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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립된 장소에 갇혀서 지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장소에 갇혀 지내긴 하지만 일과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고, 산책이나 운동도 가능하며, 사회에 돌아갔을 때를 위한 직업 훈련을 하는 등 갇혀 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공간이 허락되는 셈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죄값을 치르면 사회란 곳으로 복귀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년과 엄마는 가로 세로 11피트 남짓한 공간에 갇혀 살고 있다. 센티미터로 따지면 330X330정도. 정말 작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곳에는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으니 일반 생활 공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 이 모자는 왜 이곳에 갇혀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가두어 두었을까.
이번에 5살 생일을 맞이한 잭은 엄마와 함께 작은 방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나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잭은 그곳이 유일한 세상이며, 나머지 세상은 텔레비전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공간에서 모자는 게임이나 운동을 하고, 잭은 티비와 책을 보면서 바깥 세상의 말을 익힌다. 밤이 되면 올드 잭이란 남자가 찾아 오고, 그는 일요일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주고 있다. 그는 모자를 돌보는 사람처럼 보여도, 실상은 잭의 엄마를 납치하고 감금한 후 상습적인 강간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잭이다.
잭의 엄마는 잭의 다섯살 생일이 지난 얼마후, 탈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잭을 내보내 사람들을 불러 온다는 계획. 잭은 작은 방을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왜 자신들이 방을 나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간곡한 설득과 설명에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섯살 꼬마의 세상 인식 범위는 그것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자신들의 신변에 닥쳐올 위협, 잭의 엄마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잭은 엄마의 탈출 계획에 맞춰 탈출 연습을 하고, 결국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탈출 성공이란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룸』은 그 이후에 이 모자가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것까지 보여주고 있다. 가족과의 재회, 오랜 감금생활로 인해 생긴 정신적 충격의 치료와 더불어 변해버린 바깥 세상에 적응하는 훈련등을 한다. 그러나 오랜기간 갇혀 지낸 엄마와 잭은 바깥 세상이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잭이 강간으로 인해 태어났다는 것때문에 친할아버지는 잭을 '저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은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 모자를 신기한 것 취급을 하고, 그것은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은 모자를 힘겹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잭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방에서의 감금 생활에도 그다지 불편이나 힘겨움을 느끼지 못한다. 티비에 나오는 도라도라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 한다. 엄마와 함께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운동도 하고 놀이도 하고 게임도 한다. 사실 잭이 이렇게 밝고 명랑한 아이로 클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힘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엄마가 절망에 빠져 늘 울고 힘들어 했다면 잭 또한 엄마의 영향을 받아 우울한 아이로 자랐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잭에게 말을 가르치고 글을 가르쳤다. 감금이란 상황때문에 비록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했을지라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잭은 아이답게 유연하게 바깥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론의 무자비한 흥미, 바깥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은 엄마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결국 약물남용까지 하게 만들지만, 잭의 덕분에 엄마는 힘을 얻게 된다.
엄마는 잭은 작은 방에서 탈출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인 해방뿐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으리라. 왜냐하면 엄마는 쉽게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으니까. 엄마의 정신적 해방을 도운 것은 결국 잭이었다. 잭은 자신이 태어나고 다섯살까지 자란 그 방에 엄마와 함께 감으로써 그간의 악몽과 같았던 나날과 마주하게 한다. 납치와 불법감금, 상습적인 강간의 장소가 된 작은 방. 그것은 엄마의 트라우마를 만들어 낸 장소였다. 그 장소가 더이상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잭의 엄마는 비로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곳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잭의 엄마는 그 일을 잊으려고만 했을 것이고, 과거 속에 묻어두려고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억누른 트라우마는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과거의 망령처럼 그녀를 늘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 악몽과 제대로 마주함으로써 치유의 반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잭의 눈을 통해 그려진 감금 생활과 바깥 생활. 솔직히 말해서 감금되어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란 것을 모르고 읽었다면 그저 소박하지만 재미있게 사는 모자의 이야기라 착각할 뻔 했다. 그정도로 초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하다. 물론 잭이 엄마의 상처와 아픔을 모조리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를 쓰고라도 그 공간내에서 행복해질 꺼리를 찾아야만 했을 엄마의 고통이 잭의 눈으로 그려져 가슴을 뭉근하게 짓누른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였으니 한참 전의 이야기지만, 한 여학생이 납치, 감금되고 강간을 당해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었던 이야기. 그것을 기억할 사람이 있으려나. 자신의 딸이 납치된 것도 모자라 원수같은 괴물의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는 것을 본 부모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으리라. 예전에 읽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책중에도 납치 및 불법 감금을 당했던 소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설화한 것인데, 이 책 역시 그렇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의 경우 소녀 혼자 힘으로 그곳에서 살아 남아야 했기에 처절하고 참혹했다면, 이 소설은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의 이야기이고, 아이의 입장에서 본 감금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은 훨씬 덜 하지만, 그들이 받았을 고통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아이의 눈으로 그려졌기에 그 이면에 감춰진 참혹함이 많이 가려져 보인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덧> 책 띠지를 보다 문득 화가 치밀었다. 화초처럼 자란 분재소년, 이란 문구에. 이 선전 문구야 말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그것과 다른 게 뭐가 있나.