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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악몽 - 유럽 판타지 단편선
알퐁스 도데 외 지음, 고봉만 옮겨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는 제목을 보니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이 먼저 생각난다. 할로윈 마을에 사는 잭이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들어가 그해의 크리스마스를 악몽처럼 바꿔놓는다는 이야기. 난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잭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비쩍 마른 해골이 뭐가 좋아, 취향하고는...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잭의 매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해 두고 싶다. 나의 친한 친구 역시 잭을 격하게 아껴서 차량 내부 인테리어를 잭으로 도배를 했다.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고, 친구와 나의 취향은 똑떨어질 정도로 비슷하다.
각설하고, 이번에 내가 고른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이 책은 유럽 고전 판타지를 한 권으로 묶은 책으로 우리가 잘 아는 작가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엮여 있다. 그러나 아름답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악몽같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풀어낸다. 크리스마스 선물중에 스프링이 달린 인형이 툭 튀어 나오면서 '이건 몰랐지?'라고 사람을 놀래는 기분이랄까. 고전인지라 요즘 사람들 시각으로 보면 별로 안무섭구만,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들이 씌어지던 시대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잠시 넣어두어도 좋을 듯 싶다.
우리에게 <별>,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알퐁스 도데의 <음식을 탐하다>는 크리스마스 미사와 관련한 이야기이다. 작은 악마가 신부님의 시종으로 변신해 식탐을 부추긴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무섭다기 보다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악마가 성당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부터가 좀 이상한 설정이기는 하나, 크리스마스인데, 그정도는 허락될지도. 음식을 먹고 싶어서 빛의 속도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을 보면서 웃음이 큭큭하고 터졌다. 또한 나중에 신부님이 하느님으로부터 크리스마스 미사를 엉망으로 만든 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 또한 유쾌하다. 그후 신부님은 반성을 했을까? 어쩌면 지금도 빛의 속도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을지도.
조지프 세리던 르 파누란 이름은 낯설지만, 작가 이력을 보고 아하~라는 감탄사가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는 바로 소녀 뱀파이어 이야기인 <카밀라>를 쓴 작가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동성애 논란에 휩싸였던 카밀라는 아름답고 고혹적인, 그렇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였다. 흡혈귀 카밀라와 소녀의 이야기라서 아마도 이런 논란에 시달렸는지도. (문득 생각하건대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이성의 목을 물지 않나?)
그의 작품 <악마를 만나다>는 종지기의 기이한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날 밤 종지기가 종탑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상황으로 보건대 그는 떨어진 종에 맞아 죽은 듯 하다. 기이한 죽음에 사람들에겐 두려움이 퍼져나간다. 게다가 그날 밤 수상한 인물이 종지기의 시신이 안치된 헛간으로 찾아온다. 그의 정체는 바로... 악마였다. 종지기는 그동안 사람들의 물건을 훔쳐왔었고, 어쩌면 악마와 거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악마는 거래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을 회수하러 온다는 걸 떠올려 본다면, 그날 악마가 온 것은 거래가 종료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목걸이>, <여자의 일생>등으로 유명한 작가 기 드 모파상. 그가 써낸 <악령에 들리다>는 아주 짧은 길이의 소설이다. 크리스마스 날 길에 떨어진 달걀을 삶아 먹은 한 여인에게 악령이 들린다는 이야기인데, 이 단편 소설이 섬뜩한 이유는 첫째로 그녀가 먹은 신선한 달걀이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달걀을 먹는데 그 달걀이 -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발견된 - 문제가 되었다는 건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단편은 영화 엑소시스트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영화처럼 임팩트가 강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한장면의 떠오르면서 등허리로 뭔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기분이 든달까. 역시 기분 나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모험 소설로 잘 알려진 <보물섬>의 작가이다. 그가 쓴 <사람을 죽이다>는 사람 마음 속의 선과 악의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선과 악은 동떨어진 존재도 아니요, 극과 극의 존재도 아니다. 항상 양립하면서 저울의 균헝을 맞추고 있달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간 한 남자가 상인을 죽인 후 만나게 되는 남자와의 대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품이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읽지 않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을 듯 하다. 그보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 하나라도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맞을까. 오래만에 읽어본 <성냥팔이 소녀>는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린 시절엔 그저 성냥팔이 소녀가 불쌍하다는 생각만을 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소녀의 아버지에게 분노가 느껴진달까. 어린 딸을 추위속으로 몰아 넣는 것도 모자라,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때리기까지 하는 소녀의 아버지의 모습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은 나쁜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집 속에 수록된 작가중 유일하게 내가 모르는 작가가 바로 카미유 르모니에이다. 벨기에 작가인 그의 <그들만의 크리스마스>는 얼핏 읽어도 성냥팔이 소녀의 색다른 버전처럼 느껴진다. 가난때문에 마을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소년. 가난한 소년에게는 크리스마스의 떠들썩하고 행복한 분위기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부잣집 소녀가 적선하듯 건넨 돈으로 작고 말라비틀어진 빵을 사먹은 것이 마지막 만찬이 된 소년. 크리스마스가 누구에게나 행복한 날은 아니다.
마지막 작품인 <크리스마스 트리>는 <올리버 트위스트>와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유명한 작가인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다. 이 단편은 한 남자가 근사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내고 난 후 집에 들어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떠올리는 생각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이 남자의 생각이 정말 꼬리에 꼬리름 물고 진행된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에서부터 다른 작가들의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까지,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시작한 생각이 어디까지 이르게 될지 뒤를 궁금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년에 한 번 뿐인 크리스마스에 대한 아쉬움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총 7편의 작품을 쓴 작가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가들이다. 그들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난 가끔 고전 문학 작가들이 공포 문학이나 판타지 문학을 써낸 것을 보며 놀라곤 한다. 요즘은 한 장르를 정해놓고 쓰는 작가가 많은데 비해 옛날 작가들은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썼다고나 할까. 또한 문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철학자나 사상가, 혹은 과학자로서 활동한 작가들도 많았다. 정말 재능이 넘치는구나, 하는 감탄이 나온달까.
크리스마스란 단어로 연상되는 것은 아름다운 트리, 흥겨운 캐럴, 반짝반짝 예쁜 포장지로 싸인 선물꾸러미들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날이기만 할까.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너무나 단정적으로 크리스마스를 행복이란 단어와 연관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에 벌어질 수도 있는 다른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도 않은채.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행복이 금세 날아가 버릴까 싶어서. 그러나 분명 크리스마스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불행한 날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떠올리려고 하지 않을 뿐. 그래도 난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만 보내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