젠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친구,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또 다른 내 동생』이 입양아와 장애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은총이는 제일 먼저 입양된 아이로 초등학생이다. 명랑하고 활발한 은총이는 두번째로 입양된 동생 은별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때로는 은별이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이 겪는다. 은별이는 선천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아이다. 그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말도 못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은총이를 속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은총이도 아직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이 많이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은별이가 늘 엄마를 독차지하는 것때문에 때때로 은총이가 속상해지는 것이다.

은총이는 맏언니답게 은별이를 아주 잘 챙긴다. 아빠가 목사로 계시는 교회의 아이들이 놀러 올 때는 몇 가지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한다. 그 약속은 '은별이를 싫어하면 안되고, 은별이를 피해서도 안되며, 은별이를 빼놓고 놀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은총이는 이렇게 늘 은별이를 챙긴다. 하지만 은총이네 집에 늘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은별이 유치원 문제는 엄마를 너무 속상하게 만들었다. 왠만한 유치원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받아주지도 않았고, 혹 받아준 유치원에서는 엄마들이 항의를 했다.

그거야, 장애가 조금 있는 애를 말하는 거지요. 이렇게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애를 우리가 어떻게 돌보겠어요? (60p)

아니 선생님, 어떻게 장애아를 우리 애들 반에 넣을 수가 있어요? (67p)

그애가 우리 애들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예요. (68p)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장애아와 어떻게 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어요? (68p)

유치원 선생님이나 엄마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은별이가 전염병을 가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냉대하고 차별하는 건 옳지 않다. 사실 이 사람들도 머리로는 차별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따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머리로는 분명히 장애아나 입양아에 대한 차별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하거나, 아예 저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선을 그어 놓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은별이는 아주 딱 맞는 유치원에 다니게 되지만, 그전까지는 이런 현실에 은별이 가족 모두가 절망하고 분노했을 거란 생각에 무척 가슴이 아프다. 또한 은총이를 불러내는 상급학년 언니들이나, 고아원에서 왔냐고 묻는 친구의 오빠 등은 입양아에 대한 호기심이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들의 호기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잔혹하다. 하지만 아이들만 그런 걸까. 아이들은 어려서 그렇다 쳐도 어른들은 안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은총이네는 막내 은서도 입양을 한다. 은서는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케이스로 경기를 자주 해서 파양되었다. 입양 - 파양 - 재입양의 과정을 거친 은서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매일매일 말썽을 부린다. 게다가 은별이가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시하고 괴롭히기까지 한다. 이렇게 바람잘 날 없는 은총이네 집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지만, 사랑은 피보다 더 뜨겁다.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은 피로 연결되어 서로를 냉대하는 집보다 백배, 천배는 따스해 보인다. 모든 입양아, 장애아 가정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양아도 장애아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얼른 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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