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파 4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시끌벅적한 축제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먼훗날 저녁뜸의 시대라 불릴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 해안선이 육지쪽으로 점점 밀려 올라오면서 사라지는 마을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모래로 가득했던 해변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길도 점점 황폐화되어 막다른 길이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예전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는 가운데, 사람들은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지금의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아주 먼 미래일수도 아주 가까운 미래일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위는 더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안드로이드 알파. 알파는 서쪽 언덕위에 있는 카페에서 지금은 여행을 떠난 카페의 오너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알파의 하루하루는 늘 똑같아 보여도 늘 새로운 일이 생기는 듯 하다. 때로는 오너가 선물로 전해준 카메라를 들고 나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따스한 날엔 풀밭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날엔 축 쳐져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 오는 저녁에는 해변이 보이는 곳에 앉아 물에 잠긴 옛도시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안드로이드인 알파. 알파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키에게 건네는 알파의 말에 묘하게 슬퍼졌다.

난 마키가 부러워. 마키와 타카히로는 같은 시대를 타고 있잖아. 나도 지금은 함께 있지만, 앞으로도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마키는 타카히로와 시간도 몸도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거야. 난 모두의 배를 해안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건지도 몰라. 마키와 타카히로는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어. 그것이 부러워. (108~109p)

타카히로도 마키도 언젠가는 알파보다 나이를 더 먹게 될 것이다. 그때도 알파는 여전히 그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주유소 할아버지나 선생님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알파에게 있어 사람들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키를 보며 부럽다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알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알파가 안쓰럽다. 그래도 알파에겐 코코네가 있으니까, 알파씨 힘내세요!

타카히로는 이제 제법 큰 티가 난다. 그래서일까. 미사고는 더이상 타카히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타카히로보다 어린 마키 앞에 두번이나 나타났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아야세도, 예전의 어린티를 벗은 타카히로 앞에도 더이상 미사고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마키 역시 마찬가지로, 나중에 마키보다 더 어린애가 미사고의 눈에 띈다면 마키도 더이상 미사고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고만 있으니까. 아주 소중한 것은 그만큼 오래 볼 수 없고,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짧으니까. 하지만 알파의 말대로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타카히로, 힘내렴.

꼬치고기를 데리고 다니는 아야세는 또다른 모험길에 나섰다. 아야세의 꼬치고기는 도대체 무슨 종류일까. 고기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물밖에 오래 나와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걸 봐선 보통의 물고기와는 다른듯 하다. 또한 꼬치고기가 날고 있는 모습은 하늘 높이 날아가는 비행선의 그림자와 똑닮아 있다. 하긴 뭐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시간을 흘러 흘러 영원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니까.

무사시노에서 택배일을 하는 코코네는 어린이 도서관에 들렀다가 낡은 레코드를 발견한다. 그곳에 담겨 있는 건 음악이라고 하는데... 코코네는 언제쯤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나.

카페 알파를 보면 느긋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안드로이드도 물론, 느긋하게 살아간다. 종종거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달까. 어쩌면 종종거려 봤자 지금의 변화를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긋하게 산다고 해서 지금 이순간을 허투루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느긋하게, 그리고 속속들이 그 시간을 음미하면서 산달까. 그래서 그런지 카페 알파를 읽을 때면 나도 느긋한 마음이 되어 책장을 천천히 넘기게 된다. 카페 알파의 맛은 바로 그런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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